[백진기 칼럼]"헌신짝 버리듯?"(101편)

한독 백진기 대표
발행날짜: 2024-08-12 05:00:00

난생처음 지인들이 가자고 해서 말로만 듣던 그놈의 쿠루즈여행을 다녀왔다.

다녀온 선배들이 가이드를 해서 그냥저냥 따라갔다.

패키지여행다니는 것보다 좋은 점이 많았다.

처음이어서 짐이 많았다. 특히 옷이 많았다. 집안에서 있는 편한 옷이다, 파티다, 운동이다, 투어다, 댄스다 등을 쫒아 다니려면 다 필요한 것 같았다.

그래도 일단 매일 짐을 싸지 않아서 좋았다

배에 탈 때도 내릴 때도 짐만 싸 놓으면 알아서 방으로 올라오고 내려갔다.

불편한 것은 그 흔한 슬리퍼가 없었다. 불편했다.

그래서 두번째 쿠루즈여행때는 대신 집에서 신던 낡은 슬리퍼를 가지고 갔다.

다 쓰고 버릴 요량이었다.

쿠루즈 일정에 끝나 짐을 모두 쌌다.

내가 집에서 매일 신던 그 슬리퍼만 덩그러니 그 방에 남아있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쓰레기통에 넣을 때 뒤 끝이 헤진 그 낡은 슬리퍼가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기분이 더 이상했다.

생명이 없는 그 슬리퍼가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내가 아직 멀쩡해서 조금 더 너와 함께 있을 수 있는 데 왜 나를 버리고 가?"

나도 찜찜했다. 도로 가지고 갈까? 잠깐 망설였다.

나이가 들어서 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돌아오는 비행기속에 생각났다.

아! 이래서 ‘헌신짝 버리듯 한다’는 말이 생겼구나.

직장생활을 오래하다가 정년이 되어 나가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것들을 비자발적퇴직involuntary resignation이라고 한다.

이들의 머리속에는 '과거 내가 회사가 어려웠던 이런 저런 사건에 이렇게 저렇게 공헌을 했고, 내가 아직 쓸만한데 회사가 노쇠했다고 규정을 핑계로 헌신짝 버리듯이 나를 버리는 구나'라는 생각이 꽉 차 있다.

시원하다고 겉으로는 말하지만 속으로는 섭섭한 것이 많다.

회사의 입장은 어떨까?

회사는 고임금의 늙고 동작이 굼뜬 직원이 나가고 저임금의 빠릿빠릿한 직원을 선발하는 기회다

회사는 월급과 상여를 주고 또 퇴직금을 주는 것으로 계산이 다 끝난 것으로 생각한다.

인연의 끈을 회사는 놓고 돌아섰는데, 퇴직사원만 끈을 잡고 있는 격이다.

끈을 잡고 있으면서 계속 중얼거리고 있다.

"나 아직 쓸모 있는데 회사가 나를 헌신짝 버리듯 하네"

회사는 이런 비자발적퇴직자들에 대한 관리를 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들의 '섭섭한 모습'을 후배들이 쳐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섭섭하다고 해서 1,2년 더 연장해주면 나 갈 때 섭섭한 감정은 없고

‘아! 감사하다’하고 나갈까?

여러 케이스를 봤지만 그때도 섭섭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지속 성장하는 것이 목표인 회사는 공공조직, 비영리 조직 등과 다르다

섭섭하다고 모든 비자발적 퇴사자를 연장시킬 수 없다.

이런 경우, 노동시장 논리로 접근해 보자

우선 그분이 일했던 업무를 없앨 수 있는지?

아니면 시스템으로 대체할 수 있는지?

그것도 아니면 부서내 업무조정으로 그분의 업무를 흡수하고 환경변화에 따른 새로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직원을 선발할지에 대한 전략적 의사결정이 우선이다.

그래도 그 업무를 계속해야 한다면

그 퇴직사원이 정말 쓸모가 있는 지?

사내외에서 대체인력을 선발할 수 있는지가 '연장근무'의 조건(필요)이다.

대체인력이 없다면 '쓸모'정도로 연장할 수 있다.

그러나 대체인력이 사내외에서 확보할 수 있다면

그 다음의 잣대는 역량이다.

비자발적 퇴직사원의 역량이 대체인력의 역량보다 우수하면 연장할 수 있다.

역량이 대체인력보다 높다 해도 고임금으로 고용연장판단이 어렵다.

또 하나는 대체인력과 비슷한 임금수준을 퇴직사원이 수용해야 하는 조건(충분)이다.

모든 비자발적 퇴직사원을 섭섭하지 않게 할 인사제도는 없다

그러나 회사는 '쓸모'에 오픈 되어 있다.

그동안 열심한 직원은 근속연장기회가 마련된다.

결국 섭섭함이 아니고 고용연장은 내가 한 결과의 모음이고 내가 결정할 문제다.

나는 지금 무슨 준비를 하고 있는가?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섭섭함'인가? 아니면 '쓸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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