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국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1학년 유우선
당신은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글을 쓴 적이 있는가?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글'. 실상, 우리가 쓰는 모든 갈래의 글이 여기 해당한다. 일기는 당신이 어떤 일상을 살아가는지 보여주고, 감상문은 당신이 가진 미학적 취향을 담고 있으며, 논설문은 당신의 눈을 통해 보는 사회를 비춘다. 글은 자기표현을 하는 데에 무엇보다 적격인 매체이다.
그래서 2024 의료대란 한복판을 지나는 우리에게 글은, 다시 말해 자기표현은 더욱 어렵다. 현시점의 우리는 보다 넓은 세상에 목소리를 내야 할 필요가 있다. 사회에서 마주하는 모든 사람은 현재 의료계에 대한 설명과 그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공유하기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입을 꾹 다물고 있을 필요도 있다.
이 난세(亂世)에는 너무나 많은 집단과 이해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의 표현은 자칫 불특정 다수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고, 역풍이 되어 우리 스스로에게 내상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디까지 '우리'에 대한 표현을 해야 하는 것인가?
이 딜레마 앞에 황망히 서 있을 당신에게, 최근 내가 '글'과 지난하게 대립한 경험을 공유한다.
글은 언제나 나에게 감정 표현의 도구이자 친우였다. 힘든 일이 있으면 일기를 썼고, 아끼는 사람이 생기면 편지로 마음을 전했으며, 지루한 날이면 감상문을 씀으로써 권태를 깼다. 그렇게 손 잡고 나란히 인생길을 걸어가던 글이, 최근 들어 내게 마른 등을 보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글쓰기가 힘이 들었다. 유려한 문장이 아닌 그저 단어의 나열만 노트북 화면에 떠다녔다. 겨우 한 편을 완성해도 다시 읽어보면 세상 밖으로 내놓을 수는 없는 끄적임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오래 고전하고 있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로, 글 너머의 '나'를 너무나 의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휴학을 시작한 2월부터 지금까지, 교내 비상대책위원회 콘텐츠, 투비닥터 2024 의료대란 책자 <코드블루>, 다양한 교내외 소식지 칼럼 등, 다양한 형태의 글을 꾸준히 써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내 글이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글을 쓰다가 문득 첫 문장으로 돌아가 보면 당황스러울 정도로 낯선 나를 내 글 속에서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했던가, 하고 곱씹어 보는 시간이 쓰는 시간보다 늘어갔다.
많은 사람이 읽을 글에 나조차 어색하게 느끼는 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 꺼려졌다. 무엇보다 싫었던 것은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내 모습까지 글에서 감출 수 없다는 것이다.
스스로에게조차 숨기고 싶은 생각, 드러내고 싶지 않은 감정들은 글에 녹아 거울처럼 나를 비추었다. '나를 표현한다'는 점은 내가 글을 사랑했던 가장 큰 이유였지만, 이제 맹점이 되어 내 글쓰기의 혈을 틀어막았다.
둘째로, 완성된 내 글이 어디에, 어떻게 닿을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앞서 말했듯 글은 나에게 감정 표현의 수단이었다. 그래서 내 글은 지극히 가벼웠으며, 또 제멋대로였다. 그러나 2024 의료대란은 내게 글의 결을 고를 때가 되었음을 알렸다.
투비닥터 홈페이지에, 메디칼타임즈 칼럼 기고란에, 교내 소식지의 회고 에세이란이라는 특수하고 엄중한 자리가 주어진 것이다. 내 글은 이제 그저 내 감정을 담고 어딘가로 휘발되는 존재가 아니라, 무게를 가지고 누군가의 가슴속에, 혹은 혼란한 세상에 내려앉아야 하는 존재였다.
이를 인지하는 것은 내가 한낱 학생 기자이고 아마추어 칼럼니스트라 할지라도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책임이었다. 현상 이상의 것을 보고, 사회에 전달하는 바가 통찰력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러한 무게를 갖기에 나는 너무 무능력하고 겁이 많았다. 욕심이 커져도 대단한 글이 아니라 계속 껍데기만 찍어내는 나만 발견했다. 사회적인 글로 도약하지 못하는 내 펜에 힘이 빠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도달했을 때, 나는 자문했다. 그러면 이제 무슨 글을 써야 하지? 내가 원하는 글은 어떻게 만들어내야 하지? 답을 찾지 못하고 같은 질문만 거듭하다가, 나는 문득 이 고해나 다름없는 칼럼을 제법 편안하게 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글쓰기가 더럽게 안 풀린다는 나의 한심한 고민과, 의료대란의 당사자임에도 어떠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자책이 담긴 이 칼럼은 앞서 말한 나의 두 가지 문제들을 직면하고 있는 글이었다. 스스로의 모자란 모습도 부정하지 않고 드러내고, 사회에 어설프게나마 학생 기자의 무력감을 소리치는 글. 그제야 나는 내가 중요한 선후를 바꾸어 생각했음을 깨달았다.
내 고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내가 쓸 글'이 아니라 '글이 담을 나'를 먼저 생각해야 했다. 글에 나타나는 내가 낯설고 창피하다면 우선 그 모습을 받아들이고 단단한 나를 만들기 위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사회로 띄워 보낼 목소리에 자신이 없다면 더 배우고 경험하며 원색적인 주장이 아닌 통찰력 있는 의견을 만들어 낼 힘을 길러야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모든 과정과 결과 속에서의 '나'를 표현할 솔직함이 필요한 것이다. 그 용기 없이 쓰는 글은 텅 비어갈 수밖에 없다.
당신과 나의 앞에 놓인 딜레마로 다시 돌아가 보자. 당신은 현 의료대란 사태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강하게 피력할 만한 합리적인 논리와 통찰력 있는 의견이 있는가? 동시에, 그 표현이 타인을 무분별하게 상처입히지 않을 성숙함이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이 표현에서 드러난 스스로를 인정하는 솔직함을 가졌는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세상에 드러내는 데에 있어 이와 같은 질문들을 다시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그 고민에서 나오는 해답이 현 의료계에 어스름히 깔려있는 '자기표현'의 딜레마 해결에 도움이 될 것임은 자명하다.
위의 경험을 통해 내가 찾은 해답은, '내가 쓰고 싶은 좋은 글'이다. 글 너머에 있는 나의 색이 괴이할지라도 선명하게 보이는 글, 세상의 어두운 틈새에 불편하게 끼어들어 가더라도 솔직한 파장을 일으키는 글을 쓰고 싶다.
그를 위해 당당하게 행동하고 감정에 꾸밈없어 지리라. 세상을 진지하게 직면하고 두려움 없이 발언하리라. 좋은 글을 위해, 그런 좋은 내가 되어가려 한다.
영화 <비밀의 언덕>에서, 주인공 소녀 '명은'은 부족함 없는 아이로 보이고 싶어 거짓으로 쓴 글을 교내 글쓰기 대회에 제출한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거짓된 글과 진실된 글들이 차례로 '명은'의 삶에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변화의 막바지에서 '명은'은 자신의 가장 숨기고픈 모습이 담긴 원고지를 몰래 언덕에 묻는 것으로 어떤 글을 쓸 것인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간접적으로 선택한다.
우리 손에도 앞으로 많은 원고지가 들릴 것이다. 그 원고지에는 때로는 부끄러운 나만의 진실이, 때로는 적나라한 견해가 담겨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이 되었든, 우리에게는 원고지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원고지 속 '나'를 드러낼 필요가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외려 비밀의 언덕에 원고지를 묻어버린 이야기를 글로 써야 하는 솔직함이 필요하다. 그것은 괴랄한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르지. 그러나 긴 딜레마를 지나 치열하게 해답을 찾아낸 우리가 쓸 글이라면, 그 글은 결국 우리를 가장 우리답게, 읽는 이들을 가장 감각하게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