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문간호사협회 최수정 회장(성균관대학교 임상간호대학원 교수)
우리나라의 인구 대비 병상 수는 OECD (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국가 중 압도적으로 많고, 전국민의료보험에, 의료보험수가도 상대적으로 낮아 국민들의 의료접근성이 좋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도 오바마 케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전국민의료보험체계를 부러워하면서 참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의료시스템은 의료 접근성이 좋다는 장점과 동시에 여러가지 문제들도 가지고 함께 가지고 있다. 낮은 의료보험수가를 만회하기 위한 비급여수가가 계속 만들어졌고, 비급여수가로 돈을 많이 버는 진료과(피부과, 성형외과 등)로 의사들이 몰리면서 필수의료과에서는 의사들을 구하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지역간 의료인력 불균형은 더 심화되었고, 지방의료원은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어도 의사를 구하지 못해 환자를 받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 의사 수는 OECD 국가 평균에 미치지도 못하는 하위 수준이다.
그런데도, 의료법 제2조 제2항에 규정한 의사의 업무 범위는 매우 넓게 해석되고 있으며, 의료법 제27조 무면허의료행위 규정에 의해 의사가 아닌 의료인이 의사의 업무를 하면 불법 무면허의료행위로 간주된다. 의사가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은데 일을 할 수 있는 의사 수는 부족하다. 현실은 의사만으로는 그 많은 업무를 다 소화해 낼 수 없는 구조이다. 2000년대 의약분업 당시 의대 정원은 10%가 줄어서 지금까지 유지되어 왔고, 2017년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 시행령이 만들어지면서 의사 부족은 더 심화되었다.
환자들이 선호하는 대형병원은 유명한 의사들이 많고, 의사 수도 충분할 것 같지만 이런 대형병원조차도 의사가 주어진 업무를 다 소화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들을 도와서 문제없이 의료서비스가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수많은 간호인력과 그 외 의료지원 인력들이 함께 하는 시스템이 있었기에 운영이 가능했던 것이다.
병원에서 의사를 대신해서 환자에게 설명하고, 문제를 확인해서 조정하고, 여러 진료과를 통합해서 팀 기반 진료가 가능하도록 하는 전문간호사가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1994년도부터이다. 전문간호사로 불릴만한 업무를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그보다도 훨씬 앞선 1970년대 의사가 없는 농어촌분야에서 의사를 대신해서 업무를 하던 분야별 간호사가 시작이기는 하나, 전문간호사라는 명칭이 처음 불리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 민간대형병원에서 전문간호사 명칭의 간호사를 고용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의약분업사태, 전공의 특별법을 거치면서 의사 인력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전문간호사, 가칭 PA 간호사, 전담간호사, 코디네이터 등 다양한 간호인력들이 의료법 테두리를 넘어서며 유령처럼 의사들의 업무 중 일부를 대신해왔다. 그렇지만 법적으로 교육이나 자격체계를 갖춘 인력은 전문간호사 뿐이었다.
그러다 올해 초 의대 증원에 반대해 수련의들 대부분이 병원을 떠나고 의정갈등은 해소되지 않은 채 의료재난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서둘러 2월말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을 발표하면서, 그동안 의사의 업무로 판단했던 의료행위 중 상당 부분을 진료지원업무로 나열하며, 간호사[일반간호사, (가칭)전담간호사]와 전문간호사가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시범사업에 나열된 진료지원업무 중 일부는 이미 일반간호사들이 수행하고 있던 업무들도 있고,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절대 의료행위라고 고소되어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는 ‘골수천자’ 업무도 포함되어 있다. 정부가 처음으로 간호사와 전문간호사의 진료지원업무를 인정한 문서라는 점에서 간호계는 반기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임시방편으로 간호직에게 의사의 업무를 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도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진료지원업무를 누가 하는 것이 적절할지 고민해봐야 한다. 우리나라 의료법이 보수적으로 의사의 업무를 넓게 해석하는 근본적인 취지는 환자와 국민의 안전을 위함일 것이다. 의대 6년의 교육과정을 거치고 국가고시를 거쳐 의사면허를 소지한 자가 수행하는 업무를 간호사 면허를 소지한 자에게 의사의 지도감독 하에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진료지원업무를 하는 인력도 충분한 교육과 자격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이미 임상현장에서 일반간호사도 단순 드레싱, 배액관 관리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적 임상적 판단이 필요한 고난이도 업무에 대해서는 교육, 자격시험 제도를 통해 국가 자격증을 소지해서 최소한의 전문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전문간호사가 수행하는 것이 합당할 것으로 본다.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지원사업안을 보면 숙련된 인력을 확충해서 전공의 중심 당직 운영이 아닌 전문의와 진료지원간호사 팀으로 운영하도록 전환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즉, 전공의는 수련의로서 수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고, 숙련된 간호사에 대한 교육과 훈련 및 업무 재설계를 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지금도 수련의가 떠난 임상현장에서 필수의료영역인 응급실, 중환자실, 종양 파트에서 전문간호사들이 새롭게 배치되어 기존에 전공의가 수행하던 업무를 하고 있다. 환자를 사정하고 원활한 치료과정이 진행되는지 검토하고 위임된 범위 내에서 프로토콜에 따른 처방을 한다.
환자 문제 발생 시 간호사로부터 보고받고 중증도 및 심각성을 판단한 후 지침에 따라 초동 대처를 하거나 신속히 주치의와 연결하여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한다. 병동 간호사 입장에서는 전문간호사가 있어 신속하게 문제가 해결되기에 업무가 용이하다고 하고, 환자 입장에서는 언제든 자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증상을 개선시켜 주었다며 환자 만족도가 상승하고 있다.
향후 수련의들이 현장에 돌아오더라도 지금과 같이 전문의와 전문간호사를 중심으로 업무가 계속되는 병원이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전문간호사들이 해오던 업무에 변화가 생긴다면, 학계와 임상 현장이 서로 도와 다학제적으로 교육과 훈련을 제공해서 환자에게 최고의 서비스가 전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변화되는 의료 패러다임에서 직역 간 분쟁이 아닌 환자에게 최선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