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공백법에 의료계 "더 큰 저항 내몰릴 것" 우려

발행날짜: 2025-10-04 10:15:38
  • 정당한 이유 없는 단체행동 시 징역 3년 또는 벌금형
    환자단체 환영… 의협 법제이사 "단기적, 위험한 발상"

필수유지의료행위를 정의하고, 이를 정지·방해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필수의료 공백 방지법이 등장하면서 의료계에서 반발이 나오고 있다.

4일 의료계에서 필수의료 공백 방지법으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환자단체는 해당 법안에 환영 목소리를 내는 반면, 의료계에선 의료인의 기본권 침해라는 반박이 나온다.

필수의료 공백법이 등장하면서 의료계에서 의사의 직업 수행 자유와 단체 행동권이 과도하게 제한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실은 지난 2일 필수 의료 공백 방지를 위한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고 밝혔다. 이 법안은 필수유지의료행위를 정의하고, 이에 대한 유지·운영을 정지·폐지 또는 방해하는 행위를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구체적으로 필수유지의료행위는 응급의료, 중환자 치료, 분만, 수술 등 정지·폐지되거나 방해되는 경우 환자의 생명·건강, 신체의 안전을 현저히 위태롭게 하거나 위태롭게 할 우려가 있는 의료 행위다.

이 같은 행위를 또 보건복지부장관이 의료인 단체, 의료기관 단체, 환자 단체 등의 의견을 수렴해 필수유지의료행위 유지 기준을 정하도록 한다. 의료계 단체행동은 보장하면서 필수유지의료행위의 유지·운영과의 조화를 도모한다는 취지다.

노동조합과는 달리 의료인 단체 및 의료기관 단체의 단체행동은 필수유지의료행위 유지와의 조화를 위한 법률 제도가 없다는 것. 이에 필수유지업무협정 등을 통해 필수유지 업무의 공백을 방지하면서 쟁의 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한다는 목적이다.

지난 3일 더불어민주당 김윤 의원실이 발표한 국정감사 자료도 해당 법안이 필요하다는 여론에 기름을 붓는 모습이다. 김윤 의원실은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 조치를 분석한 결과, 실질적인 해결률이 2%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의정 갈등 당시인 2024년 2월 19일 해당 센터를 설치해 진료 거부, 수술 연기, 수술 취소 등 의료 이용 불편 신고에 대한 법률 상담 및 소송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그 결과 복지부는 총 상담 건수 7866건 중 957건을 관할 지자체에 이첩했고 이 중 956건을 종결 처리했다.

하지만 복지부와 지자체가 실제로 개입해 문제를 해결한 사례는 단 20건(2.1%)에 불과했던 것. 나머지 피해 신고는 행정·의료적 조치 없이 종결되거나, 의료기관에 공문 발송·민원 전달 수준의 형식적 조치에 그친 실질적 도움을 주지 못한 '무조치'로 확인됐는 설명이다.

특히 의원실은 ▲심장병 환자 혈액투석관 교체 수술 지연에 지자체는 해당 의료기관에 '친절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라'고 안내 후 종결 ▲갑상선암 환자가 수술받지 못했지만, 지자체는 의료기관에 '최선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라'는 안내 후 종결 ▲미숙아 진료가 한 달 가까이 지연됐지만, 지자체는 단지 '빨리 조치하라'며 종결 처리한 사례 등을 문제로 지목했다.

정부는 피해를 구제하겠다며 센터를 만들었지만, 실제 운영은 형식적 처리에만 급급한 '무성의한 콜센터'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센터 접수 현황 및 처리결과 재분류 현황

한국환자단체연합회도 성명서를 내고 '필수의료 공백 방지를 위한 의료법 개정안'의 조속한 입법을 요구했다. 전공의들은 지난 2020년과 2024년, 정부 정책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두 차례 필수의료를 중단해 환자의 생명을 위협했다는 비판이다.

이런 집단행동을 제재하지 못하고 오히려 특혜성 조치로 복귀를 유도한 정부와 국회의 결정은 세 번째 의료 공백 사태를 자초할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다. 특히 대통령이 공약한 공공 의대 및 지역 의대 신설 정책은 의대 증원과 직결돼, 머지않아 의료계 집단 반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

반면 의료계에선 이 법안이 의료인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정부의 과도한 통제를 강화하는 '독소 조항'을 포함하고 있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대한의사협회 김재연 법제이사는 검토 의견을 통해 해당 법안이 헌법상 보장된 직업 수행의 자유와 단체 행동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당한 사유 없는' 의료인의 단체행동에 '최대 3년 이하 징역형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규정하는 조항이 포함되면서다. 또 의료인 및 의료기관 단체가 집단행동 시 필수유지의료행위를 유지하기 위한 근무 계획을 사전에 통보해야 하며, 이를 위반할 시 3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여기서 '정당한 사유'의 기준이 모호해 정부가 자의적으로 법을 집행할 경우 의료계의 의견 표출을 억압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 또 징역형까지 규정한 것은 과잉 금지 원칙에 위배되며, 의료인 사기 저하 및 정부 신뢰 붕괴를 야기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단체행동 시 '근무 계획을 정부에 사전 통보'하도록 의무화한 조항 역시 핵심 독소 조항으로 지목했다. 그동안 의료계는 의정 사태에도 통상적으로 응급실 등 필수 의료는 자율적으로 유지해 왔다. 하지만 이 조항은 정부가 의료 공백을 완벽히 대비하게 만들어 단체행동의 효과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라는 것.

이는 전문가 집단의 직업윤리와 자율적 판단을 불신하고 모든 것을 정부의 통제 아래 두려는 시도로, 단체 행동권을 원천 봉쇄하려는 의도라는 비판이다.

필수유지의료행위의 정의를 정하는 것 역시 매우 민감한 문제로 짚었다. 일례로 응급 수술이나 중환자실 진료 외에 어떤 범위까지 포함되는지에 따라 법안의 파급력은 크게 달라진다는 설명이다. 법률 제정 단계에서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 없이 정부에 모든 권한을 넘기는 것은 향후 더 큰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우려다.

특히 김 법제이사는 이 법안이 통과되기 위해선 ▲형사 처벌 조항 완화 또는 삭제 ▲'의료 공백 방지라는 공익을 위해 의료인의 기본권을 제한하더라도' 문구 삭제 ▲'필수유지의료행위'의 정의를 법률에 명확히 규정 ▲의료계와의 충분한 협의를 통한 사회적 합의 도출 과정 선행을 요구했다.

김 이사는 "의료 공백의 근본적인 원인은 저수가, 법적 부담, 인력 불균형 등이다. 이에 대한 해결 노력 없이, 처벌과 규제만으로 의료계를 압박하는 것은 필수의료 시스템 자체를 붕괴시킬 수 있다"며 "이 개정안은 필수의료 붕괴의 근본 원인을 외면한 채, 모든 책임을 의료인 개인과 단체에 돌려 통제하려는 단기적이고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의사의 자율성과 직업적 양심을 훼손해 결국 스스로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더욱 강력한 노동조합의 형태로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역설적인 상황을 만들 수 있다"며 "억압과 처벌이 아닌 합리적인 보상과 법적 보호를 통해 의료인이 자부심을 갖고 현장을 지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올바른 입법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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