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별, 한양의 태양으로"… 안명주의 '사심 없는' 승부수

발행날짜: 2026-02-24 05:30:00 수정: 2026-02-24 09:03:47
  • 삼성서울병원 퇴임 후 모교 한양대의대 석좌교수로 새출발
    자존심 하나로 버틴 30년...마지막 미션은 '한양 암센터'

성균관의대 안명주 교수가 오는 3월3일자로 한양대의대 석좌교수로 새출발한다.

[메디칼타임즈=박상준 기자]세계적인 종양학자 안명주 교수가 20년간 몸담았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을 떠나 모교인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으로 돌아간다. 국내 최초로 '석좌교수' 타이틀을 단 채로 말이다.

"사심이 없으니 무서울 게 없다"며 웃는 안 교수. 그의 화려한 귀환 뒤에 숨겨진 30년의 고군분투와 '한양 재건'을 향한 대담한 설계를 들여다봤다.

안 교수에게 지난 소회를 묻자 스스로를 "운이 좋았던 사람"이라 말한다. 하지만 이야기속에는 그가 걸어온 길은 차별과 편견이라는 파도를 정면으로 돌파해온 시간이 담겨있었다. 돌이켜보면 2006년 삼성서울병원으로의 스카우트는 화려한 기회였지만, 동시에 무거운 시험대였다.

"한양대 출신이라는 소리를 듣기 싫었습니다."

낯선 조직 문화와 스카우트 교수로서의 압박감 속에서 그를 버티게 한 것은 지독한 '자존심'과 '악착같음'이었다. 그는 진료와 연구, 교육이라는 삼성의 엄격한 톱니바퀴 속에서 자신을 갈아 넣었고, 결국 폐암 치료의 세계적 권위자라는 타이틀로 그 존재 가치를 증명해냈다.

그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폐암 분야를 맡아 지난 20년간 항암제 발전의 역사를 몸소 써 내려갔다. 약제가 10개뿐이던 시절부터 EGFR 변이, 3세대 TKI(타그리소, 렉라자)의 탄생까지, 그는 늘 최전선에 있었다.

임상 연구가 NCCN 가이드라인에 반영되고, NEJM(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에도 이름을 올린 과정은 단순한 운이 아니라 '먹칠하지 않겠다'는 지독한 자존심이 일궈낸 결실이었다. 돌이켜보면 지난 20여년간 묵묵히 응원한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의 무한한 지원과 선후배들의 도움이 컸다.

국내 임상 연구의 수준을 글로벌 톱티어로 끌어올린 안 교수의 또다른 비결은 '네트워크'에 있었다. 그는 한국 의학계가 NEJM이나 Lancet 같은 세계적 저널에서 주도권을 잡지 못하는 이유를 날카롭게 짚어냈다. 단순히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학계를 움직이는 '이너서클(Inner Circle)'과의 교류 부재가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 벽을 깨기 위해 3일 만에 미국, 유럽을 왕복하는 살인적인 일정을 마다하지 않았다. "대가들은 환자를 단 몇 명만 넣고도 상징적인 존재감으로 주저자가 됩니다. 그건 정치가 아니라 오랜 시간 쌓아온 크레딧(Credit)의 결과입니다."

안 교수는 후배들이 자신보다 10년은 더 빨리 글로벌 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스스로가 그들의 '셰르파'가 되어 험난한 길을 먼저 닦아왔다.

"그들은 자기네들끼리 끈끈해요.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려면 실력은 기본이고 정치력과 소통 능력이 필수죠."

그는 스스로를 '어리숙해 보여서 남들이 도와준 케이스'라며 낮췄지만, 그가 구축한 글로벌 네트워크는 이제 한양대의 강력한 무기가 될 전망이다. "우리 후배들은 실력도 뛰어나고 영어도 잘해서 위축되지 않아요. 내가 20년 걸린 길을 그들은 10년 만에 가게 해주고 싶습니다."

이제 그는 화려했던 삼성의 무대를 뒤로하고 친정인 한양대학교로 돌아간다. 1970년대, 대한민국 최고를 자부하며 VIP들이 줄을 섰던 한양대병원의 영광을 그는 생생히 기억한다. 그래서 안 교수가 들고 가는 숙제는 구체적이고도 묵직하다.

첫째 목표는 임상시험 인프라의 상향 평준화다. 한양대병원이 연구 중심 병원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수준의 임상시험센터(CTC) 셋업이 필수적이라고 본것. 둘째는 의료 AI의 실전 배치다. 국내 최고 수준인 한양대 공대와 협력해 AI 기술을 통해 신약 개발의 효율성을 높이고, 정밀 의료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작업이다.

그는 이미 삼성의 시스템을 이식하기 위해 CRC 매니저와 포닥 인력까지 확보하며 '안명주 사단'의 상륙 준비를 마쳤다. "첫 출근부터 제 모든 에너지를 쏟을 겁니다. 한양대병원을 업그레이드해 후배들이 더 넓은 세계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드는 것. 그 미션을 완수하고 웃으며 떠나는 것이 저의 마지막 목표입니다"

종양학의 거인이 던진 마지막 승부수가 이제 막 시작되었다.

다음은 1문1답

Q. 20년 만의 모교 귀환이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A. 1년 반 전부터 총장님과 의료원장님이 계속 요청을 하셨다. 처음엔 "이제 좀 쉬어야 하지 않겠냐"고 했지만, 모교 병원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고 싶었다. "가서 봉사하자, 사심 없이 내가 가진 네트워크를 다 쏟아붓자"고 결심했다. 3월 3일 첫 출근인데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즐겁게 해볼 생각이다.

Q. 삼성서울병원에서의 20년, '한양대 출신'으로서의 고충도 많았다고 들었다.

A.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한양대 출신에 여자였다. 항상 '마이너'라는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그게 나를 더 채찍질했다. "저 사람 뽑아놨더니 별거 없네"라는 소리를 죽기보다 듣기 싫었다. 그 자존심이 나를 세계적인 학회로, NEJM으로 등 떠밀었다.

Q. 글로벌 학계에서 안명주의 이름은 브랜드다. 그 비결이 무엇인가?

A. 네트워크다. 많은 분이 실력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글로벌 학계도 사람 사는 곳이라 '이너서클'이 있다. EGFR 변이, 타그리소 연구 등에서 제가 주도권을 쥘 수 있었던 건 그들과 끊임없이 소통했기 때문이다. 유럽 학회를 3일 만에 다녀오고, 학회장에서 놀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어드바이저 보드 미팅에서 한마디라도 더 유효한 말을 하려고 밤새 공부했다. 그런 크레딧이 쌓여 좋은 기회가 온 것이다.

Q. 한양대 암 센터, 무엇부터 바꿀 생각인가?

A. 실질적인 임상시험 인프라다. 암 치료는 신약과 임상시험이 핵심인다. "한양대도 암 잘 본다"는 이미지를 심어줘야 한다. 단순히 환자를 많이 보는 게 아니라, 글로벌 다기관 임상을 유치하고 신약을 가장 먼저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거다. 이미 삼성에서 호흡을 맞춘 CRC 매니저들과 후배 교수들이 합류하기로 했다. 모양새만 갖춘 센터가 아니라, 제대로 돌아가는 센터를 만들 거다.

Q. 한양대 공대와의 협업도 구상 중이라고 들었다.

A. 한양대 대학 순위가 높은 건 공대 덕분이다. 공대의 AI 인프라는 세계적이다. 이를 병원의 임상 데이터와 결합하면 엄청난 시너지가 난다. 정밀의료, AI 기반 신약 개발 등 할 일이 너무 많다. 이제는 빅5 병원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한양대만의 독자적인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Q. 종양내과를 지망하는 후배들이 줄어드는 현실이다.

A. 정말 큰 위기다. 종양내과는 머리로 싸우는 과인데, 현재 시스템은 이들의 지적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정책적으로 종양내과 의사들의 전문성을 인정해주는 수가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엑스퍼트들이 대우받지 못하면 결국 피해는 환자들에게 돌아간다.

Q. 삼성에서 진료받던 환자들이 아쉬워할 것 같다.

A. 환자들은 의사도 보지만 시스템을 보고 움직인다. "시스템보다 안명주 교수를 믿고 가겠다"는 분들이 꽤 계시지만, 내가 냉정하게 말씀드린다. 한양대에 그만큼의 시스템을 갖춰놓을 테니 그때 오시라고. 지금은 기계와 인프라의 싸움이다. 내가 한양대로 가는 이유도 그 인프라를 상향 평준화하기 위해서다.

Q. 마지막으로, 안명주의 '제2의 막'을 정의한다면?

A. 사심 없는 봉사다. 내가 가진 경험과 네트워크를 모교에 다 쏟아붓고, 시스템이 잘 안착하면 미련 없이 떠날 거다. 그게 나의 마지막 미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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