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은 있어도 퇴근은 없다"

유석훈
발행날짜: 2005-03-17 07:15:38
  • 아주대학교 병원 신경외과

바쁜 수술 일정으로 어렵게 모인 아주대학교 의국원들(오른쪽이 조준범 의국장)
“가장 해 보고 싶은 게 뭐예요?”

“집에서 따뜻한 아침 먹어보는 거요.”

모 방송국 드라마 '종합병원'에서 봤던 아주대학교 병원은 해맑은 날씨와 약간은 대조적으로 현대적인 회색 건물을 드러낸다.

개인적으로는 잠시 머물렀던 학교이기에 11년만에 찾아온 아주대학교와 병원 건물을 볼 때 감회가 새로웠다. 개원 준비가 한창이었던 그 병원이 벌써 10년이 넘었다니...

잡생각은 뒤로하고 조준범 의국장을 만나러 올라간 별관 3층 신경외과 대기실. 3년동안 아침을 한 번도 먹지 않았다는 조준범 의국장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의국원 쫓아다니기'는 시작됐다.

▼ 반복되는 긴박한 상황, 이어지는 딜레마

"그 환자는 가망이 거의 없어...칼을 대는 순간 과다출혈로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니까?...부모들은 수술에 동의했어?...수술 해 봤자 살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구"

취재를 시작하고 몇 마디 말을 나누기도 전에 조준범 의국장은 생후 2일 된 미숙아의 수술 여부를 놓고 다른 의료진들과 계속해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 조산에다 뇌출혈 증세가 있어 수술을 당장 하긴 해야 하는데 너무 갓난 아기라 뇌를 가르면 즉시 사망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8명으로 이루어진 아주대병원 신경외과 의국원 들은 이러한 피를 말리는 결정을 하루에도 적게는 다섯 번, 많게는 열 번 이상해야만 한다.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서 수술 아니면 회진, 그리고 수술, 회진, 다시 수술. 특별한 날은 열 시간 짜리 수술 연속 다섯 건. 25시간에서 50시간짜리 대수술이 있는 날은 아침, 점심, 저녁 모두 굶은 채로 수술을 집도한다니 이들의 소원이 ‘밥’과 ‘잠’일만도 하다.

4년 동안 반팔 와이셔츠만 입고 다니고, 피가 튄 발을 일주일 째 씻지도 못하는 생활이 반복되다보면 어느덧 의국이 마치 ‘쇼생크’처럼 생각돼 자기도 모르는 새 도망자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마약 같은 신경외과의 매력 덕에 대부분 다시 돌아온다고. 그것을 알기 때문에 1년차들이 탈출을 감행해도 굳이 찾지도 않고, 돌아와도 질책하지 않는다는 4년차들의 말이다.

아직 2주밖에 안 돼서 ‘대탈출’을 생각할 시기가 아닌 1년차들을 찾아 응급실로 발을 옮겼다.

▼내가 신경외과를 택한 이유


도대체 왜 이렇게 힘든 신경외과를 선택했을까?

“미지에 가려 있던 뇌의 영역을 ‘파고’들어가고 싶었어요. 힘든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의사로서 신경외과는 정말 멋있는 과 같기도 했구요. 힘든 것은 각오했지만 이 정도일줄 몰랐어요” 박정언 선생의 말이다.

“사실 남자들이 많고 실수 하나로 사람의 목숨이 좌지우지 되는 일이 많기 때문에 분위기가 그렇게 좋지는 않습니다”(웃음)“좋게 말하면 터프한 과라고 할 수 있지요”라고 넉살 좋게 말하는 이는 또다른 1년차 임제준 선생이다.

이렇게 매운맛, 쓴맛, 신맛 떫은 맛 혹은 달콤한 맛에 울고 웃다보면 고생이 많다보니 신경외과 전문의로 진출하는 날, 머리위에서 햇살이 쏟아지는 듯 기뻤다는 소감은 작년 의국장이자 우리나라 몇 안 되는 여성 신경과 전문의 심숙영 선생의 말이다.

아마도 설레는 마음으로 신경외과 의국을 선택한 사람들도 1년차 시절이 끝날 때쯤 만성피로, 많은 배고픔, 수시로 울려대는 호출과 산더미 같은 차트 정리 때문에 사명감과 진시함이 결여 될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과정을 몇 번 겪고 나면 생소한 신경외과분야가 삶의 일부분으로 굳건히 자리잡아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게 3, 4년차들의 한결같은 이야기이다.

▼ 커리큘럼

아주대학교 신경외과의 커리큘럼은 학년별로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다.

1년차 전공의는 주로 병실환자를 담당하며 환자의 검사 및 처치를 교수와 상위년차 전공의에게 보고하고 지시를 받는다.

2년차는 응급실의 최초진료를 담당하며 신경외과적 대수술 및 소수술에 직접 보조하여 수술의 수기를 익힌다.

3년차는 신경외과의 대수술을 직접 담당하며 응급수술을 시행하고 완벽한 수술 수기를 익히고 예정수술의 제1혹은 제 2조수로 참가하며 간단한 소수술을 감독한다.

4년차는 신경외과의 대수술을 제 1조수로 보조하거나 교수의 보조하에 직접 시행하고 신경외과 전문의로서 갖추어야할 완벽한 수술 수기를 익히고 소수술을 감독한다.

▼에필로그

신경외과 의사가 다루는 분야는 바이탈과 관련된 가장 민감하고 중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결단을 내리는 것도 온전히 그들의 몫이다. 그래서 그만큼의 스트레스도 그들의 몫일 수밖에 없다.

뇌출혈 때문에 한 달이 넘게 누워있던 환자가 수술 후 깨어나 퇴원하는 모습을 보는 희열도 신경외과 의사들만의 ‘특혜’이다.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깔끔하던 젊은이가 ‘폐인’의 모습으로 변하기도 하고 남들과 다른 생활패턴에 친한 사람들과 관계가 끊어지기도 하지만 이러한 매력이 있기에 매년 멋진 젊은 의사들이 신경외과에 몰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아주대학교 병원 정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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