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진료 할수록 손해...수가가 발목잡아

안창욱
발행날짜: 2006-06-26 06:59:46
  • 원스톱진료 진찰·선택진료비 불인정, 제도개선 시급

의료기관들이 환자 편의를 제고하고 진료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통합진료와 같은 선진 기법들을 도입하고 있지만 의료수가는 진료를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도록 강요하고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연대 세브란스 어린이병원은 적자 우려에도 불구하고 최근 개원하면서 발달장애 소아의 편의를 위해 ‘합동진료’를 실시하고 있다.

합동진료는 발달장애 진료와 관련이 깊은 신경과, 재활의학과, 정신과 전문의 3명이 한 진료실에서 동시에 진료하는 시스템이다.

여러 진료과를 찾아다니기 힘든 환자들의 특성을 고려하면서 발달장애로 인한 임상심리와 발달심리, 언어, 작업, 운동감각, 물리치료 등을 동시에 시행해 치료효과를 최대화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환자는 수차례 병원을 방문하지 않고도, 내원 당일 여러 과 진료를 한 자리에서 동시에 받을 수 있고, 관련 진료과 전문의들은 최선의 치료방침을 결정하기 위해 협의를 하는 과정에서 진료의 질도 높일 수 있다.

문제는 이같이 3명의 전문의가 진료에 투입되지만 진찰료는 1회만 산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복지부의 진찰료 산정기준에 따르면 동일한 상병에 대해 2인 이상의 의사가 동일한 날 진찰을 한 경우 진찰료는 1회만 산정할 수 있다.

합동진료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고, 과거처럼 소아 신경과, 소아 재활의학과, 소아 정신과 의사가 각기 다른 날 진료를 했다면 진찰료는 당연히 3회 청구가 가능하다.

따라서 세브란스 어린이병원의 발달장애 전문클리닉이 하루 60명의 환자를 진료했다면 공단에 20회의 진찰료만 청구할 수 있다.

반면 합동진료를 하지 않았다면 60회 모두 산정할 수 있어 병원은 합동진료의 대가로 진찰료 40회를 포기해야 한다.

선택진료비까지 계산하면 병원의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병원은 환자들이 자주 내원해야 하는 불편을 줄이기 위해 원스톱 진료를 도입했지만 진찰료 산정기준은 제도 도입을 가로막고, 오히려 자주 내원시키도록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이런 수가구조는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통합진료에도 타격을 주기는 마찬가지다.

난소암 수술을 받은 환자는 수술후 통상적으로 산부인과와 종양내과, 방사선종양학과 외래진료를 받게 된다.

세브란스병원은 매주 화요일 암전문클리닉을 개설해 필요한 환자들이 당일 3개과 진료를 모두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지만 이 역시 3개과가 전혀 다른 치료를 함에도 불구하고 난소암이라고 하는 동일상병을 진료하는 것이어서 진찰료는 1회만 받을 수밖에 없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환자 적체로 인해 치료시기를 놓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급적 원스톱 진료를 하려고 하는데 이렇게 하면 할수록 병원은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수가구조여서 엄청난 손실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수입 측면에서는 환자들을 자주 내원시키는 게 유리하고, 이를 악용하는 병원도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병원이 환자를 위한 제도를 시행하려 한다면 최소한 손해를 보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안타까워했다.

진료과 중심의 진료행태에서 탈피해 11개 암종류별 센터로 운영하고 있는 국립암센터는 이런 문제가 더욱 빈번할 수밖에 없다.

국립암센터 관계자는 “병원의 특성상 지방에서 상경하는 환자들이 많다보니 진료당일 여러 과 진료를 볼 수 있도록 예약하고 있다”면서 “원스톱 서비스가 환자 입장에서는 좋은 제도이지만 병원은 정당한 진찰료를 포기한지 오래”라고 털어놨다.

그는 “현 건강보험제도는 병원에 손해를 끼치면서 환자만 이익을 보도록 하는 구조”라면서 “원스톱 서비스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이런 진찰료 산정기준은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달 19일부터 ‘암환자 통합진료’ 시범사업에 들어간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 암센터(소장 남주현)도 이런 문제에 봉착할 것으로 보인다.

병원은 통합진료실을 마련해 위암, 폐암, 대장암, 유방암, 식도암 등 5대암에 대해서는 종양내과, 외과, 흉부외과, 방사선종양학과 등의 의료진이 따로 따로 진료하지 않고 한 팀을 이뤄 진료를 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 중심의 진료’에서 ‘환자 중심의 진료’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제도 개선 노력도 동시에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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