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잘못된 만남 "한방 과학화 우선"

안창욱
발행날짜: 2006-07-07 08:25:30
  • 정부, 기초 연구 없이 기관만 확대...중복진료 무방비

|창간특별기획| 양한방 협진은 없다

한방병원을 중심으로 양한방 협진 의료기관이 급증하고 있다. 여기에다 정부까지 나서 양한방 협진을 장려하고 있지만 협진 효과를 입증할만한 근거는 전무하다. 양한방 협진의 실태를 살펴보고, 대안을 모색한다
-----------<<글 싣는 순서>>-----------
(상)양한방 협진 효과는 의사도 모른다
(중)한방 과학화 없이 의사·한의사 뭉쳐라?
(하)"협진, 험난하지만 살 길" 실험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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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협진 기초연구 외면한 채 기관만 확충

양한방 협진이 진료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증명된 사례는 극히 드물지만 정부의 입장은 확고하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6월 국립의료원에 양한방중풍협진센터를 설립한데 이어 제1차 한의약육성발전 5개년 종합계획(2006~2010)에 따라 공공의료기관 한방진료부를 올해 1개 설치하고, 2009년까지 10개로 늘릴 예정이다.

또한 올해부터 2008년까지 양한방 협진을 활성화하기 위해 주요 질환에 대한 협진 프로토콜을 개발하고, 질환별 협진모델 연구, 협진 관련 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문제는 양한방 협진이 치료효과를 향상시키거나 환자의 비용부담을 완화하는 등의 시너지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협진을 확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협진의 효과에 대해서는 전세계 어느 나라도 확인 못하고 있다”면서 “궁극적으로는 완벽한 화학적 결합을 지향해야 하지만 지금은 양방적 진단과 한방적 처방을 모색하는 단계"라고 주장했다.

여기에다 복지부는 양한방 협진을 효과적으로 뒷받침해줄 임상연구와 교육이 부재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를 늘리기보다 협진기관 확대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올해 한방 관련 연구비는 70억원. 이중 67억원은 계속 연구비로 이미 집행된 상태여서 가용 연구비는 3억원에 불과하다. 이 돈이 협진활성화 연구에 투입되는 것도 아니다.

복지부는 “올해 집행할 예산은 지난해 하반기에 이미 결정됐지만 한의약육성발전 5개년 종합계획은 이보다 늦은 12월에 확정돼 미처 금년도 사업비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복지부의 양한방 협진 정책의 모순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복지부는 한의학육성발전 5개년 종합계획에서 “한방진료의 진단과 치료가 주관적, 개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임상 표준화가 확대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감기 치료제에 들어가는 한약재 성분과 함량, 투여량 등이 표준화되지 않아 한방의료기관마다 제각각이라는 의미인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양한방 협진 임상연구와 표준 진료 프로토콜을 만들겠다는 것인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복지부는 양한방 협진을 활성화하기 위해 한방의료를 어떻게 표준화할 것인지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한방진료 표준화 미비 지적에 복지부 '신중론'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양한방 협진의 우수성과 비용효과성을 입증하고, 양약과 한약의 병용투여에 따른 부작용을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협진을 위한 진료가이드라인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와 함께 이 관계자는 “의료계와 한의계가 정서적으로 양한방 협진의 필요성에 대해 합의가 필요해 우선 공공의료기관부터 선도적으로 시행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의료기관부터 의사와 한의사를 물리적으로 결합시키겠다는 의미다.

한의학 표준화에 대해서도 복지부는 "한방의 특색을 잃을 수도 있어 성급하게 할 수 없다”고 말해 양한방 협진 정책이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식 행정으로 치닫고 있다.

한방 과학화 없이 양한방 협진 없다

정부의 양한방 협진 정책에 대한 비판론도 만만치 않다.

한국한의학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한방 치료기술을 객관화, 과학화하지 않으면 양한방 협진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양한방 협진을 하다가 의료사고가 발생할 경우 의사와 한의사의 책임소재가 밝혀져야 하는데 한약의 안전성과 독성 문제가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어느 의사가 협진에 응하겠느냐는 것이다.

양한방 협진을 늘리기 이전에 치료효과와 비용효과성을 우선 입증해야 한다는 지적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이 연구원은 “양약과 한약을 같이 먹으니까 치료기간이 3개월에서 2개월로 단축됐다거나 치료비가 300만원에서 150만원으로 줄었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면서 “결국 양한방 협진은 과학과 경제성이 결정하는 것이지 의사와 한의사가 손을 잡는다고 활성화되는 게 결코 아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의사와 한의사가 협진하면 좋으니까 신뢰를 가지라고 하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며 “축적된 근거를 바탕으로 한단계, 한단계 나아가야 한다”며 정부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중복진료로 진료비 부담만 가중

양한방 협진에 참여하고 있는 의사들도 부정적 시각이 적지 않다.

지난해 7월 경희의료원 의료진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의대 교수들은 대체의학의 관점에서 한방이 협진을 하기에 부족하다는 응답이 39.6%에 달했고, 향후 의료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협진이 필요하다는 반응은 8.6%에 불과했다.

반대로 경희 한의대 교수 56%는 양한방 협진의 발전가능성이 크다고 답변해 대조를 보였다.

경희의대 한 교수는 “한방은 과학이라기보다 철학”이라면서 “과학과 철학이 결합해 진료를 한다는 게 쉽겠느냐”며 어려움을 털어놨다.

개원가의 반응은 더욱 냉담하다.

서울의 한 재활의학과의원 원장은 “양한방 협진의 우수성을 입증할 근거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협진기관이 늘어나는 것은 다 보약을 팔아먹으려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결국 환자들은 양방과 한방을 중복치료하면서 진료비만 날리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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