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비 지불체계 포괄형으로 개편"

이창열
발행날짜: 2003-11-07 06:53:23
  • 김창엽 교수, 포괄수가제 총액예산제 도입 주장

현행 지불제도인 행위별수가제에서 탈피하여 포괄형 진료비 제도로 바꾸지 않으면 건강보험재정 구조는 지속적으로 불안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김창엽 서울대의대 교수는 6일 참여연대에 기고한 글을 통해 “일부에서는 병원이나 의원의 부정한 진료와 부당한 진료비 청구가 보험재정 누수의 주원인이라고 주장하나 이것은 사소한 이유에 지나지 않는다”며 “이미 우리나나 건강보험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정교한 심사제도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이어 “모든 진료내용을 샅샅이 심사하고 일일이 계산해서 진료비를 지급하는 제도 아래서 부정진료를 철저히 방지하는 것은 마땅히 그래야 할 일이지만 보험재정을 보호하는 방법으로는 지엽말단의 문제일 뿐이다”고 주장했다.

또한 “결국 현 구조를 그냥 두고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결정적인 방법을 찾기 어렵다”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달리 거의 모든 병의원이 민간소유인지라 이들이 경영에 무관심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모든 진료를 일일이 건수별로 계산하는 현재의 행위별수가제에서는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이나 이용하는 쪽이나 가급적 진료를 더 많이 하려는 동기를 갖게 되기 십상이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보험재정 지출의 팽창은 필연적이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이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이러한 ‘팽창형’ 구조가 의료공급자를 살찌우는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며 “요컨대 국민은 보험료 인상에 시달리고, 의료공급자는 경영에 위기를 맞고 있으며 정부는 예산 투입의 부담에 허덕이는 상황이 바로 팽창형 지출구조의 결과이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여기에 대한 대안으로 “보험재정 지출구조를 신속하게 ‘절약형’으로 개편하는 것이다”며 “이는 진료비 지불제도를 현재의 행위별수가제에서 포괄수가제, 총액예산제, 총괄계약제 등의 포괄형 진료비 제도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고 제시했다.

특히 “장기적으로 절약형 구조로 바꿈으로써 국민, 의료공급자, 제공자 모두가 이기는 윈윈(win-win)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며 “특히 의료공급자는 팽창형 구조에서 얻을 수 있는 과실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고, 절약형 구조에서 더 높은 전문성과 직업적 안정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김창엽 교수의 참여연대 기고문 전문이다

<김창엽의 건강세상만들기> 건강보험 재정구조, 팽창형에서 절약형으로

연말이 가까워오면서 건강보험료 인상 문제가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건강보험료 인상이 건강보험 내부의 문제를 넘어 정치, 사회문제가 된 것은 이미 오래다. 한 때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이 패배한 중요한 이유로 꼽힐 정도였고, 2000년 이후 건강보험 재정이 고갈되면서 보험료를 둘러싼 논란이 정권 차원의 문제가 된 적도 있다.

지금은 좀 잠잠해졌다지만, 보험료 인상 문제가 가진 폭발력은 여전하다. 올해도 보험료 인상 방침이 알려지면서 일부 거대언론을 중심으로 "직장인만 봉"이라는 식의 해묵은 선동(?)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사실 사실을 왜곡하는 선정적 기사는 큰 문제가 아니다. 제대로 된 사실을 밝히면 되기 때문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장기적으로 건강보험 전체의 재정안정을 장담할 수 없다는 데 있다. 현 건강보험의 구조상 보험수입의 증가가 지출의 증가를 따라잡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한두 해 진료비 지출이 주춤하고 있지만, 수입을 앞지르는 지출의 증가는 언제라도 다시 나타날 수 있다.

왜 건강보험의 재정이 이토록 불안정한가. 건강보험은 정부의 일부 예산지원이 있다 하더라도 근본적으로는 보험료 수입으로 지출을 충당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도 지출이 늘어나는 만큼 보험료를 더 징수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결국 보험료 인상을 피하기 위해서는 지출을 현상에서 유지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나 건강보험의 지출구조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보험재정의 지출 증가에는 보험 적용대상 항목의 증가, 보험급여 기간의 연장, 의료 이용의 증가, 의료 제공자 증가에 따른 서비스 제공 증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는 보험 급여의 확대를 포기하고 의료 이용을 줄이면 마냥 쉬운 일이다. 그러나 가뜩이나 '반쪽보험'이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는 마당에 최소한의 급여확대마저 포기하는 것은 국민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의료 이용도 소득의 증가와 국민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점점 더 높아지는 것을 생각하면 줄어들기는커녕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병원과 의사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진료량도 더욱 가파르게 증가할 것이 틀림없다.

일부에서는 병원이나 의원의 부정한 진료와 부당한 진료비 청구가 보험재정 누수의 주원인이라고 주장하나, 이것은 아주 사소한 이유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정교한 진료비 심사제도를 가지고 있다. 모든 진료내용을 샅샅이 심사하고 일일이 계산해서 진료비를 지급하는 제도 아래서, 부정진료를 철저히 방지하는 것은 마땅히 그래야 할 일이지만 보험재정을 보호하는 방법으로는 지엽말단의 문제일 뿐이다.

결국 현 구조를 그냥 두고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결정적인 방법을 찾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달리 거의 모든 병의원이 민간소유인지라 이들이 경영에 무관심할 수 없다. 게다가 모든 진료를 일일이 건수별로 계산하는 현재의 행위별수가제(行爲別酬價制)에서는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이나 이용하는 쪽이나 가급적 진료를 더 많이 하려는 동기를 갖게 되기 십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험재정 지출의 팽창은 필연적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이러한 '팽창형' 구조가 의료공급자를 살찌우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병의원이 만성적인 경영위기를 호소하고 있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요컨대 국민은 보험료 인상에 시달리고, 의료공급자는 경영에 위기를 맞고 있으며, 정부는 예산투입의 부담에 허덕이는 상황이 바로 팽창형 지출구조의 결과이다.

그렇다면 더 큰 보험재정의 위기가 오기 전에 고려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인가. 그것은 보험재정의 지출구조를 신속하게 '절약형'으로 개편하는 것이다. 이는 진료비 지불제도를 현재의 행위별수가제에서 포괄수가제, 총액예산제, 총괄계약제 등의 포괄형(包括型) 진료비 제도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선진 여러 나라가 이러한 방향으로 진료비 제도를 바꾸었고, 우리와 가장 비슷한 제도를 가졌다고 할 만한 이웃 나라 일본도 포괄수가제 도입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는 중이다. 이들 나라가 제도를 바꾸고 있는 이유는 우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단기적으로 이러한 구조개편의 가장 강력한 반대그룹은 의료공급자일 것이다. 국민들도 익숙하지 않은 제도라서 그리 환영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절약형 구조로 바꿈으로써 국민, 의료공급자, 제공자 모두가 이기는 윈윈(win-win)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의료공급자는 팽창형 구조에서 얻을 수 있는 과실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고, 절약형 구조에서 더 높은 전문성과 직업적 안정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건강보험 재정의 위기는 조만간 또 다시 닥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약간의 국고 지원 증액이나 심사강화를 통한 보험재정 보호로는 조만간 더욱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문제 해결을 머뭇거리거나 우회할 여유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우선 보험재정의 위기구조를 국민과 의료공급자에게 솔직하게 설명하고, 모두가 이길 수 있는 해결책으로서의 구조개편을 설득하여야 할 것이다. 또 구조개편을 전제로 장기적으로 급여확대를 위해서는 보험료의 추가부담이 불가피하다는 것도 설득하여야 한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가 보험료 수준이 가장 낮고, 현재와 같은 '저보험료-저급여'의 틀을 벗어나 '적정 보험료-적정급여'의 틀로 가야 한다는 설득에 나서야 한다.

물론 이 모든 설득은 충분히 투명하고 합리적인 정책적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효율적이지도, 공정하지도, 그리고 공평하지도 못한 제도운영으로는 어떤 새로운 대안도 국민의 공감대를 얻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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