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면역학 등 세부화 양상...의사출신 대학원생 '극소수'
<특별기획>의사에게 해부학을 질문한다수 십 년째 답보상태에 머물던 해부학이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어느해보다 따뜻한 올 겨울. 달콤한 동면기에 젖어있던 의대생들이 3월 개강의 시작종을 준비하며 기지개를 펴고 있다. 특히 예과를 마친 학생들은(의학전문대학원 1년차 해당) 의사가 되기 위한 본격적인 과정에 입문하는 4년간의 고행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이중 본과 교육의 첫 과정인 ‘해부학’(Anatomy)은 매년 그랬듯이 예비의사에게 커다란 산으로 다가가고 있다. 모든 의사에게 잊을 수 없는 과정이자 지워지지 않은 불안감과 긴장, 희열을 가져다 준 학문인 ‘해부학’이 의학계에 던지는 질문은 무엇일까. 의대생을 가르치는 교수들의 시간여행을 통해 의사에게 각인되어 있는 해부학의 의미와 중요성 그리고 풀어야할 과제를 고민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지워지지 않은 추억 '해부학'
②해부실습 현장에 가다
③진화중인 해부학, 교육론 '변화'<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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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학 도입으로 해부학이 한국에 첫 발을 내딪지 100년이 지나지 않은 현재 해부학계는 교육이냐, 연구냐 아니면 이를 병행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에 빠져있다.
해부학교실 교수 대부분이 해부학이 아닌 신경학, 면역학 등 학문명과 동떨어진 세부전공을 하고 있는 상태이다.
서울의대 해부학 교수 9명 중 1~2명만이 해부학과 직접 연관된 세부전공을 하고 있을 뿐 나머지 교수들은 개별적 관심사를 연구하는 변형된 분과 제도의 양상을 띄고 있다.
본과 첫 학생교육으로 의학의 관문이자 영원히 풀어야할 숙제로 인식된 해부학이 왜 이런 문제점을 안고 있을까.
여기에는 수 천 년 거슬러 올라가는 해부학의 장구한 역사속에 해부학은 이미 파헤쳐지고 해부당해 더 이상 세간의 관심을 끌 수 없다는 학계의 자괴감이 내포되어 있다.
서울의대 해부학 모 교수는 “왜 해부학을 선택했냐구요? 글쎄, 마땅히 전공할 게 없어서..”라며 “해부학 내부에서도 교육기능으로 만족할 것인가, 연구기능을 보강할 것인가를 놓고 매번 논의하고 있다”고 말해 해부학 교수들이 느끼는 고민을 내비쳤다.
또 다른 교수는 “해부학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지 논의중이나 연구보다 교육에 집중하는 양상을 띄게 될 것”이라고 전하고 “해부학계는 최근 전국 의과대학에서 실행중인 해부학 교육실태를 파악해 실습과정이나 평가의 표준화를 모색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과거와 다른 해부학의 추세를 피력했다.
죽은자로 시작하는 의학교육 올바른가?
임상과 교수진도 해부학의 한계와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는 상태이다.
서울대병원 내과 중견 교수는 “살아있는 인간을 진찰하고 치료하는 의사가 학생시절 처음 접하는 환자가 죽은 환자인 ‘카데바’라는게 아이러니 하다”며 “인간을 오래 살게 하는게 최종목표인 의사의 시작을 죽은자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은 해부학이 고민해야 할 사항”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어 “캐나다 유명 의과대학은 학생의 첫 실습교육에서 교통사고나 총상을 입은 환자의 모습을 담은 시청각 교육을 실시하는 등 살아있는 환자를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고 말하고 “해부실습이 예비의사에게 던지는 물음과 고민은 크나 환자중심으로 변하는 진료패턴과 시스템을 적응할 수 있는 교육방법이 강구돼야 할 것으로 본다”며 새로운 접근을 주문했다.
또 다른 내과 교수는 “해부학의 선구자인 이탈리아 베잘리우스는 공동묘지 시체를 이용해 해부학을 연구했으며 로마시대 의사들은 검투사간 경기에서 패해 사형당한 검투사의 시신을 직접 실습용으로 사용하는 등 지난 300년간 해부학이 의학을 주도해왔다”며 “지금 의학교육 과정도 해부학에서 출발해 생리학, 생화학으로 발전해 나간 의학의 역사와 동일 선상에서 차례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해부는 인체를 부분으로 보나 의사는 환자 머리에서 발끝까지 전체를 볼 줄 알아야 한다”고 전제하고 “해부학이 의사들에게 주는 의미는 크나 진료현장에서 익힌 학문을 통합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시키지 못했다”며 통합론에 기초한 해부학 교육방법을 제언했다.
그러나 이 교수는 “해부학을 암기과목에 불과하다고 격하시키는 의사도 있으나 인체암기가 의사에게 미치는 영향은 대단하다”며 “오랜 진료경험을 통해 환자가 내원하면 얼굴만 보고 어디가 아프고, 어느정도 경과했는지 진단할 수 있는 것에는 해부학에서 배운 인체기능과 명칭이 크게 작용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반해 서울대병원 외과 모 교수는 “매일 수술이 생활화되다 보니 과거에 배운 해부학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하고 “현대 외과학은 단순한 해부학 차원을 넘어 수술적 접근법에 기반을 둔 치료에 심혈을 기울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해부학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던졌다.
"외과계 방식의 수술적 해부법 접목해야"
성형외과 교수도 “해부학 실습을 단순한 인체용어와 기능 암기로 국한하지 말고 외과계 교수들이 참가해 수술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절개하고 어떻게 접근하는가라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강의가 필요하다”며 “모든 외과책의 책머리는 해부를 시작으로 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학문이나 이를 어떻게 가르쳐 의사로 육성시킬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 교수는 이어 “국문으로 변화된 해부학용어는 진료현장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전하고 “해부학자만의 만족감을 위해 인체 명칭을 국문으로 사용한지 모르나 수술실과 검사실 등 긴박감 넘치는 현장에서 한글로 된 인체명으로 사용하는 대학병원은 한 군데도 없다”며 한글 용어변경에 대한 문제점을 꼬집었다.
이같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진료과 교수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기초학문으로써 해부학을 바라보는 정부와 의학계의 시선이 점점 차가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의대 경우, 전체 대학원생 30여명 중 M.D는 1~2명에 불과할 뿐 나머지는 자연계를 전공한 Ph.D로 구성되어 있어 향후 교수진 배출시 의사출신을 찾아보기가 거의 힘들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변화하는 의료환경속에서 과거의 구태인 해부학의 교육방법을 개선시켜야 한다는데 동의하나 개념적 변화를 요구하는 내과계와 수술중심의 교육적용을 주장하는 외과계의 시각차를 해부학계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지켜볼 일이다.
<취재후기:이번 기획기사를 위해 해부학 실습을 허락해주신 서울의대 해부학교실 황영일 교수와 인터뷰에 응해주신 이화의대 동대문병원 신경외과 박동빈 교수, 서울대병원 내과 김성권 교수 등 많은 교수진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