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 많이 하신 분이었는데...." 직원들 오열
24일 병원 경영난을 못이겨 음독 자살한 충북음성 성모병원 故오동성 원장.
25일 오후 기자는 오원장의 유해가 안치된 고려대 안암병원 영안실을 찾았다.
기자가 빈소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소식을 전해듣고 달려온 고인의 가족과 지인, 그리고 병원직원 1백여명이 엄숙한 분위기 속에 고인의 추모예배를 진행 중이었다.
빈소는 입구에부터 조문객으로 붐볐고, 복도에는 각계 각층에서 보내온 조화들이 오 원장의 마지막 길을 향기롭게 장식했다.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건장한 경비원들이 앞을 가로막고 기자는 출입할 수 없다며 취재를 거부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바로 고인의 예비사위인 연예인 Y씨를 취재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스포츠 연예지 기자들은 줄잡아 일이십명 정도나 몰려있었기 때문이다.
기자는 유족들에게 의료계 신문 기자임을 설명했고 곧 상주의 안내를 받아 취재를 시작했다.
영정 곁에는 유족들이 추모예배를 드리고 있는 가운데 고인의 질녀가 설움이 복받쳐 오열하고 있었다. 그녀를 달래는 친지들 또한 서글픔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들 일색이다.
그녀는 가족들과 부둥켜 안고 울먹이며 억울함과 서글픔 속에 계속해서 흐르는 눈물을 흰수건으로 닦았다.
추모예배는 계속해서 이어졌고 잠시 쉬는 시간을 틈타 조문객들이 문상을 하고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냈다.
유족들은 너무 당황스럽고 놀라서 말이 안나온다며 조금 진정된 후에 이야기 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혀 그들 옆에서 시간을 가지고 기다리기로 했다.
그들은 인터뷰를 앞두고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는 기색이 역력했다.
유족측에 따르면 故오동성 원장이 지난해 법인 폐업을 결정한 시기에 직원들과 환자들을 '나몰라라' 할 수 없다며 채무가 있어도 한번 잘해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병원을 인수 했지만 뜻대로 잘 안된 것 같다고 안타까워 했다.
병원측 직원이라고 밝힌 한 조문객은 "오원장이 병원을 인수 한 후 무의탁 노인들을 위한 서비스와 봉사를 하는 한편, 지역주민들에게도 봉사활동이나 복지사업을 펼쳤다"며 "정말 좋은일 많이 하신분인데 이렇게 먼저 떠나가시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
전직원이 똘똘 뭉쳐 병원의 수익성을 높이고 자구책을 마련하려 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아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까지의 정황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기존 법인이 빠져나가고 물려준 20억원의 채무는 작은 돈이 아니었고 계속되는 적자행진에 부채를 갚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원장은 민간사채까지 끌어쓰며 병원을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계속되는 채권자들의 독촉을 피할수는 없었다."
결국 병원은 1차 부도를 내고 말았고 채권자들은 직원들의 인건비 삭감분 상환을 전제로 어음만기 연기를 제시했으나 직원들은 인건비 삭감전 병원운영 실사가 순서임을 판단했고 실사를 먼저 실시할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그러나 병원의 회계 담당자들은 이미 병원을 떠나버렸고 채권단의 독촉과 직원들의 경영실사 요구에 오원장은 상당한 심적 압박감을 받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조측 한 관계자는 "처음부터 오원장님이 부채가 있는 병원을 인수한다는 것에 반대했지만 일이 이렇게까지 될줄 몰랐다며 극구 말렸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노조는 또 "고인이 돌아가시기 전에 병원의 재산권을 모두 노조에게 넘기고 직원들의 퇴직금에 보태 쓰라고 말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음성군의 지역 유지들은 이구동성으로 오원장이 지역주민들을 위해 애를 많이 썼는데 참으로 안타깝다며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또한 충북도청의 한 관계자는 "현재 중소병원들이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다. 민간병원에 정부가 재정적 지원을 할 수 없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너무 안타깝고 하루빨리 중소병원들의 수익구조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전했다.
고인의 빈소를 뒤로하고 걸어나오면서 기자의 등뒤에서 계속해서 들려오는 유족들의 울음소리가 어느새 참담한 의료계가 내는 울음소리로 바뀌어 들리고 있었다.
25일 오후 기자는 오원장의 유해가 안치된 고려대 안암병원 영안실을 찾았다.
기자가 빈소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소식을 전해듣고 달려온 고인의 가족과 지인, 그리고 병원직원 1백여명이 엄숙한 분위기 속에 고인의 추모예배를 진행 중이었다.
빈소는 입구에부터 조문객으로 붐볐고, 복도에는 각계 각층에서 보내온 조화들이 오 원장의 마지막 길을 향기롭게 장식했다.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건장한 경비원들이 앞을 가로막고 기자는 출입할 수 없다며 취재를 거부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바로 고인의 예비사위인 연예인 Y씨를 취재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스포츠 연예지 기자들은 줄잡아 일이십명 정도나 몰려있었기 때문이다.
기자는 유족들에게 의료계 신문 기자임을 설명했고 곧 상주의 안내를 받아 취재를 시작했다.
영정 곁에는 유족들이 추모예배를 드리고 있는 가운데 고인의 질녀가 설움이 복받쳐 오열하고 있었다. 그녀를 달래는 친지들 또한 서글픔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들 일색이다.
그녀는 가족들과 부둥켜 안고 울먹이며 억울함과 서글픔 속에 계속해서 흐르는 눈물을 흰수건으로 닦았다.
추모예배는 계속해서 이어졌고 잠시 쉬는 시간을 틈타 조문객들이 문상을 하고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냈다.
유족들은 너무 당황스럽고 놀라서 말이 안나온다며 조금 진정된 후에 이야기 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혀 그들 옆에서 시간을 가지고 기다리기로 했다.
그들은 인터뷰를 앞두고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는 기색이 역력했다.
유족측에 따르면 故오동성 원장이 지난해 법인 폐업을 결정한 시기에 직원들과 환자들을 '나몰라라' 할 수 없다며 채무가 있어도 한번 잘해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병원을 인수 했지만 뜻대로 잘 안된 것 같다고 안타까워 했다.
병원측 직원이라고 밝힌 한 조문객은 "오원장이 병원을 인수 한 후 무의탁 노인들을 위한 서비스와 봉사를 하는 한편, 지역주민들에게도 봉사활동이나 복지사업을 펼쳤다"며 "정말 좋은일 많이 하신분인데 이렇게 먼저 떠나가시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
전직원이 똘똘 뭉쳐 병원의 수익성을 높이고 자구책을 마련하려 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아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까지의 정황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기존 법인이 빠져나가고 물려준 20억원의 채무는 작은 돈이 아니었고 계속되는 적자행진에 부채를 갚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원장은 민간사채까지 끌어쓰며 병원을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계속되는 채권자들의 독촉을 피할수는 없었다."
결국 병원은 1차 부도를 내고 말았고 채권자들은 직원들의 인건비 삭감분 상환을 전제로 어음만기 연기를 제시했으나 직원들은 인건비 삭감전 병원운영 실사가 순서임을 판단했고 실사를 먼저 실시할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그러나 병원의 회계 담당자들은 이미 병원을 떠나버렸고 채권단의 독촉과 직원들의 경영실사 요구에 오원장은 상당한 심적 압박감을 받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조측 한 관계자는 "처음부터 오원장님이 부채가 있는 병원을 인수한다는 것에 반대했지만 일이 이렇게까지 될줄 몰랐다며 극구 말렸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노조는 또 "고인이 돌아가시기 전에 병원의 재산권을 모두 노조에게 넘기고 직원들의 퇴직금에 보태 쓰라고 말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음성군의 지역 유지들은 이구동성으로 오원장이 지역주민들을 위해 애를 많이 썼는데 참으로 안타깝다며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또한 충북도청의 한 관계자는 "현재 중소병원들이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다. 민간병원에 정부가 재정적 지원을 할 수 없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너무 안타깝고 하루빨리 중소병원들의 수익구조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전했다.
고인의 빈소를 뒤로하고 걸어나오면서 기자의 등뒤에서 계속해서 들려오는 유족들의 울음소리가 어느새 참담한 의료계가 내는 울음소리로 바뀌어 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