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상담, '세번 놀랐다'

정상미
발행날짜: 2003-11-02 17:19:05
  • 의료사고시민연합 정상미 연구원

20여년동안 병원에 근무를 하면서 가장 두려웠던 부분은 의료사고였다. 그러나 직접 의료사고의 경험이 없었던 관계로 피부에 와닿지는 않았었고, 다만 ‘일어날 수도 있다’ 라는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는 있었던 것 같다.

병원에서의 근무를 그만두고, 세월이 흘러 지금 이렇게 의료사고 시민연합에서 일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 우연한 기회로 이 단체를 처음 방문하여 새삼 놀라웠던 것들이 있다. 그 중 첫 번째는 의료사고가 이렇게도 많나하는 것이었다.

피해자들을 상담하는 과정에서 또 한번 놀라운 일은 진료를 담당했던 의사 선생님들의 태도변화였다. 사고 후 의료진은 분명히 의료과오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 미안하다라고 사과를 했다가도, 이후 사고 해결을 위해 면담을 하는 과정에서 결국 책임을 회피하는 일들이 빈번하여 이에 대해 분개하는 환자 및 가족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자동차가 있는 이상 교통사고는 발생하고, 병원에 환자가 있고, 의사가 神이 아닌 이상 의료사고는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생명을 다루는 의사는 진료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물론, 사고 후 수습에 있어서도 환자의 입장에서 최대한 돌보아야함에도 불구하고, 진료기록을 검토하다보면 이토록 환자를 방치할 수 있을까하는 경우의 사건도 많아 한탄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실제로 우리 단체에 찾아오는 많은 분들이 병원측의 성의 있는 한마디의 사과라도 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끝으로 놀란 사실은 의료사고가 분명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 줄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나, 제대로 된 기관, 단체가 우리나라에는 아직 없다는 사실이다.

이에 의료사고 시민연합이 생겨나게 된 계기가 되었으며, 우리 단체는 의료사고 피해자를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수 있도록 애쓰고 있으며, 피해자들을 직접 상담하거나 피해구제를 위한 기반조성을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

피해자의 의견을 존중하고 최대한 피해구제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정황과 진료기록을 중심으로 정확한 분석 결과를 가지고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때로는 피해자들로부터 ‘의사들을 대변하는 단체냐?’ ‘진정한 의료사고 피해자를 위한 시민단체냐?’는 등의 항의를 받기도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다양한 이익단체와 압력단체가 생겨나 자기네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데모를 하거나 시위를 하면서 폭력까지도 난무한 상황이다. 1인시위도 종종 볼 수 있다. 의료사고 피해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당장 분한 마음에 병원 앞에서 1인 또는 소수의 인원이 시위를 합니다. 그러나 병원 측 으로부터 업무방해죄나 명예훼손죄로 역고소를 당하여 또 한 번 피해를 입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러한 피해자들에게 데모와 시위를 자제시키고, 최대한 병원과 대화로 합의를 볼 수 있도록 설득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의료사고의 건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으나 의료사고에 대한 정확한 통계자료는 없는 실정이다. 우리가 유명한 의사나 병원에 대한 기사는 접할 기회가 많지만 사고다발한 병원, 사고의사에 관한 기사는 거의 접할 수가 없다.

의료사고 피해자들조차도 사고 병원이나 사고의사 이름을 물어볼 때 환자에게 피해가 갈 것을 우려하여 얘기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통계를 낸다는 것은 요원할 것이다.

의료사고나 분쟁을 줄이는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응급실 문제와 의사와 환자
사이의 유대관계를 우선으로 꼽고 싶다. 예를 들어 응급으로 들어온 환자를 경험이 많은 전문의가 진료만 했어도 살릴 수 있는 생명을 경험이 부족한 의사의 오진이나 치료지연으로 인하여 몇 시간 만에 사망에 이른 환자를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병원이나 의사의 입장에서 의료사고 분쟁을 줄일 수 있는 방법으로 중요한 것은 환자를 성실하게 돌보는 등의 환자와의 인간적인 유대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고 후에라도 환자나 보호자와 30분만 진지하게 대화한다면 분쟁의 여지를 상당부분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의료사고 분쟁 해결을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의료사고 피해구제를 위한 법(의료분쟁조정법)의 제정이다.

의료분쟁조정법은 의사단체에서 1989년 입법안(의료분쟁조정법안)이 처음 주장된 이후 14년이 지난 지금까지 관련된 법이 제정되지 못하고 있고 이는 의사들의 주장이 상당히 강한 태생적 한계와 의료소비자 입장에서의 법의 제정이 전재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의료법, 민사조정법, 소비자보호법에 의해 의료분쟁조정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국민적 외면으로 인하여 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며
이는 이 제도를 이용하여도 적절한 피해구제가 어렵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인 스스로조차 법의 필요성을 절실히 통감하면서도 정작 지금까지 제정되지 못하고 있고 국민과 의료소비자 입장에서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

의료소비자, 의료인 모두를 위하여 의료사고 피해구제를 위한 법은 조속히 제정되어야하며 무엇보다 환자 권리보호나 피해구제를 위한 법이 만들어져야한다.

의료소비자 구제를 위한 법이 아닌 의사 구제를 위한 법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 단체에는 의사선생님들도 사고에 대한 문의를 해 오는 경우도 있다. 진료를 맡은 환자가 잘못되면 의사인 자신에게도 물론 타격일 수 있다. 과오에 대해서는 인정할 줄 알고, 설령 과오가 아니더라도 환자에게 잘못되었다면 환자 및 가족은 커다란 상처를 입었음에 틀림없다. 충분한 위로의 모습은 취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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