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의료원 정년퇴임 김형묵 교수
고려대학교가 우석대학교를 합병하기 이전부터 있었던 일이 있다.
당시에 우석대학교 의과대학 병원장 서순규 교수가 흉부외과를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흉부외과 이영균 교수께 부탁한 것이 마침 군복무가 끝나가는 김형묵에게 연결되어 전역 다음날인 1971년 7월 31일부터 우석의대 혜화병원 외과에서 전임강사로 근무하면서 시작되었다.
의학부 학생 강의용으로 Synopsis of the Thoracic and Cardiovascular Surtery(양영출판사 1972)를 만들어서 매주 1시간씩 강의와 흉부외과 분야의 수술을 맡아 하다가 1972년에 시작된 흉부외과 전문의 제도 실시에 맞춰서 1973년 3월에 흉부외과가 개설되었다.
같이 고생한 사람은 외과에서 파견온 이경찬 선생, 인턴 길찬일 선생, 그리고 간호보조원 한명이 모두였다.
병실은 결핵환자의 투약과 수술 치료를 위해서 특설 결핵병동 20병상을 배정받아서 제대로 수술 치료를 할 수 있었다. 수술 기구나 인원이 턱없이 부족했지만 밤늦도록 열성을 다해 일해왔다.
흉부외과에서 수술을 할 수 있는 서울 시내 3개 병원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당시에 의과대학장 이수종교수의 주선으로 동경여자의과대학과 자매관계를 맺고 일본 제일의 일본심장혈압연구소 외과로 연수를 떠난 것이 1974년 말이었다.
우석대학교가 고려대학교에 합병된지 3년이 되었던 당시에 혜화병원 흉부외과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노준량 선생이 임시로 맡아서 외래를 지켜주셨다.
1975년 한해 동안 일본 심장 수술의 시조인 Sakakibara 다음으로 취임한 今野草二교수의 지도와 다섯 명의 다른 교실원들, 60여명의 조교들 틈에서 한해에 600명의 심장 수술연수 끝에 6명을 집도할 수 있는 좋은 수련기회였다. 1976년초에 송요준 선생이 교실에 들어왔고 인공심폐기(Polystan)도 갖추면서 1976년 4월 30일 흉부외과교실 첫 개심수술을 시행하였다. 그런 상태에서 흉부외과 교실의 발전에 따라 이남수, 김학제에 이어서 이인성, 노중기, 김광택, 최영호, 채성수, 이철세 등이 해마다 입국하여 초기의 개심수술에 따른 여러가지 어려움을 이겨내고 1981년에는 개심수술 100례를 기록하여 고려대학교 石塔祭에서 발표를 하였다.
1978년에 宋堯準선생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고 김주현선생이 새로 강사로 입국하여 1980년까지 교실을 함께 운영하다가 서울의대 흉부외과로 이적하였고, 이후로는 고려의대 흉부외과 교실 출신들과 교실을 운영해오고 있다.
학생교육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국내의학의 발전단계에서 꼭 필요한 성서로 "흉부외과학"을 고려의학 출판사에서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간한 것이1980년이었고, 흉부외과학 교실 홍보를 위하여 1979년에 후생신보의 "심장병 이야기", 1981년 의협신보의 "인공장기", 1983년 의학신보의 "나의 최근 치료", 1983년 동아 일보의 "홈 닥터", 1984년 후생신보의 "심장병의 진단과 치료", 1985년 일요건강의 "홈 개어", 1991년 병원신보의 "의창", 1993년 병원신보의 "응급센터 당직의사 매뉴얼", 1994년 고대신문의 "탁류세평"등 연제물도 거의 쉴새없이 실었다.
또한 외국의 의학전문 서적을 번역하여 국내 출판물로 나온 것은 1978년 Sakakibara의 "심장병의 올바른 지식"을 비롯하여 매년 1~2권씩 출판하여 오면서 38권에 달하는 것이어서 그 동안 쉴새 없이 의학 교류에 노력해 왔다. 흉부외과학 교과서는 1992년에 손광현, 서경필, 조범구 등과 공저로 "최신 흉부외과학"을 새로 출판하여 현재도 사용중이지만 개정판이 출판되어야 할 것이다.
흉부외과학교실의 개설과 여러분들의 노력으로 국내에서 충분한 발전과 입지를 확보하였으며, 1983년에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구로병원에 흉부외과를 개설하여 김창호, 이인성, 이홍섭 선생들이 이끌어 오다가 1년만에 김창호, 이홍섭 선생이 퇴진하고 현재는 김학제, 최영호, 손영상 선생들이 활동하여 번성하고 있으며, 1998년에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안산병원에 흉부외과가 개설되어 이인성, 신재승 선생들이 새롭게 활등을 시작하고 있다.
흉부외과학교실이 제자리를 잡고 교실원들이 모여들면서 연구활동도 활발히 진행하여 1979년 이후 "생체판의 제작 및 실험"을 비롯하여 "한국의 심장수술 현황", "인공심폐기용 산화기", "인공판막의 개발", "국산 막형 산화기의 체외순환 임상 성적", "Chemical modification of Implantable Biological tissue for anticalcification","In vivo canine studies of a sinkhole valve and vascular graft coated with biocompatable PU-PEO-SO3", "생체적합성 인조혈관의 개발", "응급소생술을 위한 이동식 심폐기의 개발", "항 칼슘 폣취 개발", "이동식 박동형 체외 심폐 보조기의 개선, 전임상 평가 및 상품화"등 계속하여 왔다.
이런 연구활동을 국내외 학자들과 공동으로 연구토론하기 위하여 2000년에 고려대학교 심장혈관연구소를 개설하여 2002년에 제 1회 심장혈관연구소 개소 기념 국제 심포지움을 개최하였고, 2003년에는 고려대학교에 한국 인공심장연구소를 설립하여 개소 기념 국제 심포지움을 개최하였다.
흉부외과학교실의 발전과 더불어 인공장기에 관한 연구를 병행하면서 의공학 분야의 연구와 의학부생들에 대한 교육이 필요해져서 2000년에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의공학교실을 설립하고, 김형묵, 이규백, 박용두 선생등이 교실을 운영하면서 연구비로 재료공학등 의료기 공학분야의 연구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이들 연구 활동과 학생교육 및 임상진료활동은 흉부외과학 분야는 물론 의공학분야에서도 많은 연구성과와 임상성적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당시에 우석대학교 의과대학 병원장 서순규 교수가 흉부외과를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흉부외과 이영균 교수께 부탁한 것이 마침 군복무가 끝나가는 김형묵에게 연결되어 전역 다음날인 1971년 7월 31일부터 우석의대 혜화병원 외과에서 전임강사로 근무하면서 시작되었다.
의학부 학생 강의용으로 Synopsis of the Thoracic and Cardiovascular Surtery(양영출판사 1972)를 만들어서 매주 1시간씩 강의와 흉부외과 분야의 수술을 맡아 하다가 1972년에 시작된 흉부외과 전문의 제도 실시에 맞춰서 1973년 3월에 흉부외과가 개설되었다.
같이 고생한 사람은 외과에서 파견온 이경찬 선생, 인턴 길찬일 선생, 그리고 간호보조원 한명이 모두였다.
병실은 결핵환자의 투약과 수술 치료를 위해서 특설 결핵병동 20병상을 배정받아서 제대로 수술 치료를 할 수 있었다. 수술 기구나 인원이 턱없이 부족했지만 밤늦도록 열성을 다해 일해왔다.
흉부외과에서 수술을 할 수 있는 서울 시내 3개 병원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당시에 의과대학장 이수종교수의 주선으로 동경여자의과대학과 자매관계를 맺고 일본 제일의 일본심장혈압연구소 외과로 연수를 떠난 것이 1974년 말이었다.
우석대학교가 고려대학교에 합병된지 3년이 되었던 당시에 혜화병원 흉부외과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노준량 선생이 임시로 맡아서 외래를 지켜주셨다.
1975년 한해 동안 일본 심장 수술의 시조인 Sakakibara 다음으로 취임한 今野草二교수의 지도와 다섯 명의 다른 교실원들, 60여명의 조교들 틈에서 한해에 600명의 심장 수술연수 끝에 6명을 집도할 수 있는 좋은 수련기회였다. 1976년초에 송요준 선생이 교실에 들어왔고 인공심폐기(Polystan)도 갖추면서 1976년 4월 30일 흉부외과교실 첫 개심수술을 시행하였다. 그런 상태에서 흉부외과 교실의 발전에 따라 이남수, 김학제에 이어서 이인성, 노중기, 김광택, 최영호, 채성수, 이철세 등이 해마다 입국하여 초기의 개심수술에 따른 여러가지 어려움을 이겨내고 1981년에는 개심수술 100례를 기록하여 고려대학교 石塔祭에서 발표를 하였다.
1978년에 宋堯準선생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고 김주현선생이 새로 강사로 입국하여 1980년까지 교실을 함께 운영하다가 서울의대 흉부외과로 이적하였고, 이후로는 고려의대 흉부외과 교실 출신들과 교실을 운영해오고 있다.
학생교육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국내의학의 발전단계에서 꼭 필요한 성서로 "흉부외과학"을 고려의학 출판사에서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간한 것이1980년이었고, 흉부외과학 교실 홍보를 위하여 1979년에 후생신보의 "심장병 이야기", 1981년 의협신보의 "인공장기", 1983년 의학신보의 "나의 최근 치료", 1983년 동아 일보의 "홈 닥터", 1984년 후생신보의 "심장병의 진단과 치료", 1985년 일요건강의 "홈 개어", 1991년 병원신보의 "의창", 1993년 병원신보의 "응급센터 당직의사 매뉴얼", 1994년 고대신문의 "탁류세평"등 연제물도 거의 쉴새없이 실었다.
또한 외국의 의학전문 서적을 번역하여 국내 출판물로 나온 것은 1978년 Sakakibara의 "심장병의 올바른 지식"을 비롯하여 매년 1~2권씩 출판하여 오면서 38권에 달하는 것이어서 그 동안 쉴새 없이 의학 교류에 노력해 왔다. 흉부외과학 교과서는 1992년에 손광현, 서경필, 조범구 등과 공저로 "최신 흉부외과학"을 새로 출판하여 현재도 사용중이지만 개정판이 출판되어야 할 것이다.
흉부외과학교실의 개설과 여러분들의 노력으로 국내에서 충분한 발전과 입지를 확보하였으며, 1983년에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구로병원에 흉부외과를 개설하여 김창호, 이인성, 이홍섭 선생들이 이끌어 오다가 1년만에 김창호, 이홍섭 선생이 퇴진하고 현재는 김학제, 최영호, 손영상 선생들이 활동하여 번성하고 있으며, 1998년에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안산병원에 흉부외과가 개설되어 이인성, 신재승 선생들이 새롭게 활등을 시작하고 있다.
흉부외과학교실이 제자리를 잡고 교실원들이 모여들면서 연구활동도 활발히 진행하여 1979년 이후 "생체판의 제작 및 실험"을 비롯하여 "한국의 심장수술 현황", "인공심폐기용 산화기", "인공판막의 개발", "국산 막형 산화기의 체외순환 임상 성적", "Chemical modification of Implantable Biological tissue for anticalcification","In vivo canine studies of a sinkhole valve and vascular graft coated with biocompatable PU-PEO-SO3", "생체적합성 인조혈관의 개발", "응급소생술을 위한 이동식 심폐기의 개발", "항 칼슘 폣취 개발", "이동식 박동형 체외 심폐 보조기의 개선, 전임상 평가 및 상품화"등 계속하여 왔다.
이런 연구활동을 국내외 학자들과 공동으로 연구토론하기 위하여 2000년에 고려대학교 심장혈관연구소를 개설하여 2002년에 제 1회 심장혈관연구소 개소 기념 국제 심포지움을 개최하였고, 2003년에는 고려대학교에 한국 인공심장연구소를 설립하여 개소 기념 국제 심포지움을 개최하였다.
흉부외과학교실의 발전과 더불어 인공장기에 관한 연구를 병행하면서 의공학 분야의 연구와 의학부생들에 대한 교육이 필요해져서 2000년에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의공학교실을 설립하고, 김형묵, 이규백, 박용두 선생등이 교실을 운영하면서 연구비로 재료공학등 의료기 공학분야의 연구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이들 연구 활동과 학생교육 및 임상진료활동은 흉부외과학 분야는 물론 의공학분야에서도 많은 연구성과와 임상성적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