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사' 박경철 (신세계 연합클리닉 원장)
<고정칼럼 집필자 소개> |
인터넷에서 필명'시골의사'로 통하는 박경철 외과전문의는 국내 최고의 사이버애널리스트로 MBN 주식토크쇼를 진행하고 있으며 주식시장에 대한 남다른 철학과 날카로운 분석력을 인정받고 있다.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조선 시대 행형사를 읽어보면 재미있지만 한편으로는 섬뜩한 형벌이 많이있다.
그 많은 중세의 형벌중에 가장 압권이면서 정말 우리 민족다운 형벌이 바로 "팽형"이다, 이 "팽형"은 일종의 명예형으로 주로 관직을 매매하거나,혹은 축재와 관련해 사리사욕으로 가문이나 사직의 명예를 더럽힌 자들에게 내리는 중벌중의 하나였다.
이것은 이렇게 집행된다. 일단 저자거리에 거다란 솥을 내다 걸고 솥 아래에는 장작을 쌓는다, 그리고 죄수를 데려와서 흰옷을 입히고 그 솥속에 들어가게 한 다음 장작에 불을 때는 시늉을 한다, 그동안 죄인의 자제들은 호곡을 하면서 죄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장례 절차를 준비하게 된다.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면 죄인은 솥에서 내려지는데 이순간 부터 죄인은 살아 있으되 죽었으며 이름이 있으되 불리워지지 않는다, 호적과 족보에는 사망으로 기록되고, 죄인의 가족은 빈소를 차리고 조문을 받으며 죄인은 집에서건 밖에서건 흰옷을 입고 머리를 산발한 채 목숨이 다 할때 까지 죽은자가 되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인권유린으로도 비쳐지만, 사람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해하지 않고 인격 살인을 택함으로서 명예에 관한 치열한 조선시대의 정신적 가치를 읽게한다.
대개 팽형을 언도 받으면 두가지 중의 하나를 선택 할 수있다, 스스로 자결 하던지, 아니면 팽형을 당하고 인격살인을 당하는 방법인데, 대개는 죽음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만큼 명예란 중요한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참수 당하는 것 이상으로 이 형벌을 두려워하였고, 참수 당한자는 복권되었으나 팽형을 선택한자는 복권되지 않았다, 즉, 죽음으로 명예를 지킨자는 죄없음이 밝혀지면 원상복구 되지만 비록 죄가 없더라도 목숨으로 명예를 버린자는 구제되지 않는것이다.
우리는 현대사회에 접어들면서, 명예에 관해 많은것을 잃어버리고 있다,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하고, 목적보다 수단이 우선시되면서 내 손에 쥐어지는 것을 위해 내가 지켜야 할 것을 버리기가 여반장이다.
때로는 일간 신문의 정치면에서 신조를 저버린 정치인의 이야기를 보면서,때로는 한때 국내 굴지의 대그룹 회장이었던 자가 이름도 잘 모르는 작은 아프리카 어느나라에 은신하면서도 국내에 골프장을 소유하고 있다는 소식에서, 또 때로는 원조 교제와 같은 자식 보기에 부끄러운 죄를 서슴없이 저지르는 우리들의 자화상에서, 혹은 진실이 어떠하던 한때 현 대통령의 사업체 대표였던 사람이 청와대의 행정관으로 근무한다는 소식들을 접 할 때, 우리는 명예와 불명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명예를 잊고 살고 있다,
길거리에서 돌발 퀴즈를 내었을 때, "가진자와 가지지 않은자"라는 말의 앞부분에는 무엇이 들어 갈까요? 라는 문제에서 "돈" 혹은 "힘"이라는 문자를 떠올리는 것이 정답이다. 누군가가 만약 이 대목에서 "명예"를 가진자와 "명예"를 가지지 않은자로 연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이 사회의 부적격자이거나 혹은 몽상가 일 것이다.
이점에 있어서는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도 의료계 신문을 살피면, 카이로프랙틱 (이제 그 이름조차 희안하게 변형되어 있지만) , 미용의학 (이것도 노인,안면,여성,대한,한국 등이 말머리에 붙은 각자 다른 단체들이 득시글 거린다), 향기요법, 메조 , 배리아트릭스, 테이핑에 이젠 심지어 건식까지 등장해서 유료 강좌와 강의에 대한 광고가 넘쳐난다,
그리고 그 강좌의 혹은 단체의 권위를 뒷받침하기 위해 홈쇼핑의 3류 탈렌트처럼 이름깨나 알려진 대학교수가 얼굴마담으로 등장한다.
과잉의 시대에 어디 의사라고 과잉이 아닐리 없고, 세상에 사이비가 넘쳐나는데, 어디 의료계라고 없을까만은, 이들중에 나 혼자 배부르겠다고 동료를 향해 비열한 상술을 펼친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가?
지금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우리가 되찾아야 할 것들은 앞으로 우리의 지갑을 가볍게 할 기대 이익이 아니다, 정말 우리가 보호하고, 회복해야 할 것들은 의료인으로서의 자부심이며, 타인으로부터 인정 받는 명예이다, 만약 우리 스스로 명예를 지켜지 못한다면 아무도 우리를 편들어 주지 않는다.
세상에 누가 한갓 장사치로 전락한 의사편을 들어주겠는가?
이쯤에서 우리도 반드시 진지하게 지켜야 할 명예에 대해 공론에 부쳐 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를 기만하고 그 기만의 댓가로 부정한 이익을 취하거나 ( 그것이 동료를 향하던, 환자를 향하던 ), 혹은 누군가가 약자라는 이유로 그를 외면한다면 (그것이 후배의사던 환자이던) , 우리는 미래가 없다.
이제는 우리스스로 의사로서의 직업적 존중을 받기위해 노력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건강식품을 팔아서 당장 먹고 사는 것보다, 우리에게서 떠나간 대중의 마음을 돌리고, 사회를 보호하고 보호받고, 사랑하고 사랑받는 일이 우선되어야한다, 그것이 잠시 죽어서 영원히 사는길이다
명예를 목숨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나라, 팽형을 죽음보다 더 무섭게 생각했던 나라에서 우리 의사들이 먼저 명예를 지키고 일구는 켐페인이라도 벌리면, 기만과 불신의 한국사회에 잔잔한 신뢰의 메시지를 던질 수 있지 않을까..그것이 바로 의권회복의 첫 걸음이 아닐까 생각한다면 그것은 지나친 낭만일까?
명예..언젠가는 우리가 한번 돌이켜 보아야 할 명제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