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관욱 (대전 로고내과의원)

사회가 발전할수록 복지에 대한 요구는 증가한다. 특히 의료는 직접적인 삶의 질과 연관된 필수재이며, 누구에게나 필요한 만큼 공급되어야 할 공공재이다. 따라서 국가가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하여 복지정책을 확대해 나갈수록 보건의료 예산은 증가될 수밖에 없으며 이에 필요한 재정도 증가되어야 함이 당연하다. 비록 현재의 건강보험이 세금이 아닌 건강보험료라는 이름의 별도의 재원을 통해 가입자들의 공적 부조처럼 운영되고 있다 하더라도 이는 명백히 국가의 책임이자 복지정책의 근간이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보충형 민간의료보험이 여러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국민 상당수가 건강보험과는 별도로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고 있으며 이에 지출되는 비용만도 한해 10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공적건강보험의 열악한 보장성 때문이다. 이 정도로도 이미 보충형이라는 말이 무색할진데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 없이 영리병원과 민간의료보험이 도입된다면 민간의료보험시장이 국민 총 의료비의 대부분을 잠식하고 공적건강보험을 몰락시키는 공룡으로 성장할 것임은 너무도 명백하다. 공적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는 민간의료보험에 대한 수요를 감소시키고 민간의료보험으로 빠져나갈 재원을 공적보험의 영역으로 흡수할 수 있을 것이나, 반대로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는 공적보험의 보장성 강화에 대한 요구를 약화시키고 공적보험과 경쟁적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공적보험의 위축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의약분업 이후 의료계 내에서는 저수가에 대한 불만으로 인하여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와 대체형 민간의료보험제도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있어왔음이 사실이다. 그러나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는 환자뿐 아니라 의료공급자들에게도 필요한 안전장치이다. 건강보험과 결별하고 민간의료보험과 계약을 맺기를 원하는가. 그러나 공적보험이 유명유실해지고 민간보험사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면 구미에 맞지 않는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계약을 해지함을 무기로 길들이기에 나설 것이며, 말을 듣지 않는 의료기관은 민간보험사들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시장에서 퇴출당할 것이다. 의협에서 이를 막아줄 수 있을 것인가? 영리병원의 허용은 자본에 대한 의료자원의 예속을 가져올 것이며, 민간보험사와 의료영리법인의 파트너쉽을 근간으로 대형병원들을 중심으로 한 중소병원들의 체인화가 가속화 될 것이다. 자본의 거대한 흐름 속에 의료인은 그저 인력일 뿐이다. 그 때에 의사대중에게는 의협보다는 노조가 필요하게 될 지도 모른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비어가는 치즈창고를 바라보며 고민하고 있다. 단지 마음을 비우라는 충고로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진료의 왜곡현상은 각종 연수강좌의 편향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IMF 이후 서민들을 자극하던 부자아빠 신드롬이 의료계에도 불어오는 듯 하다. 부자의사를 동경하는 의사들이 늘어남은 의사들의 경제적 몰락을 반영하는 것인가. 그러나 우리의 치즈는 어디에 있을까. 공적보험의 몰락과 민간의료보험의 풍랑 속에 살아남는 소수의 선각자들만이 새로운 치즈창고를 발견할 것인가. 아니면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대하고 민간의료보험으로 과도하게 유출되는 가계지출을 공적보험으로 흡수하여 보건의료재정의 안정화와 의료의 공공성을 확보함이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지속 가능한 미래를 약속할 것인가. 현명한 판단이 요구되는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