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중립 원칙의 그늘

메디게이트뉴스
발행날짜: 2010-06-03 06:44:45
보건복지부 산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지난 1일 본회의를 열고 병리조직검사 상대가치점수를 조정하고 자연분만 수가는 50% 인상하기로 했다고 한다. 분만수가 인상으로 연간 570억원의 재정이 추가로 소요되는 만큼 병리조직검사 상대가치조정으로 연간 171억원을 절감하기로 한 것이다. 재정중립의 원칙을 상기하는 대목이다. 특정 분야의 수가를 올리면 다른 분야의 수가는 깎여야 하는 시소게임의 틀에 박혀 있는 셈이다.

복지부는 병리검사에 대해 2009년 1월 시행된 병리조직검사의 행위 재분류, 급여기준 완화로 나타난 건강보험 지출 총증가분 327억원의 52%에 해당하는 상대가치점수를 낮추는 방식으로 수가를 인하했다. 당시, 재분류와 급여기준 완화 이후 일정기간(1년) 동안 청구현황을 모니터링 하여 재검토하기로 결정한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졸지에 수가가 깎인 병리과는 망연자실이다. 병리과학회 서정욱 이사장은 “병리조직검사는 전문의가 꼼꼼히 현미경으로 보면서 암세포를 놓치지 말아야 하는 노동집약적인 진료행위인데 가뜩이나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일하는 병리과 전문의의 입장에서 수가 인하는 부실 판독을 초래해 오진 위험을 급속히 증가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복지부가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병리학회에 따르면 종합병원 이상 의료기관 286개 가운데 병리과 전문의를 채용하고 있는 곳은 160개에 불과하다. 나머지 병원에서는 병리검사 검체를 수탁검사기관으로 위탁하고 있다. 수탁검사에서 처리하는 병리조직 검체는 전체의 40%이며 72명(14%)의 전문의가 이들 검체를 처리하고 있어 업무량 과다로 인한 오진 위험에 노출돼 있는 실정이다. 실제 병리과 전문의 1인당 연간 조직검사 판독건수를 보면 대학병원 종사자가 평균 4300건인데 반해 수탁검사기관 종사자는 이보다 4배 많은 1만 6700건에 달한다.

무엇보다 더 큰 문제는 병리과 수가 인하로 전공의 수급문제가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병리과는 지금도 전문의 수가 부족해 수탁검사기관에 상당량을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는 건강보험재정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기를 바란다. 다만 의료계의 어려운 사정을 감안해 적정한 수가를 보전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우리와 의료계의 한결같은 뜻이다. 복지부는 더 이상 재정중립 원칙을 내세워 의료현실을 왜곡하지 말아야 한다.

오피니언 기사

댓글

댓글운영규칙
댓글을 입력해 주세요.
더보기
약관을 동의해주세요.
닫기
댓글운영규칙
댓글은 로그인 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으며 전체 아이디가 노출되지 않습니다.
ex) medi****** 아이디 앞 네자리 표기 이외 * 처리
댓글 삭제기준 다음의 경우 사전 통보없이 삭제하고 아이디 이용정지 또는 영구 가입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1. 저작권・인격권 등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2. 상용프로그램의 등록과 게재, 배포를 안내하는 게시물
3. 타인 또는 제3자의 저작권 및 기타 권리를 침해한 내용을 담은 게시물
4. 욕설 및 비방, 음란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