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환자집중 이유, KTX 보다 의료 질이다"

장종원
발행날짜: 2010-08-13 06:50:31
  • 신의료기술 등 도입 늦어…환자 선입견 깰 변화 필요

|분석|수도권 환자 쏠림 현상의 진짜 이유는?

올해 11월로 예정된 KTX 2단계 대구~부산 구간 개통과 관련해 부산 지역 의료계가 시끌벅적하다. KTX를 이용한 환자들의 수도권 집중이 심화돼 부산지역 의료계가 어려움에 처하게 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의 발로다.

특히 부산시의사회는 지역환자 유출을 대비하기 위해 민관이 참여하는 '부산보건의료협의회'를 최근 출범시켰으며 지역 4개 대학병원은 부산지역 의료의 우수성을 알리는 홍보포스터 1만부를 제작, 배포하기도 했다.

KTX를 위기로 느끼는 지역의료계는 부산뿐이 아니다. 대구, 대전, 광주 등 KTX 영향권에 속한 지역 모두가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다.

KTX통한 지역환자 유출 '현실화'

그렇다면 2004년 개통한 KTX가 실제로 지역환자의 이탈을 불러왔을까? 현재까지 연구결과 등을 보면 그러한 경향이 눈에 띈다.

지난해 건보공단 조사에 따르면 2008년 부산지역 환자의 서울 유출은 약 62만 3천여명으로 집계됐다. 역내 의료기관 이용률은 86.1%.

하지만 같은 기간에 대전, 광주, 충남의 지역 환자 역내 의료기관 이용률이 78.4%, 76.6%, 60.8%에 그쳐, 이미 KTX영향권인 충청, 대전권과 경북권의 환자 역외유출이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부산시의사회는 "건보공단이 환자유출에 따른 의료비와 부대비용이 약 765억원이라고 발표했지만, 환자 및 보호자의 교통숙박비, 간병비 등을 포함한다면 4000억원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보건사회연구원이 실시한 'KTX의 건강영향평가' 연구도 지역주민의 이탈을 증명하고 있다.

설문조사 결과, KTX 이용자 561명 중에서 서울지역 의료기관 이용경험자가 291명으로 51.9%에 달했다. 실제로 이들의 36.5%에 해당하는 205명이 KTX를 이용한다고 답했다.

환자들은 왜 KTX를 타고 서울로 가나

사실 KTX를 통해 서울과 지역이 가까워졌다지만 환자로서는 서울로 치료를 받는게 쉬운 일이 아니다. 교통비 등 추가 경비, 수술 후 관리의 어려움, 긴 진료대기 시간 등을 고려하더라도 그렇다.

하지만 환자들은 서울지역 대형병원의 우수한 의료 질을 불편함보다 높이 사고 있다. 특히 원정진료에 나서는 질환이 생명과 연관되는 암 등 중증질환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산에 거주하지만 서울에서 유방암 수술을 받은 백모씨(42)는 "암이 조금 진행된 상태이기도 해서 서울의 큰 병원에 믿음이 갔다"면서 "다행히 아는 분이 있어서 서울에서 수술받는데 어렵지 않았다"고 말했다.

보사연 연구에서도 서울지역 의료기관을 찾은 지방환자들은 최신의료시설 및 장비, 서울지역 의사들의 우수한 실력을 방문 이유로 꼽았다. 서울지역 의료기관 이용에 대한 만족도도 76.1%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지역 의료계는 환자들의 '선입견'이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방 대형병원들은 서울과 수도권 대형병원과 견주어 비등한 치료 실적을 내놓고 있지만, 환자들이 이를 몰라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의료기관 평가, 응급의료평가, 수술별 진료량 평가 등에서도 서울·수도권과 대구, 부산지역의 대형병원과 별다른 차이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기술 도입·서비스 마인드 한발 늦어

지표상으로는 수도권과 KTX 영향권 지역의 지방 대형병원과 차이가 없을지 몰라도, 현실속에서는 환자들이 수도권을 찾는 이유가 있다.

신의료기술, 신약에 대한 도입이 서울 대형병원에서 먼저 이뤄지다보니 중증환자들이 이들 병원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암 등 신약에 대한 임상시험 혜택을 받기 위해 서울을 찾는 환자들이 있다.

로봇수술만 해도 세브란스병원이 지난 2005년 처음 도입했지만, 부산의 경우 동아대병원이 2007년말에야 시도했다. 그것도 한강이남 최초의 로봇수술센터였다.

이러한 한발 늦은 신기술 도입이 오히려 서울 수도권 병원이 낫다는 환자들의 '선입견'을 고착화시킨다는 분석도 있다.

체감하는 서비스 마인드면에서도 그러하다. 대형병원들이 혈투를 벌이고 있는 서울, 수도권과 달리 몇몇의 맹주 병원이 자리잡은 지방병원들이 일반적으로 친절도 등이 떨어진다는 설명.

아버지가 암 판정을 받았다는 김모씨는 "지역 대학병원에서 암 경과, 치료법 등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아 당혹스러웠다"면서 "아직도 큰 병원들은 권위의식이 많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정부 집중투자와 병원들의 자립 노력 필요

환자, 특히 중증환자들의 수도권 집중은 지역 의료기반을 무너뜨리고 결국 의료전달체계까지 훼손하는 큰 해악이 될 수밖에 없다. 환자가 몰리는 대형병원 역시 환자 집중으로 의료 질이 악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도권 집중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보사연 연구도 "중증질환자의 수도권집중 현상을 완화시키기 위해 지역의 의료시설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통해 중증질환의 치료에 필요한 의료장비를 대폭 확충하고, 양질의 전문의료인력을 양성해, 수도권과의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히 "환자들이 지방의 의료기술 수준이 상당한 정도로 차이가 난다고 믿고 있으므로 이를 불식시키기 위한 획기적인 재원이 지방의료에 투입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 의료계의 의료 질 및 서비스 질 향상을 위한 노력도 중요한 부분. 적극적인 자세로 새로운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하고 이름을 알리는 노력이 환자들의 선입견을 깰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시의사회 정 근 회장도 "지역환자들에게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지역 의료인들의 질 높은 의료연구를 지원할 예정"이라면서 "그동안 소홀했던 서비스 교육도 지속적으로 지원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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