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수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의료인과 법률가 등 전문가 책임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다 보니 의사와 변호사들을 많이 알게 되고 두 자격을 모두 가진 전문가들을 종종 접하게 된다.
대표적인 전문가로서 두 영역은 분명 아직도 진입장벽이 매우 높다. 국가는 진입 여부를 일정한 형식요건으로 규율한다. 제 아무리 법률지식이 많거나 의료지식이 풍부해도 형식요건을 구비하지 않고 업무를 수행하면 처벌을 받는다.
구체적 타당성보다는 형식적 규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인 것이다. 위험한 업무를 수행할 능력을 일정한 기준으로 미리 검증받아서 그 자격을 사전에 구비하여야 하는 것이지 그 업무를 수행한 자를 사후에 능력여부를 판단하여 규율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는 그러한 자격을 가진 자들에게 업무수행에 따른 수익에 독과점적 지위를 인정한다.
돈과 몸 그리고 마음에 미치는 영향이 큰 업무를 수행하는 데 따르는 수익과 위험을 동시에 전문가들에게 귀속시킨다. 문제는 위험의 실현 단계이다.
그 위험의 실현 단계가 수익의 창출 단계이기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변호사와 의사는 그 단계가 매우 다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변호사는 의사와 달리 상담단계에서 구체적 위험의 상당부분이 실현된다.
문제는 법률가들의 위험 실현 단계를 일반인은 잘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법률가들이 구두로 제공하는 전문성, 즉 법률상담의 위험과 가치가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는 데에서 법률상담에서 장시간의 조언을 받고 나서 대가를 지급할 생각도 하지 않고 일어서는 방문자의 모습이 나타난다.
법률가의 업무가 가지는 특성을 모르고 보이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변호사 사무실 문턱이 아직도 높다는 인식 때문에 왜 이러한 글을 쓰는지 언급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사회적 취약 계층에게는 법률상담도 무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는 이미 국가나 변협 등 공익기관의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문제는 수익성을 스스로 창출해야 하는 변호사들이 사무실에서 장시간 법률상담을 하고 나서 아무것도 받지 못한다면 문제이다. 이러한 일은 대개 사회적 유력 계층, 무상 서비스가 필요 없는 계층에서 나타난다.
특히 의사들이 같은 의사출신 변호사들에게 무상의 법률상담을 기대하는 것 같다. 물론 송사로 이어지면 그렇지는 않겠지만, 법률상담의 단계에 대하여는 같은 의사출신이므로 가벼운 마음으로 그러한 기대를 하는 것 같다.
법률상담에 대하여는 왜 그럴까? 추측건대 아마도 의사와 변호사 두 영역 사이의 업무상 차이를 잘 모르는 것도 그 한 이유일 것이다.
법률 전문가들의 전문성은 법률상담에서 구두로도 충분히 발휘된다는 특성을 우선 염두에 두어야한다. 다시 말하면 법률상담만으로도 방문자는 변호사의 전문성을 충분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상담에서 갖는 변호사의 부담이 가볍지 않다는 점이다. 상담에서부터 변호사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익을 구체적으로 다룬다.
재산 문제, 가족 문제, 형사 문제 등 모두가 법률조언을 잘못하면 방문자가 현실적으로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상담의 단계가 법률전문가로서의 업무수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전문가들에 비하여 매우 높아진다.
상담 후 서류작업이나 법원 등 출입이라는 후속행위는 앞의 상담에서 확보한 사실과 선택한 법리에 바탕을 두기 때문에, 법률가의 주된 영역은 상담인 것이다.
법률가의 조력은 경우에 따라서는 오랜 시간의 법률상담으로 마무리될 수 있다.
의료 등 기능적 전문성의 경우에 상담으로 문제가 해결될 일이 거의 없고 심지어 문진을 통해서도 문제의 해결이 마무리될 가능성은 많지 않다.
이와 달리 법률 전문가들의 지적 전문성은 상담을 통한 조언에서 이미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조언의 오류가 방문자에게 구체적인 위험을 야기하므로 상담에 임하는 법률가는 매우 심각한 처지인 것이다.
또한 비법률가로부터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일이 힘들다는 것은 교수인 나도 자주 경험하는 바이다. 매우 짜증나는 일임에도 방문자의 심정을 감안하여 인내하고 그러면서도 정확한 법률조언을 위하여 필요한 사실관계를 빠짐없이 정확하게 파악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소모되는 정신력도 만만치 않다.
상담에서 나오는 방문자의 이야기 속에 문제의 맥을 제대로 찾아야 하고 그 관련 법률적 구제 내지 보호의 수단을 잘 찾아 조합시켜 조언을 해야 하는 작업 자체가, 송사로 이어지는 전 과정에서 차지하는 막대한 비중에 비하여, 매우 미미하게 여겨짐은 이것의 대부분이 법률가의 뇌 속에서 이루어지고 그 일부인 결론만이 구두로 표출되기 때문일 것이다.
방문객에 대한 현장 조언 자체도 장시간인 경우가 허다하지만, 나아가 조언 이후에도 법률가의 생각은 대개 이미 끝난 자문 내용에 계속 머물게 된다.
조언에 대한 수정 내지 보완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법률적 해결 내지 구제의 수단은 단순하지 않고 그 선택과 조합에 따른 효율성도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다.
쉽게 조언하는 것 같지만 상담을 마친 변호사의 뇌 온도를 촬영한다면 매우 높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많은 경우에 구두의 조언으로 전문성의 모든 것이 제공할 수도 있기에, 법률전문가에게 무상의 법률조언을 기대하거나 요구함은 가혹한 것이다.
물론 이처럼 무형으로 마무리된 법률적 조언에 대하여도 보통사람들은 감사하게 여기며 간혹 감사의 표시를 유형적하는 경우도 있다.
나와 같이 변호사 자격이 없는 사람은 유형적 감사표시를 수령하게 되면 변호사법에 저촉되므로 비교적 자유롭고 가벼운 마음으로 법률자문에 임하게 된다. 그런데 법률 조언과 사건 수임 등에 대한 대가를 받아서 인건비와 사무실 유지비 등을 충당해야 하는 변호사들의 처지는 다른 것 같다.
그야말로 시간을 무상 조언으로 낭비할 처지가 아닌 전문가들이 변호사인 것이다.
이제 의사 출신 변호사가 많아지다 보니 법률문제에 부딪친 의사들은 우선 같은 의사 출신 변호사를 찾게 된다.
그들이 의사 출신 변호사에게 거는 기대는 우선 사건 자체를 잘 이해하는 전문성이라는 지적 측면, 그리고 사건에서 의사가 처한 상황을 잘 이해할 것이라는 정서적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기대는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다. 하지만 과거 동업자 간 무상 조언이라는 기대까지 한다면 이는 곤란하다.
구두 조언에서부터 이미 법률가의 전문성이 본격적으로 발휘되고 제공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과거 동업자였다는 등의 이유만으로 무상 조언을 받아 가는 것은 법률가의 지적 능력과 시간을 절취하는 행위라고 하면 지나친 표현인가? 적어도 이제 알면서 그리한다면 절취이다.
변호사의 사회적 책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사회적 취약계층이 아닌 방문자들이 과거 동종 업계에 있었다는 등의 이유로 무상 조언까지 기대하는 것은, 법률조언에 따른 정신적 재산적 비용을 모르거나 대가를 지급하기 민망하여 그러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상대의 시간과 능력을 훔치는 후안무치 사례도 있을 것 같다.
두 전문가 영역을 넘나드는 이들은 우리 사회가 앞으로 키워나가야 할 중요한 인적 자산이다. 힘 있는 세력 간 소통 부재로 사회적 재원이 낭비되는 모습이 점점 많아진다. 의료 분야의 사회적 갈등 해소에 역할이 기대되는 의사 출신 변호사들이 과거 동업자들로부터 존중을 받을 때 그들의 기여도는 높아질 것이다.
그들 지적 전문성에 대한 인정과 예우가 필요한 사회적 이유이다.
법률문제로 아픈 머리 식히러 야구장을 찾은 의사가 옆 자리의 변호사에게 청하여 법률조언을 들은 지 며칠 뒤 상담료 청구서를 받는 모습은, 변호사의 사무실을 찾아와 장시간 법률조언을 다 듣고 나서 고맙다는 인사만 하고 일어서는 의사의 모습보다는 합리적이다.
대표적인 전문가로서 두 영역은 분명 아직도 진입장벽이 매우 높다. 국가는 진입 여부를 일정한 형식요건으로 규율한다. 제 아무리 법률지식이 많거나 의료지식이 풍부해도 형식요건을 구비하지 않고 업무를 수행하면 처벌을 받는다.
구체적 타당성보다는 형식적 규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인 것이다. 위험한 업무를 수행할 능력을 일정한 기준으로 미리 검증받아서 그 자격을 사전에 구비하여야 하는 것이지 그 업무를 수행한 자를 사후에 능력여부를 판단하여 규율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는 그러한 자격을 가진 자들에게 업무수행에 따른 수익에 독과점적 지위를 인정한다.
돈과 몸 그리고 마음에 미치는 영향이 큰 업무를 수행하는 데 따르는 수익과 위험을 동시에 전문가들에게 귀속시킨다. 문제는 위험의 실현 단계이다.
그 위험의 실현 단계가 수익의 창출 단계이기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변호사와 의사는 그 단계가 매우 다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변호사는 의사와 달리 상담단계에서 구체적 위험의 상당부분이 실현된다.
문제는 법률가들의 위험 실현 단계를 일반인은 잘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법률가들이 구두로 제공하는 전문성, 즉 법률상담의 위험과 가치가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는 데에서 법률상담에서 장시간의 조언을 받고 나서 대가를 지급할 생각도 하지 않고 일어서는 방문자의 모습이 나타난다.
법률가의 업무가 가지는 특성을 모르고 보이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변호사 사무실 문턱이 아직도 높다는 인식 때문에 왜 이러한 글을 쓰는지 언급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사회적 취약 계층에게는 법률상담도 무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는 이미 국가나 변협 등 공익기관의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문제는 수익성을 스스로 창출해야 하는 변호사들이 사무실에서 장시간 법률상담을 하고 나서 아무것도 받지 못한다면 문제이다. 이러한 일은 대개 사회적 유력 계층, 무상 서비스가 필요 없는 계층에서 나타난다.
특히 의사들이 같은 의사출신 변호사들에게 무상의 법률상담을 기대하는 것 같다. 물론 송사로 이어지면 그렇지는 않겠지만, 법률상담의 단계에 대하여는 같은 의사출신이므로 가벼운 마음으로 그러한 기대를 하는 것 같다.
법률상담에 대하여는 왜 그럴까? 추측건대 아마도 의사와 변호사 두 영역 사이의 업무상 차이를 잘 모르는 것도 그 한 이유일 것이다.
법률 전문가들의 전문성은 법률상담에서 구두로도 충분히 발휘된다는 특성을 우선 염두에 두어야한다. 다시 말하면 법률상담만으로도 방문자는 변호사의 전문성을 충분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상담에서 갖는 변호사의 부담이 가볍지 않다는 점이다. 상담에서부터 변호사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익을 구체적으로 다룬다.
재산 문제, 가족 문제, 형사 문제 등 모두가 법률조언을 잘못하면 방문자가 현실적으로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상담의 단계가 법률전문가로서의 업무수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전문가들에 비하여 매우 높아진다.
상담 후 서류작업이나 법원 등 출입이라는 후속행위는 앞의 상담에서 확보한 사실과 선택한 법리에 바탕을 두기 때문에, 법률가의 주된 영역은 상담인 것이다.
법률가의 조력은 경우에 따라서는 오랜 시간의 법률상담으로 마무리될 수 있다.
의료 등 기능적 전문성의 경우에 상담으로 문제가 해결될 일이 거의 없고 심지어 문진을 통해서도 문제의 해결이 마무리될 가능성은 많지 않다.
이와 달리 법률 전문가들의 지적 전문성은 상담을 통한 조언에서 이미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조언의 오류가 방문자에게 구체적인 위험을 야기하므로 상담에 임하는 법률가는 매우 심각한 처지인 것이다.
또한 비법률가로부터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일이 힘들다는 것은 교수인 나도 자주 경험하는 바이다. 매우 짜증나는 일임에도 방문자의 심정을 감안하여 인내하고 그러면서도 정확한 법률조언을 위하여 필요한 사실관계를 빠짐없이 정확하게 파악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소모되는 정신력도 만만치 않다.
상담에서 나오는 방문자의 이야기 속에 문제의 맥을 제대로 찾아야 하고 그 관련 법률적 구제 내지 보호의 수단을 잘 찾아 조합시켜 조언을 해야 하는 작업 자체가, 송사로 이어지는 전 과정에서 차지하는 막대한 비중에 비하여, 매우 미미하게 여겨짐은 이것의 대부분이 법률가의 뇌 속에서 이루어지고 그 일부인 결론만이 구두로 표출되기 때문일 것이다.
방문객에 대한 현장 조언 자체도 장시간인 경우가 허다하지만, 나아가 조언 이후에도 법률가의 생각은 대개 이미 끝난 자문 내용에 계속 머물게 된다.
조언에 대한 수정 내지 보완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법률적 해결 내지 구제의 수단은 단순하지 않고 그 선택과 조합에 따른 효율성도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다.
쉽게 조언하는 것 같지만 상담을 마친 변호사의 뇌 온도를 촬영한다면 매우 높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많은 경우에 구두의 조언으로 전문성의 모든 것이 제공할 수도 있기에, 법률전문가에게 무상의 법률조언을 기대하거나 요구함은 가혹한 것이다.
물론 이처럼 무형으로 마무리된 법률적 조언에 대하여도 보통사람들은 감사하게 여기며 간혹 감사의 표시를 유형적하는 경우도 있다.
나와 같이 변호사 자격이 없는 사람은 유형적 감사표시를 수령하게 되면 변호사법에 저촉되므로 비교적 자유롭고 가벼운 마음으로 법률자문에 임하게 된다. 그런데 법률 조언과 사건 수임 등에 대한 대가를 받아서 인건비와 사무실 유지비 등을 충당해야 하는 변호사들의 처지는 다른 것 같다.
그야말로 시간을 무상 조언으로 낭비할 처지가 아닌 전문가들이 변호사인 것이다.
이제 의사 출신 변호사가 많아지다 보니 법률문제에 부딪친 의사들은 우선 같은 의사 출신 변호사를 찾게 된다.
그들이 의사 출신 변호사에게 거는 기대는 우선 사건 자체를 잘 이해하는 전문성이라는 지적 측면, 그리고 사건에서 의사가 처한 상황을 잘 이해할 것이라는 정서적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기대는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다. 하지만 과거 동업자 간 무상 조언이라는 기대까지 한다면 이는 곤란하다.
구두 조언에서부터 이미 법률가의 전문성이 본격적으로 발휘되고 제공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과거 동업자였다는 등의 이유만으로 무상 조언을 받아 가는 것은 법률가의 지적 능력과 시간을 절취하는 행위라고 하면 지나친 표현인가? 적어도 이제 알면서 그리한다면 절취이다.
변호사의 사회적 책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사회적 취약계층이 아닌 방문자들이 과거 동종 업계에 있었다는 등의 이유로 무상 조언까지 기대하는 것은, 법률조언에 따른 정신적 재산적 비용을 모르거나 대가를 지급하기 민망하여 그러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상대의 시간과 능력을 훔치는 후안무치 사례도 있을 것 같다.
두 전문가 영역을 넘나드는 이들은 우리 사회가 앞으로 키워나가야 할 중요한 인적 자산이다. 힘 있는 세력 간 소통 부재로 사회적 재원이 낭비되는 모습이 점점 많아진다. 의료 분야의 사회적 갈등 해소에 역할이 기대되는 의사 출신 변호사들이 과거 동업자들로부터 존중을 받을 때 그들의 기여도는 높아질 것이다.
그들 지적 전문성에 대한 인정과 예우가 필요한 사회적 이유이다.
법률문제로 아픈 머리 식히러 야구장을 찾은 의사가 옆 자리의 변호사에게 청하여 법률조언을 들은 지 며칠 뒤 상담료 청구서를 받는 모습은, 변호사의 사무실을 찾아와 장시간 법률조언을 다 듣고 나서 고맙다는 인사만 하고 일어서는 의사의 모습보다는 합리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