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에게 의사는 인기 얻기 위한 거름일까

손의식
발행날짜: 2014-10-30 05:38:47
연예인과 국회의원은 국민의 인기를 먹고 사는 대표적 직업이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인기와 표를 얻어야 직업적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 언행이 사회에 미치는 파장, 그리고 연기(?)에 능하다는 점 등을 꼽을 수 있겠다. 이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는 사회적으로 적잖은 파장과 논란을 일으키는 것이 현실이다.

연예인의 언행에 따른 사회적 파장은 그 연예인에 대한 실망과 분노에 비롯되는 것이고, 논란과 핫이슈가 되기는 하지만 큰 피해를 야기하는 정도까지는 아닌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국회의원의 언행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다는 점에서는 연예인의 그것과 비슷하지만 피해적인 측면에서는 조금 다르다. 이런 점은 국정감사를 보면 잘 드러난다.

국정감사는 말 그대로 국민을 대신해 국회의원들이 국정을 감사하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지역구 의원에서 전국구 스타로 등극할 수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과 같은 성격도 없지 않다.

이러다보니 국민들로부터 인기와 관심을 얻기 위한 자극성 발언들도 종종 나온다. 문제는 이런 자극성 발언들이 해당 직역에게는 커다란 상처와 피해로 직결된다는 점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현숙 의원(새누리당)은 29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 보도자료를 통해 의사와 종교인을 포함한 전문직 종사자들의 폭력과 성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김현숙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의사와 종교인의 경우 타 직종에 비해 강간 및 강제추행 등 성범죄로 검거된 수가 많았다. 최근 5년간 성범죄로 검거된 의사 수는 340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의원의 보도자료를 보면 상당히 낮익은 문제제기라는 느낌이 든다.

지난해 국감에서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강기윤 의원(새누리당)은 '의사, 5년간 강간죄로 354명 검거'라는 보도자료를 냈다가 의료계로부터 공분을 산 바 있다. 강 의원은 지난 9월에도 의사, 변호사, 교수 등 전문직 종사자 중 5년간 성범죄로 인해 2132명이 검거됐다며 이중 의사가 739명이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의료법에 따르면 의사와 한의사, 치과의사는 엄연히 구분된 직역이지만 강 의원과 김 의원 모두 이를 구분치 않고 '의사'로 통칭해 표현하고 있다.

의원실의 발표는 한의사와 치과의사는 제외한 의사 숫자로 오인할 가능성이 높다. 국방위나 국토위도 아니고 보건복지위원이 이를 몰랐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의사 몇 명, 한의사 몇 명, 치과의사 몇 명이 성범죄로 검거됐다"는 보도보다는 "의사 340명 성범죄로 검거"라는 표현이 훨씬 자극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의 구분을 몰랐다면 국회 보건복지위원으로서의 자격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해봐야 할 것이다.

특히 의료계는 해당 자료가 무죄추징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해당 의원실에서 공개한 의사수는 수사단계 상 피의자들에 불과하다. 검거인원이라는 뜻이다.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최종 법원 판결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인원들만 발표해야 한다.

그러나 해당 의원실의 발표는 마치 검거된 의사 모두가 유죄를 받은 것처럼 오인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죄 인원이 아닌 검거 인원을 통계로 잡은 것 역시 자극적인 숫자의 환각에 빠뜨리려는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덕분에 올해도 의사들은 여지없이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을 받게 됐다. 가뜩이나 아동청소년성보호법으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의료계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이쯤되면 일부 국회의원에게 의사란 인기와 관심이라는 과일을 키우기 위한 거름에 불과한 게 아닌가 싶다.

문제는 의협에게도 있다. 강기윤 의원의 성범죄 의사 발표 이후 의료계의 분노가 극에 달하자 의협은 관련기관의 사과와 정정보도를 요청했다.

그러나 실제로 사과로 이어졌는지, 정정보도가 나왔는지는 미지수다. 의협의 미온적 태도로 당시 이 문제는 어영부영 넘어갔고 그 결과, 국감 단골메뉴로 자리잡았다.

집행부와 비대위의 갈등에만 매몰돼 정작 회원들의 명예, 환자와의 신뢰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매년 열리는 국감. 이대로라면 내년 이맘때쯤 같은 기사를 또 보게 될 것 같다. 그리고 그 책임은 인기를 얻기 위해 의료를 도외시 하는 국회의원과, 그 국회의원이 언행을 내버려두는 의협에게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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