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약 삭감 이후 리베이트 주는 제약사 약 처방했다"

특별취재팀
발행날짜: 2016-01-04 05:15:59
  • 신년기획-용감한 의사들① 단어의 덫에 빠진 '불법 리베이트'


|메디칼타임즈 특별취재팀| 듣기만 해도 의사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리베이트'. 그것도 부족해 늘 '불법'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메디칼타임즈는 2016년, 신년을 맞아 의료 최일선을 지키는 입담 좋은 의사들을 초청해 의료계 뒷이야기를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름하여 '용감한 의사들'.

이날 자리한 의사는 산부인과 40대 중반 개원의(헐크), 정신건강의학과 40대 중반 개원의(스파이더맨), 종합병원 가정의학과 40대 봉직의(아이언맨), 종합병원 가정의학과 30대 봉직의(울트라맨), 대학병원 전임의(옵티머스 프라임) 등 5명. 허심탄회한 대화를 위해 가면과 익명으로 진행했다.

헐크(산부인과 개원의, 본인을 잡과 개원의로 소개함): 나는 개업하고 좋은 의사가 되겠다며 약전에 나오는 좋다는 약은 다 써봤어. 그랬더니 모조리 삭감되더라고. 깜짝 놀랐지. 심평원에서 고가약을 처방했다는 이유로 삭감하는데 한 달에 1000만원 벌면 150만원은 날아갔어. 그때 쓰라린 경험은 약 처방에 대한 기준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고 봐야지.

약 써줬다고 선물도 주고 돈도 좀 주고 하는데 처방 안 할 이유가 뭐야. 아니, 그렇잖아. 좋은 약 처방하면 삭감되고 제약사가 권하는 약을 처방하면 인사도 받고 선물도 받는데 누가 안 쓰겠어?

(지금은 아니지만)한 때는 약값의 10~17%까지 돈(리베이트)을 받았지. 그렇다고 (영업사원이)주는 데로 다 받은 것은 아니야. 가령, 10개 제약사 약을 쓰면 7~8개는 안 받았어. 뭔가 느낌이 안 좋은 영맨이 주는 돈은 찝찝해서 못 받겠더라고. 그럴 땐 밥이나 같이 먹자거나 회식비를 지원하는 식으로 돌렸지. 물론 지금은 그것도 리베이트로 되서 안 되지만…

근데, 나 혼자만 너무 얘기하는 거 아닌가. 불안하게…(웃음). 봉직의는 이런 일이 없어?

아이언맨(종합병원 40대 가정의학과 봉직의): 뭐 나도 가정의학과이고, 약을 많이 쓰다 보니 리베이트의 유혹이 없는 것은 아니지. 근데 소소한 것에 내 의사면허증을 걸고 싶지 않더라고. 그래서 난 그냥 안 받아.

울트라맨(종합병원 30대 가정의학과 봉직의): 저는 여기 계신 개원의 선생님들과 달리 봉직의 생활 2년에 불과해서 리베이트에 대해 딱히 말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당연히 리베이트는 받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도대체 어디까지가 리베이트인지 헷갈립니다.

스파이더맨(정신건강의학과의원 개원의): 나도 리베이트의 정의가 뭔지 모르겠어. 그리고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약을 골라야 할지 헷갈려.

헐크: 그러니까, 나는 영업사원이 밥이라도 사줄거냐, 말 것인가를 기준으로 해.(웃음)

스파이더맨: 나는 정신과 환자 특성상 약에 대한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생판 모르는 사람(영업사원)이 와서 10원, 20원 더 싸다고 약을 바꾸긴 어렵지.

옵티머스 프라임(대학병원 내과계 전임의): 저는 전공의 시절, 리베이트 쌍벌제 도입 이후여서 리베이트 유혹을 받기도 전에 딱 잘라 거절해왔어요. 동료들에게도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으니 받지 말라고 했죠. 그런데 동료들이 내 앞에서는 맞는 얘기라고 하면서 뒤에서는 받더라고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한테는 리베이트에 대한 이야기는 안 하더군요.

스파이더맨: 그런데 약 처방한 것의 몇 %를 돌려주는 것을 두고 리베이트라고 하는 게 이해가 돼? 재미있는 것은 내가 그 리베이트를 안 받는다고 정부가 약값을 낮추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야. 다들 알겠지만, 내가 안 받으면 해당 제약사 영업부에서 이득을 취하는 거야. 실제로 배달사고가 난 사례가 있잖아. 리베이트를 줬다는 사람만 있으면 받았는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게 문제지.

아이언맨: 리베이트는 결국 국내 제약사를 보호하기 위한 법 아니겠어? 문제의 해결법은 간단해. 환자가 병원 및 약국에서 '이 약 주세요'라고 말하면 되지.

헐크: 아, 맞아. 미국이나 유럽을 보면 어떤 병원은 비싼 약을 쓴다고 홍보를 하기도 하지. 한국은 약값이 다 똑같으니까 A제약사 쓰다가 B제약사 약으로 바꾸면 돈(리베이트)을 주고, 의사들은 그에 따라 제약사를 바꾸게 되는 거라고. 결국 차단된 정보를 갖고 의사들을 욕하고 있는 셈인거지.

스파이더맨: 나는 일단 용어부터 '불법 리베이트'라는 게 기분 나빠. 리베이트 때문에 건보료가 인상되는 것도 아닌데 왜 문제 삼는지 이해가 안 되잖아.

아이언맨: 맞아, 리베이트라는 용어 자체가 의사들을 화나게 하는 것 같아. 정부는 리베이트를 불법이라고 정의했는데 도대체 리베이트가 뭐야? 솔직히 제약사 입장에서는 마케팅 비용 아닌가? 마케팅 비용을 0으로 만들라는 얘긴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정부의 행보가 말이 안 된다고 봐.

스파이더맨: 결국 리베이트라는 단어의 덫이라고 봐. 제약사가 의사에게 약 처방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두고 '리베이트'라고 하는 순간 악이 돼버리는 거지. 그 단어를 쓰는 상황에선 국민 설득이 될 수가 없더라고. 게다가 '리베이트'라는 단어 앞에 '불법'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이는데 그게 설득이 되겠어?

아이언맨: 우리가 리베이트를 제한하는 법이 왜 나왔는지부터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이 법은 국내 유명 제약사가 건의한 건데 왜 그랬겠어? 마켓쉐어를 유지하겠다는 거지.

다들 알다시피 지금은 세계가 주목하는 제약사로 성장한 A제약사도 의약분업 이전에는 대단치 않았잖아. 그런데 의약분업이 되면서 상위권으로 진입했지. 그 배경에는 리베이트가 있었고. 후발 제약사 입장에서 1위가 되려면 리베이트가 관건이라는 것을 A제약사는 알고 있었던 것 같아. 그래서 리베이트를 할 수 없도록 법을 만드는 데 사활을 걸지 않았을까.

헐크: 그래, 리베이트를 차단하는 것은 그것 말고도 문제가 많아. 새로운 제약사가 신규 진입할 수도 없지. 의사입장에선 약 성분이 동일하면 새로운 제약사 약을 처방할 이유가 없잖아?

솔직히 신규 제약사에서 제형을 싸게 만들었다, 맛도 좋다, 부작용도 줄었다고 열심히 설명하지만 솔직히 관심 없잖아? 자연스럽게 신규 장벽이 커지는 거지. 신규 제약사가 진입할 수 없도록 장벽을 만들어놓고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해놓고 욕은 의사가 먹는 꼴이잖아.

헐크: 이참에 국내 제약사가 자생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봐. 모 국내제약사의 전체 매출 중 자체 생산 약 비중은 3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다국적 제약사와 코마케팅을 통한 매출이더라고. 이런 제약사를 보호해주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어. 극단적으로 말하면, 망하는 게 맞다고 봐.

옵티머스 프라임: 저는 리베이트를 의료계 발전을 위해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예를 들면 교수나 연구자, 전공의를 위해 연구비나 해외, 국내 학술활동비, 개원가에는 의료정보 안내책자 제작 등 다양한 방안이 있지 않을까요? 의사는 물론 국민들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니 의사도 제약사도 국민도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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