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에 없는 면허범위, 정부가 나서서 교통정리해야"

박양명
발행날짜: 2016-11-18 05:00:59
  • 기획"의약 분업부터 면허 붕괴 예견…먹고살기 힘들어진 결과"

"의료법에는 면허체계가 (전혀) 없다."

의사-한의사-치과의사 사이 영역 침범 문제를 법원 판례에만 의존하다 보니 결국 일이 터졌다. 대법원은 의사의 영역이라 여겨져 왔던 프락셀 레이저, 보톡스 시술을 치과의사가 해도 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것.

이에 더해 국회 등의 압박으로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허용 문제도 논의를 재개할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면허의 체계가 흔들리자, 정부도 책임이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와 함께 불명확한 면허 범위를 정부가 나서서 정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높아지고 있다.

의료법 2조에 명시돼 있는 '의료와 보건지도'의 범위가 애매하기 때문에 이를 구체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법에 따르면 치과의사와 한의사는 의료와 보건지도 문구 앞에 '치과', '한방'이라는 단어만 붙어 있다.

경기도 한 개원의는 의약분업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면허체계 붕괴는 예정돼 왔던 일이라고 했다.

그는 "의약분업 후 정부가 진료비를 심사하는 등 의료행위를 본격 통제하기 시작하면서 의사들 사이에서도 진료과 붕괴가 시작됐다"며 "의사들 사이에서도 진료과 경계가 모호해진 상황에서 다른 직역의 침범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먹고살기 힘들어졌다는 반증"이라고 토로했다.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허대석 교수는 "자동차 운전면허도 책으로 공부했다는 이유로 주장해서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정해진 시험에 합격해야 취득할 수 있고, 난이도에 따라 자동차 면허 종류도 달라진다. 생명과 직결돼 있는 면허는 검증 과정이 더욱 철저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복지부가 면허에 대한 원칙이 없다"며 "면허를 주고 의료행위를 할 수 있게 했으면 사후 관리도 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요구는 국회에서도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은 지난 10월 국정감사를 통해 "복지부의 유권해석과 법원 판결이 상충하고 있다"며 "차라리 복지부가 의료인별 업무범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해 혼란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당 인재근 의원 역시 "의협, 한의협 등 의료 단체에 면허 문제 해결을 맡겨놨다가는 결론이 날것 같지 않다"며 "정부가 조속히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법조인과 시민단체도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준현 대표는 "의료행위가 무엇이라는 정의 자체가 (법적으로) 없는 게 현실"이라며 "의과, 치과, 한방의 적합한 행위가 무엇인지 법률적으로 모호한 부분들을 정부가 명확하게 정리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의료전문 변호사도 "의사 직역의 행위가 구강보건, 한방보건 이렇게만 돼 있으니까 판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며 "각 직역의 의료행위를 정리하는 것이 불가능한 업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부가 교통정리를 안 해주니 오히려 직역 간 다툼을 부추기는 꼴이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법에서는 일일이 나열을 할 수 없다"며 "해석의 여지가 있는 행위들은 열외로 하고 명확하게 구분 지을 수 있는 행위들은 정부가 지침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수많은 의료행위를 일일이 정리하기에는 너무 방대하고 신의료기술 진입에 제약이 될 수 있으니 의학, 한의학, 치의학 교육 과정에 복지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의료행위를 구분 지으면 또 다른 규제가 되며 신의료기술이 들어올 이권이 또 생길 수 있다"며 "포괄적 개념으로 하되 교육과정과 신의료기술 진입 과정에 복지부가 개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법원 판례들도 교육과정에 기반을 두고 의료행위 여부를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각 직역의 대학 교육과정의 과목 개설에 대해 교육부의 동의를 얻어 복지부가 적극 참여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료전문 변호사는 "각 직역의 면허 범위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범의료계 협의체를 구성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협의체 장은 차관급의 공무원이 맡는 식"이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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