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려고 교수됐나…전공의 당직실서 쪽잠자는 신세"

발행날짜: 2016-11-29 05:00:59
  • 전공의특별법 시행 앞둔 지방 대학병원 소화기내과 교수의 한숨

|초점| 전공의특별법 시행 한달 전…의료사고 사각지대 놓인 교수들

전공의법 시행으로 근무시간이 주80시간으로 제한하면서 전공의들의 빈자리를 펠로우, 주니어 교수들이 채우고 있다. 환자안전을 위해 전공의 수련환경을 개선했지만 이번에는 교수가 의료사고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메디칼타임즈>는 법 시행에 앞서 환자안전을 위협하는 의료현장을 긴급 진단해봤다. <편집자주>

<상> 의료사고 위험 내몰린 교수들
<하> 지방대학병원 내과 교수의 한숨


나는 지방대학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다. 내 역할에 많은 변화가 생기면서 전공의특별법 시행일이 다가오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얼마 전 병동 내에 당직실이 생겼다. 그나마 남자인 나는 교수 당직실을 이용할 수 있으니 감사하다고 해야하나. 여자 동료 교수는 비어있는 전공의 당직실에서 잠시 잠을 청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게 무슨 코메디 같은 상황인가.

당직은 2주에 한번. 격주로 돌아오는 당직이 두렵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당직 다음날 나의 스케줄을 무사히 소화할 수있을 지 겁이 난다. 처음에 한두번은 버틸만 했다. 그런데 점점 피로감이 쌓여간다.

몇일 전에는 진심으로 '이거 큰일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당직 다음날 오전 외래까지는 잘 버텼는데 내시경 시술을 가는 길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한동안 논문 쓰느라 잠을 줄였는데 당직까지 섰더니 부담이 됐다보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함.
내 나이 마흔 여덟. 20대 후반 전공의 시절 당직설 때에는 버틸 만 했는데 나도 늙긴 늙었나보다. 내가 이 정도인데 50대 중반의 선배는 어떨까. 그 선배도 당직 스케줄이 잡혀있던데 그 양반이 당직 다음날 정상적으로 진료를 할 수 있을까. 내 코가 석자지만 선배 교수들 또 그들에게 진료를 받아야할 환자들이 걱정이다.

사실, 처음에 병원에서 당직 스케줄을 얘기가 나왔을 땐 온콜(on-call)정도인 줄 알았다. 병동 내 당직이라는 사실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 내가 야간에 병동에서 커버해야하는 환자는 100~150명. 내과 병동환자는 상태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수시로 콜을 받고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러 가야한다.

다른 대학병원에 동료 교수가 조사한 결과 교수 1인당 야간에 병동 당직 중 콜 받는 횟수가 100여건이라더니…사실이었나보다.

당직실에서 언제 울릴지 모르는 핸드폰을 손에 쥐고 쪽잠을 청하고 있으려니 전공의 시절이 떠오르면서 내 신세가 처량해진다. 내가 이러려고 교수가 됐나 싶다.

어제 서울대병원 내과가 호스피탈리스트 5명을 뽑고 내년 3월부터 시행에 들어간다는 얘기를 듣고 한숨부터 나왔다. 우리 병원은 채용공고를 낸 게 언제인데 왜 깜깜 무소식일까. 호스피탈리스트에 대해 문의하는 전공의 조차없다. 이런 분위기라면 내년에도 당직을 서야할 것 같은데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하다.

요즘 동료 교수들끼리 모이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인가" "도대체 우리는 몇살까지 당직을 서야하나"에 대해 얘기한다. 답도 없는 얘기다. 몸이 힘들어지니 당직 일수가 적은 선배 교수들까지 얄밉다. 이러다가 선배 교수들이랑 '왜 당직 안서냐'며 얼굴 붉히는 일까지 생기는 게 아닌가 씁쓸하다.

당직을 서면서도 씁쓸함의 연속이다. 소화기내과 세부전문의로 산지 10여년. 솔직히 심전도 검사, 심폐소생술, 기관지삽관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안난다. 이것이 환자안전을 위하는 길인건가.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함.
적어도 병동 환자 케어는 인턴시절부터 병동에서 통합적으로 환자케어를 해온 전공의가 나보다 나을 지 모른다. 이래서 호스피탈리스트가 필요하다고 하는 건가. 이미 호스피탈리스트 채용을 마친 대형병원이 부러울 따름이다.

전공의특별법을 통과시킨 국회도 원망스럽고 의료인 전체가 아닌 전공의에 한해 근무시간 주80시간을 제한한 전공의들도 원망스럽다.

요즘 병원 사정이 안좋은 건 알지만 이건 해도 너무하다. 하지만 입다물고 있을 생각이다. 얼마 전 당직 다음날 근무에 대해 불합리함을 제기했던 동료 교수의 당직 스케줄이 금요일, 토요일로 변경되는 것을 내눈으로 지켜보지 않았나. 알량한 주말이지만 이것만은 포기할 수 없다.

호스피탈리트 제도 정착에 성공했다는 미국 의대교수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믿지도 않겠지. 그 나라는 당직 다음날 근무는 상상할 수 없을테니까.

도대체 정부는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라는 식은 곤란하다. 법을 통과시켰으면 책임을 져야하지 않나. 이러다가 내가 의료사고라도 내면 대신 책임져줄건가. 이번주 당직일이 돌아왔다. 아, 이젠 생각만해도 다리가 후들거린다. 내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 이 기사는 A대학병원 소화기내과 교수의 인터뷰를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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