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외과 이송반

박성우
발행날짜: 2016-11-30 05:00:11
  • 인턴의사의 좌충우돌 생존기…박성우의 '인턴노트'[58]

정형외과 이송반

처음에는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후에는 존경심을 갖게 된 병원 직원들이 있다. '환자 이송 팀'이라 하여 환자들을 병실에서 검사실로 혹은 수술실로 이송하는 분들이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은 휠체어나 이송 침대를 이용하여 안내한다. 대부분 이송팀 직원들은 나이가 젊은데 그중 40~50대는 되어 보이는 분들도 꽤 있다. 단순히 환자의 침대를 끌고 병원 곳곳으로 안내하는 일임에도 즐겁고 성실하게 임하는 모습을 자주 마주쳤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이송 직원 아저씨가 있다. 하늘색 상의에 짙은 남색 바지를 입고 신발까지 작업복에 어울리는 갈색 샌들을 신었다. 머리 또한 단정하다. 아저씨는 묵직한 목소리로 환자나 보호자에게 인사를 했다.

인턴들은 "환자분, 피 뽑을게요." "환자분, CT실로 갈게요" 하고는 환자들과 눈도 안 마주칠 때가 있는데 아저씨는 이송 중에도 친절한 말 한마디를 빼놓지 않고 건넸다.

"병원에 있으니까 답답하지 않으세요." 혹은 "가시는 동안 불편하겠지만 조금만 참으세요. 금방 모셔다 드릴게요." 환자의 어깨를 부드럽게 짚으며 전했다.

인턴들도 종종 환자 곁을 지키면서 각종 검사를 가야 할 때가 있는데 때로는 이송 직원과 함께 갈 때도 있다. 대부분의 인턴들은 환자의 침대를 끌고 이송하는 일이 귀찮기도 하고 단순한 일이라 꼭 우리가 해야 할까 불만이 많다. 그럼에도 이 일을 매일 하는 직원들을 보면 '일이 참 지겨울 텐데….'라는 생각을 한다.

젊은 이송 직원들은 대개 뻣뻣하다. 이송 도중 말없이 있거나 스마트폰을 보곤 한다. 하지만 아저씨 몇 분들은 이송 도중에도 환자나 보호자를 편안하게 해주려는 노력과 배려가 느껴졌다.

한번은 그 아저씨와 같이 밤 11시쯤 응급 CT실로 갈 일이 있었다. 신관 9층에서 서관 1층까지 엘리베이터 타고 이송하는 시간만 10분은 걸렸다.

CT 검사를 무사히 촬영하고 다시 병동으로 복귀하던 중 환자 차트를 놓고 왔다는 걸 알았다. 그때 한참 연배가 높은 아저씨가 "선생님 피곤하실 텐데 제가 나중에 한바퀴 돌면서 챙겨오겠습니다" 하시고는 병동까지 같이 환자를 이송하고 다시 검사실로 내려가셨다.

자정이 다가오는 시간임에도 챙기지 못한 것에 대해 불평없이 기꺼이 갔다 오시는 것을 보면서 이런 모습은 설사 다른 직종에 있더라도 존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런 순간 나는 기꺼이 할 수 있었을까.

정형외과 인턴은 철저하게 수술실 이송 직원 같았다. 8개의 수술실에서 2~3시간이면 끝나는 수술이 휴식 없이 이어진다. 5명이 팀을 이루었지만 부족한 인력 때문에 인턴이 꼭 스크럽을 들어가고 3명이서 8개의 수술실 환자 이송을 책임진다.

환자를 수술실로 이송하고 준비하면 다른 수술실이 종료되면서 환자를 회복실로 이송해야 한다. 지연 없이 수술 일정대로 진행할 수 있게 매끄럽게 '환자를 넣고 빼는 일'이 중요했다.

'이송반'으로 정형외과 업무 중 빠지지 않는 마무리는 환자 수술 후 X-ray를 촬영하는 일이다. 수술 후 수술이 잘 진행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환자를 회복실로 이송하면서 촬영기사에게 연락을 한다.

"회복실 10번 자리 환자, knee AP, lateral 사진 좀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곧 간이 냉장고처럼 생긴 X-ray 기계를 끌고 촬영 기사가 도착한다.

대부분의 정형외과 환자들은 수술 후 소위 '깁스'라 부르는 부목대를 하는 경우가 많다. 마취에서 깨면 서서히 통증이 돌아오기 때문에 부목대가 틀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자리를 잡고 촬영한다. 무거운 납복을 걸치고 환자의 다리를 요리조리 자세 잡는다.

X-ray는 셀카처럼 예쁘게 한 장 찍으면 끝나는 검사가 아니다. 정확한 평가를 위해 정면, 옆면에서 기본적인 촬영을 하고 필요에 따라 비스듬하거나 천장에서 내려다보는 뷰, 바닥에서 올려다보는 뷰 등의 사진을 촬영한다.

환자의 수술 다리를 조심스럽게 이러저리 돌릴 때는 환자를 어르고 달래야 한다. "환자분 조금만 참으세요. 다 끝나가요. 사진 한 장만 찍을게요."

정형외과 이송반이 끝나는 달 막바지에 X-ray 기사분이 말을 걸었다 (보통 회복실에 있다 보면 사적인 대화는 거의 나누지 않는다). 이번 달이 마지막이냐고 물으면서 "이제 선생님들하고 죽이 잘 맞아서 일 좀 할 만하다 싶었는데 떠나시네요"라며 아쉬움을 비쳤다. 그 마음이 이해갔다.

달이 새롭게 바뀌면 새로 오는 인턴들은 X-ray 촬영 자세부터 다시 물어가며 배워야 한다. 말이나 글로는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어 실제로 하면서 배워야 하는 것들이 많다. 새롭게 달이 바뀔 때마다 손발이 맞는다 싶으면 새로운 인턴들을 맞이해야 하는 X-ray 기사들의 마음은 어떨까.

소위 '쿵짝이 잘 맞는다'라는 말을 쓴다.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눈빛이나 분위기만으로 다음 단계를 알아서 착착 하는 것이다. 말턴이 되고 보니 여기저기서 짝턴들끼리 삐그덕 손발이 잘 맞지 않는다는 소문을 접한다. 잡다한 일들은 끊임없이 일손을 필요로 하고 그렇다고 내가 하기는 싫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도 서로 쿵짝이 잘 맞아서, 굳이 내가 할 일이 아니더라도 같이 나눠서 수월하게 진행되면 일도 편하고 말턴인데도 서로 협력이 잘된다는 칭찬도 듣는다.

F1 레이싱 경주를 보면 경기 도중 차량이 레이싱 트랙에서 피트라는 곳으로 나와 타이어를 교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3초 정도의 찰나에 20명 남짓의 정비팀이 순식간에 타이어를 교체한다. 차량 앞뒤에서 지렛대를 이용해 경주 차량을 들어 올린다.

한 명은 앞에서 드라이버에게 신호를 보낸다. 각각 네 바퀴마다 3명씩 짝을 짓는다. 타이어의 나사를 푸는 순간 대기하던 팀원이 타이어를 빼고 그 옆에서 다른 팀원이 잽싸게 새 타이어로 교체한 후, 팀원이 풀었던 나사를 다시 조인다. 마지막 신호와 함께 레이싱 차량은 다시금 앞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쿵짝이 잘 맞을 때 볼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은 아닐까.

[59]편으로 이어집니다.

※본문에 나오는 '서젼(surgeon, 외과의)'을 비롯한 기타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저서 '인턴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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