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외과노트| 예후가 나쁜 두경부종양

박성우
발행날짜: 2018-06-20 06:00:11
  • 우리가 몰랐던 성형외과의 세계…박성우의 '성형외과노트'[21]

두경부종양

정형외과, 외과, 그리고 이비인후과. 종합병원에서 성형외과와 긴밀한 관계를 갖는 과를 꼽으라면 바로 이 세 과이다. 이 과들은 수술실에서 함께 고군분투하는 전우와 다름없다.

그중 이비인후과는 무시무시한 두경부암을 상대로 12시간이 넘는 수술을 함께한다. 두경부는 목, 구강, 얼굴을 아우른다. 설암, 후두암, 식도암, 갑상선 암 등이 대표적인 두경부암에 속한다.

갑상선암을 제외하고 다른 두경부암의 경우 대부분 예후가 나쁘다.

기능상 숨을 쉬고 음식을 섭취하는 통로이기 때문에 암이 발생하면 치명적이다. 더군다나 눈에 띄지 않고 증상도 뚜렷하지 않아서 늦게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목에 딱딱한 덩어리가 만져진다거나 갑자기 쉰 목소리가 지속되고 피를 토하는 경우 의심할 수 있다고 하나 암을 강력히 시사하는 증상들로 한정짓기 힘들다. 진단 당시 림프절 전이를 동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비인후과에서 두경부암을 떼어내면 결손 부위를 성형외과가 재건한다. 혀에서 암을 제거하면 팔이나 허벅지의 플랩을 이용하여 혀를 만들어준다. 후두에서 암을 떼어내면 플랩을 원통으로 접어서 재건하기도 하고 창자의 일부인 공장을 이용하여 남은 식도 사이를 이어주기도 한다.

물론 그 기능을 정상처럼 복원하는 것은 어렵다. 혀의 움직임을 보면 자유자재로 움직이는데 아직까지 플랩으로 만든 혀로 그만한 기능을 구현하기가 힘들다.

이런 환자들은 발음이 어눌할 수밖에 없고 음식을 삼키는 데에도 상당한 훈련과 노력이 필요하다. 수술 자체도 힘들고 오래 걸린다. 구강과 목 안에서 3차원적 구조를 재건해야 하기 때문이다.

혀끝에 발생한 설암처럼 혀를 내밀면 노출되는 부위라 그나마 수술이 쉽다. 하지만 혀의 뿌리나 편도처럼 입안 깊숙한 곳을 재건하는 경우 꿰매는 일부터 고역이다.

그런 경우 입을 통해 수술하는 것으로는 불가능할 때가 많아 턱 가운데를 분리하여 양쪽으로 벌려놓고 수술하게 된다. 모든 수술 중에 가장 괴기스러운 장면으로 꼽고 싶다.

때로는 암이 이미 턱뼈까지 침범해서 턱뼈도 함께 절제하는 경우가 있다. 잘라낸 부분은 종아리뼈나 골반에서 뼈도 함께 플랩으로 채취하여 턱뼈도 재건한다. 재건수술의 종합세트와도 같아서 숙련된 기술이 모두 동원된다.

두경부암 재건수술이 예정된 날은 하루를 마음 편히 포기했다. 대개 이비인후과에서 오전 동안 암을 제거하고 림프절곽청술을 시행한다. 그러면 오후에 성형외과 수술이 시작되고 아무리 빨라도 5시간 정도는 수술실에서 나가지 못한다. 수술이 커지는 경우에는 자정을 넘겨 수술실에서 나오는 경우도 많았다.

수술 이후의 과정도 순탄치가 않다. 환자들은 꼼짝없이 퉁퉁 부운 얼굴로 머리도 못 움직이고 누워있어야 한다. 상처가 아물어가고 플랩이 생착하는 과정을 감시하며 점차 15도, 30도, 60도 단계별로 상체를 세울 수 있다.

첫 3~4일은 고개를 좌우로 돌리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다. 혈관이 막혀 다시 응급 수술을 하면 지금까지의 과정을 다시 반복해야 한다.

사람은 의식하지 않은 상태로 침을 삼킬 수 있다. 하지만 이 수술을 한 환자들은 침을 삼키는 것도 쉽지가 않다. 침은 소화 효소를 포함하기 때문에 상처에 직접 닿으면 좋지 않다.

더군다나 상처 부위에 침이 고이는 경우는 더욱 주의해야 한다. 상처가 녹아서 벌어질 수 있기 때문에 수술 후 한 시간이 멀다하고 고인 침을 석션(suction)한다.

혹여 침이 벌어진 상처 사이로 흘러 목의 주요 혈관에 닿을 수도 있는데 경정맥 같이 큰 혈관을 녹이는 상황이 오면 환자의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

환자와 의료진 모두 고생해서 수술이란 큰 고비를 넘기고도 완치의 길은 요원하다. 이미 수술 당시 3기가 넘어선 경우가 많고 근치적 절제 이후에도 재발이 흔하다.

수십 년 동안 수술뿐 아니라 항암 치료, 방사선 치료 등이 시도되었고, 현재는 수술, 항암, 방사선 치료를 모두 아우르는 복합적인 치료가 적용된다. 하지만 아직도 다른 암 치료 결과들에 비해 성적이 좋지 않다.

담배는 폐암하고만 관련 있는 것이 아니라 두경부암과도 밀접하다. 흡연이 일상이었던 할아버지들에게 호발하는 것이 바로 두경부암이다.

대만이나 동남아 지역을 여행하다가 '빈랑'이라 하여 열매 같은 것을 씹다가 핏물을 뱉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소위 '씹는 담배'라고도 불리는 빈랑 역시 두경부암을 유발하는 대표적 물질이다. 빈랑을 소비하는 국가에서는 두경부암 비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높다.

선진국들은 담배에 폐암, 두경부암 사진을 노출시키는 것을 의무화 하고 있다. 사진만 봐도 무시무시한데, 금연 치료로 두경부암 재건수술 영상을 보여주는 것도 충격요법으로 좋지 않을까 (물론 비흡연자도 두경부암을 진단받을 수 있다 ).

예후가 좋지 않은 두경부암

한 번도 담배를 가까이 해본 적 없는 젊은 여성도 두경부암이나 폐암을 진단받는 경우가 있다. 목에 암이 재발하여 수술이 계획된 환자의 협진 일정이 잡혔다. 30대 젊은 여성이었다. 구강암을 진단받고 플랩 수술을 받은 병력이 있었지만 채 2년도 되지 않아서 암이 재발한 것이다.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도 마치고 외래에서 경과 관찰 중이었는데 왼쪽 턱 밑에서 딱딱한 덩어리가 만져져서 확인하니 암이 재발한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수술을 계획하고 협진이 이루어졌다. 첫 수술 당시 목의 림프절도 같이 제거하는 곽청술이 이루어졌다고 했다.

하지만 암은 림프절도 이미 제거된 그곳에서, 이미 방사선 치료도 받은 그곳인 피부 밑에 재발했다.

일단 이비인후과에서 넓은 면적의 피부와 그 밑의 조직도 깨끗하게 다시 제거했다. 제거하니 대략 지름 6센티미터 크기의 원형 결손이 생겼다.

문제는 이미 방사선 치료를 받은 곳이라 미세수술을 하기 위한 혈관이 마땅치 않았다.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 살이 푸석푸석해지고 딱딱하게 흉터처럼 굳는다. 그런 곳의 혈관을 쓰면 다시 막히거나 혈액순환이 좋지 않을 위험이 크다.

차선책으로 대흉근, 소위 가슴 근육을 이용한 유경 피판술을 계획했다. 남성 보디빌더들을 보면 가슴 근육이 눈에 확 들어오는데 이러한 가슴 근육을 플랩으로 들어 쇄골 근처 피부의 터널을 만들어 목 위로 끌어올리는 수술이다. 끌어올린 플랩은 환자 목을 보호하고 상처를 덮기 위해 사용했다.

문제는 여성 환자의 경우 가슴 근육 위에 바로 유방조직이 있어 떼어낸 부위의 변형이 더욱 눈에 띈다. 환자 역시 6센티미터 지름만큼 가슴 피부를 플랩으로 떼어내어 당겨서 봉합하니 가슴이 심하게 뒤틀렸다. 유두 위치도 원래 위치에서 안쪽으로 심하게 치우친 채 봉합할 수밖에 없었다.

환자로서는 당장 생명을 구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수술 이후 환자는 담담해보였지만 나는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암 치료가 끝나면 가슴의 흉터와 모양도 다시 예쁘게 재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젊은 나이에 빠르게 진행하는 암 상황을 보니 환자가 잘 이겨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동기에게 두경부암을 대하는 이비인후과의 생각을 물어보았다. 이비인후과도 코 전문, 귀 전문, 두경부 전문 등으로 세분화되어 있다. 흔히 개인병원에서는 부비동염이나 축농증, 중이염 등 수술이 필요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종합병원 안에서는 후두암이나 진주종 제거 수술을 하고 인공와우를 이식하는 등 서젼의 영역이 컸다. 그중에서도 두경부 과목의 주치의가 가장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예후가 좋지 못해 환자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사망하는 게 의사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라고 했다. 힘들게 수술을 마치고도 다시 재발하면 허탈할 수밖에 없다.

환자의 완치는 의료진의 보람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힘든 영역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비인후과 선생님들에게 응원을 전한다.

※본문에 나오는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동의를 통해 그의 저서 '성형외과 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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