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이여, 경영자로 거듭나길

이기효
발행날짜: 2003-10-20 06:57:40
  • 이기효 박사(인제대 병원전략경영연구소장)

병원이 어렵다고 한다. 매년 10% 내외의 병원이 도산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주로 중소병원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하지만, 400병상 내외의 제법 큰 규모의 병원도 포함되어 있으며, 상당수 대학병원이 적자라는 흉흉한 소식이 들려온다.

병원의 경영위기를 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제일 먼저 거론되는 것은 병원의 경영환경이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 병원을 사지로 몰고 있다는 목소리가 가장 가슴에 와 닿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그런 측면이 분명히 있는 데다가, 화풀이 대상으로 그만큼 만만한 데가 없으니까 정부의 잘못을 외치는 분위기를 이해 못할 바도 없다.

그러나 냉철하게 생각해야 한다. 똑같이 어려운 경영환경 아래에서도 성장하고 발전하는 병원이 있는 한편으로, 문을 닫는 병원도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러면 어떤 병원이 어려운 경영환경을 극복하면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있을 수 있는 모범답안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한가지만 꼽으라면 최고경영자(CEO) 요인을 이야기하고 싶다. 80대 20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지만, “병원의 성패를 결정하는데 있어 CEO 1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80% 이상이다”라고 강조하고 싶다. 이러한 법칙은 직원 1,000명이 넘는 대학병원에서도 통용된다고 믿는다.

999명 보다 1명이 더 중요하다고? 과장되어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그럴 수 있다. 런던비즈니스 스쿨의 경영전략 교수인 수만트라 고시알은 "경영자의 능력이 곧 기업경쟁력"이라고 말한다.

그 메커니즘은 이렇다. 기업이란 투입(input)과 산출(output)의 중간에 위치한 블랙박스다. 즉 인력 자금 기술 등의 "자원(resource)"을 토대로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게 기업이다. 문제는 똑같은 자원을 사용하더라도 그것을 "조직"하는 방법에 따라 결과는 판이한데, 그걸 좌우하는 것은 결국 CEO인 것이다.

탁월한 CEO가 기업의 가치를 올려놓은 사례는 무수히 많다. 시스코의 존 체임버스 회장은 마이크로소프트보다 짧은 기간 내에 시스코의 시장가치를 1천억 달러로 끌어올림으로써 주목받는 CEO로 부상했다. 코카콜라의 주이비에타 회장도 취임 전 펩시와 비슷한 수준이었던 코카콜라의 시장가치를 취임이후 30배 격차로 벌려 놓았다.

우리나라의 병원의 CEO? 대부분 의사가 CEO를 맡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직원 1,000명이 넘는 대학병원의 병원장도 공사립을 막론하고 대부분 의과대학에 재직중인 의사인 교수로 제한되어 선발된다. 국공립 병원 역시 일단 의사이어야 CEO가 될 수 있으며, 대다수 민간병원의 경우 전통적으로 의사가 오너이자 CEO이다.

의사라고 해서 CEO역할을 잘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병원 조직의 경우 다른 기업과 다른 의료적 전문성, 독특한 문화로 인하여 의사 출신의 CEO가 더 유리한 측면이 많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CEO로서의 자질과 정체성, 그리고 역할 인식에 있다.

의사인 오너가 명실상부한 CEO로서 기능하는 민간 병원의 경우, 과거 병원을 성장시켜 오면서 나름대로의 경영경험과 노하우를 체득해 왔으며, 명확한 소유의식으로 경영에 대한 책임성이 강하여 어느 정도 경영자로서의 정체성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적합한 마인드와 역할 인식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혹시 과거의 안정적인 환경 하에서의 성공에 젖어 구태의연한 경영방식을 견지하고, 개혁과 혁신을 게을리 하고 있지는 않은지? 격동하는 현재와 미래의 환경에 지금까지의 리더쉽 스타일이 그대로 통용될지? 의문인 것이다.

국공립이거나 주인이 뚜렷하지 않은 병원의 경우 CEO는 의사 중에서 선임된다. 이번에는 내과 출신이 했으니, 다음에는 외과 출신이 하고, 지난 임기에는 몇기 선배가 했으니, 올해는 당연히 그 다음 기가 해야 한다는 관행이 지극히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게다가 돌아가면서 해야하기 때문에 대체로 임기가 단기로 제약되어 있다. 이렇게 되면 ‘준비된’ CEO가 선임되기도 어렵고, 설사 선임되더라도 CEO로서의 비전을 펼쳐 보일 시간도 그래야 할 동기도 부여되기 어렵다. 심하게 말하면 병원과 1,000명이 넘는 직원들의 운명을 책임지는 대학병원장 자리가 경력관리를 위해 스쳐 지나가는 정도의 의미를 갖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병원장이 무슨 일을 하는지 한번 돌아보자. 조직 전체를 책임진 경영자이기 보다 임상의로서의 정체성이 더 강하지는 않은가? 일과 중 경영자로서 병원의 미래를 걱정하고 이와 관련된 주요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 검토하고 고민하는 시간은 얼마나 되는가? 하루 일과가 크고 작은 경조사, 각종 모임 참석, 각 학회 참석, 심지어는 불가피하게 진료를 해야 할 수밖에 없는 중소병원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정기적인 진료시간까지 잡혀있지 않은가?

격화되는 경쟁과 환경변화에 적응하며 병원을 생존,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의사가 아니라 경영자가 되어야 한다. 이제는 매일 되풀이되는 일상적인 의사결정과 결재를 통한 관리만으로 성공할 수는 없다. 병원의 CEO는 선명한 비전을 제시하고 강한 조직문화를 창조해야 하며, 미래를 내다보면서 전략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하고, 변혁의 리더가 되어야 하며, 핵심인재를 발굴, 양성하는 역할을 직접 수행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일은 병원장이 아닌 조직내 다른 어떤 사람도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을 병원경영 전문가라고 당당하고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는 의사가 CEO일 때, 그 병원은 희망이 있다. 이를 위해서는 가장 먼저 경영자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혹시 의사로서의 정체성이 소중하여 포기할 수 없다면 또는 경영자로서 자신이 없다면, 어정쩡하게 CEO 역할을 하느니 차라리 경영전문가에게 CEO의 역할을 맡기는 것이 자신이나 병원 조직 전체에 훨씬 현명한 방안이 될 것이다.

일단 경영자로서의 정체성을 갖춘 다음에는 효과적인 경영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보다 넓은 지식을 갖추어야 하며, 자신이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여, 필요한 경우, 관련 경영전문가를 참모로 기용하고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시대적 경영환경에 적합한 리더쉽을 배양하고 발휘해야 한다. 모든 걸 통제하려고 하지말고, 부하 간부들과 직원들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책임성을 일깨워 자율성을 키워줘야 하며, 자신은 보다 ‘큰 그림’을 보아야 한다. 때로는 조직의 운명을 책임진 사람으로서 배의 선장처럼 모진 결정을 내릴 줄도 알아야 한다. 자신의 결정이 틀릴 것이 두려워 자신의 권한 밖으로 밀어내는 것은 비겁할뿐더러 무책임한 짓이다. 일단 결정하면 자신의 결정이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추진력을 발휘해야 한다. 한편으로 경영자로서 진실한 모습을 보여야 사람들이 믿고 따른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겨야 한다.

마지막으로 희망적인 사고를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현재의 병원경영환경이 어렵고 불만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보다 큰 관점에서 본다면, 의료시장의 규모는 계속 확대되기 때문에 그 안에서의 기회는 훨씬 커지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CEO와 직원들이 발전하고자 하는 열망과 희망을 잃지 않고 매진한다면, 의료시장 전체가 어렵더라도 그 병원 만큼은 커다란 성공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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