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고집불통'의 때가 아니다

박경철
발행날짜: 2004-08-30 09:37:05
  • '시골의사' 박경철 (신세계 연합클리닉 원장)

<고정칼럼 집필자 소개>
인터넷에서 필명'시골의사'로 통하는 박경철 외과전문의는 국내 최고의 사이버애널리스트로 MBN 주식토크쇼를 진행하고 있으며 주식시장에 대한 남다른 철학과 날카로운 분석력을 인정받고 있다.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논어 '자한(子罕)'편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스승께서는 네 가지를 끊었다. 멋대로 억측하지 않았고, 뭘 절대로 긍정하지 않았으며, 뭘 외통수로 고집하지 않았고, 홀로 옳다고 내세우지 않았다.."

이것은 금강경에서 "아상도(我相) 없었고, 인상도(人相)도 없었으며, 중생상도(衆生相) 없었고, 수자상도(壽者相) 없었느니라" 하는 구절을 연상시키도 하는데, 금강경의 논리를 따르자면 아상( 자기중심주의) 없는 사람이라야 위의 네가지를 끊을 수 있을 것은 분명하다.

어쨌거나 이를 보면 공자란 인물이 고리타분 할 것이라는 일반의 예상과는 달리, 상당히 열린 마음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공자는 고집불통인 인간을 매우 싫어했다.

"논어"에는 공자가 은자들과 만나 나눈 대화를 실은 단편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은자로 알려진 미생무(微生畝)라는 인물과 공자가 이런 대화를 나눈다.

-미생무: 공구 그대는 어찌하여 이렇게 분주하게 돌아다니는가? 말재주나 피우고 다니는것은 아닌가?

-공자: 감히 말재주나 부리려는 것이 아니라, 고집불통을 미워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이 대화를 보면 공자의 시대에도 우리의 시대나 마찬가지로 낡은습관에 목숨을거는 고집불통의 바보들이 너무나 많았던가보다.

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된사람은 하늘아래 일을 하면서 죽어도 이래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법이 없고, 또 죽어도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법도 없다, 다만 마땅함을 따를 뿐이다"

이렇게 시대를 초월하는 고집불통들에 대해서 '철학자' 이상수 교수는 이렇게 정리한다.

세상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한계적 고집불통들이 존재한다. 이것이 고집불통에 대한 제 1 법칙이다. 세상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고집불통들이 사회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이것이 고집불통에 대한 제 2 법칙이다. 세상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고집불통이 존재한다. 고집불통에 대한 제 3법칙이다. 세상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고집불통임을 모르고 살고 있다. 고집불통에 대한 제 4 법칙이다.

이렇듯 고집불통은 사회발전을 저해하는 걸림돌로서, 때로는 사회의 지나친 앞서나감을 견제하는 건전한 조정자로서 기능해왔지만, 대개 고집불통들의 결정적 공통점이 하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사회적 고집불통들은 대개 그 사회의 이슈와 직접적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이점에서는 의료계도 마찬가지다.
사실 지금 의료계의 현안들은 그분들의 이해관계와 크게 상관이 없다, 예를 들어 앞으로 의료의 방향성이 어떻게 가더라도 "여차하면 때려친다"는 논리를 가진분들과, "때려치면 죽는다"는 입장에 있는 분들은 출발선이 서로 다른 것이다.

때문에 의료계에서도 명분과 실리사이에서 실리를 포기하고 명분을 앞세우는 고집불통들의 주장이 하늘을 뒤덮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실제 그러한 구호의 이면에는 실리를 위한 타협과 실용적 노선을 기대하는 바람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바로 보아야한다.

큰 눈으로 세상을 보자.

지금 우리 사회는 지난세월 오랫동안 누적되었던 모순적 장치들이 제거되고, 모든 것이 자신의 새로운 자리를 찾아 스스로를 재정립하는 과정에 있다.

이것은 어떤 정권이 어떤 성향을 가지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사실 굳이 규정하자면 지금 참여정부는 파괴의 정권이다, 지금 참여정부의 역사성은 자신들이 스스로 그렇게 인식하는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기존질서의 파괴" 그 자체에 있다, 이유야 어쨌건 역사는 그렇게 판정했고, 그 판정의 의미는 그것이 옳던 그러던 구 질서를 철저하게 파괴하는 것이다.

때문에, 지금 파괴 그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소모적이다. 역사발전의 수레바퀴는 어느 일각의 힘으로 거꾸로 돌릴 수 없다.

그것은 어느 한 집단이 어떻게 할 수있는 일이 아니며, 어쩌면 정권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현명한 자는 지금 기존의 질서가 무너진 바탕위에, 새로 세워질 자신의 새로운 자리를 디자인하고 새로운 입지를 확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우리가 무너져 내린 자리에 어떤 건물을 다시 지으려고 하는가?

아니면 도처에 오래된 건물들이 무너지고, 모두가 새로지을 건물의 설계도를 들고 뛰어다니는데, 우리만 머리 싸매고 "철거 결사반대" 를 외치면서 고립무원의 외딴섬으로 남을것인가..

때로는 고집불통의 의견도 역사의 경박성과 오류를 수정하고, 보류시키는 순기능을 할 때가 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만약 지금과 같은 혼돈의 시기에도 여전히 고집불통들이 맹위를 떨친다면. 우리는 조만간 우리가 무너진 터에 어느새 커다란 이무기 한마리가 또아리를 틀고 앉아 있는것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의 의사들이여..

역사를 직관하자. 그리고 유연한 생각과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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