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에 있어서의 온정적 간섭주의

장동익
발행날짜: 2004-09-06 06:15:02
  • 장동익 교수 (성균관대 철학과)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온정적 간섭주의에 의거해서 의료에 적용한 규약이라고 말할 수 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오랜 동안 의사들의 윤리 규약이었다. 이 선서를 히포크라테스가 직접 쓴 것인가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지만, 대략 BC 5세기 경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피타고라스학파가 쓴 것이라는 설도 있지만, 의사 집단이었던 히포크라테스 단체의 윤리 규약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합리적일 듯하다.

그렇지만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이 때부터 줄곧 서구 의사들의 윤리 규약이었던 것은 아니다. 이 규약이 서구에서 의사들의 규약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대략 18세기 경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윤리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규약이기는 하지만, 애초에 이 규약이 의사들의 윤리 의식을 고양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의사들의 윤리 규약으로 도입된 것은 아니었다.

18세기 미국에서 정규 대학 교육을 받은 의사들은 자신들의 협회를 결성하고서 정규 대학 교육을 받은 의사들과 교육받지 않은 단순한 치료사를 구분할 목적에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자신들의 협회 규약으로 도입하였다.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의사 윤리 규약으로 도입된 목적과 배경이 무엇이든, 한번 도입된 후에는 의사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이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50년에서 30년 전까지 만해도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전 세계적으로 의사의 윤리 의식을 규제하는 의심할 필요조차 없는 이념이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윤리학에 있어서 온정적 간섭주의를 근본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선서가 의료계의 지도 이념이 되었다는 것은 온정적 간섭주의가 의료의 모든 실천을 규제하고 통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온정적 간섭주의는 주지주의적 이성주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즉 옳은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그 행위자가 “선 또는 선한 것(the Good)”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그렇지만 “선 또는 선한 것(the Good)”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특별한 능력이 필요하다. 플라톤이 철학자만이 “이데아”를 알 수 있으며, 이 철학자가 정치가가 되어야 하고, “이데아”를 알지 못하는 시민은 정치가의 말에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이런 이념에 근거한 것이다.

그렇다면 의사는 의료와 관련하여 환자에게 “선한 것”을 아는 자이며, 환자는 자신에게 “선인 것”을 아는 의사의 말에 전적으로 복종해야 한다.

그러나 사회의 변화에 따라 환자와 의사의 관계가 복잡해지면서, 온정적 간섭주의가 현대 의료계의 윤리적 이념을 주도하는 것으로 적합한지에 대한 의문이 일기 시작하였다.

과거에 의료에서 온정적 간섭주의가 상정하고 있듯이, 부모의 역할로서 의사와 자식의 위치로서 환자라는 주장은 좀더 세밀하게 분석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즉, “부모와 어린이(유아 또는 영아),” “부모와 청소년,” “부모와 성인 자녀” 등으로 다양하고, 그 다양한 관계에 따라 서로의 의무나 역할, 그리고 책임 등이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의료에서 온정적 간섭주의에 따르더라도, 의사의 환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권리나 책임은 인정되지 않을 것이다.

환자와 의사를 단순한 관계로 파악하는 온정적 간섭주의가 의료의 지배 이념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을 넘어, 온정적 간섭주의가 환자와 의사의 관계를 규제하는 이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점차로 힘을 얻어가기 시작하였다.

물론 온정적 간섭주의 이념은 매우 그럴듯해 보이는, 그래서 우리가 현혹될 만한 경구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경구들은 조금만 깊이 살펴본다면, 그 근거가 매우 취약하여 받아들일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어떤 이론적 근거도 없이 그저 수사학적 미사여구로 이루어진 경구에 현혹되어,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계몽된 이성을 가진 합리적 인간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소수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부모와 성인 자녀의 관계로 설정될 수 있다.

소수의 특별한 경우도 환자의 가족이 보호자로서 대리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은 모든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간주하는 근대 계몽주의 이념에 근거하고 있다.

이러한 이념이 현대의 삶을 구성하는 이념이라는 점에서, 이 이념에 근거한 비판과 방향 설정을 거부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최근의 의료에서 환자와 의사의 관계를 설정하는 이념은 온정적 간섭주의를 넘어서 상호 호혜적인 관점, 즉 계약적 관점으로 이행하고 있다.

이런 계약론적 견해는 환자의 자율성을 존중하여, 의사가 환자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견해는 결과적으로 환자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게 되어,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이념과도 잘 합치하는 이념이다.

이제 의료에서 온정적 간섭주의는 폐기되어야 할 이념이다. 실제로 온정적 간섭주의가 전면에 부각되는 윤리 영역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따라서 전면적인 폐기는 아니더라도, 의료의 주도적인 이념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만약 온정적 간섭주의가 의료의 주도적인 이념이 된다면, 현대의 복잡한 현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여러 폐해를 야기할 것이다. 실제로 많은 경우 그 폐해는 우리의 현실이 되고 있다.

기존의 온정적 간섭주의에 의거해서 성립된 법과 제도가 여전히 실행되고 있다.

또한 시대적인 요청으로 계약적 관점에서 환자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 두 견해의 왜곡되거나 뒤틀린 결합은 우리의 상식적 믿음과는 매우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의료에서 온정적 간섭주의는 단지 계약적 관점을 보완하는 이념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의료 현장에서 환자는 자신의 견해가 무시되는 수모를 겪어야 할 것이며, 법과 제도의 측면에서 의사는 불필요한 의무와 책임을 짊어지게 될 것이다.

이로 인해 의료 소송은 날로 증가하여,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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