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매 당하는 의사들

박경철
발행날짜: 2005-01-17 11:59:04
  • '시골의사' 박경철 (신세계 연합클리닉 원장)

'왕따' 소위 '이지메'는 원래 일본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집단 속에서 힘이 약한 자를 대상으로 하여, 복수의 가해자가 지속적인 정신상의 또는 신체상의 공격을 가하는 행위. '괴롭히다'는 의미의 동사 '이지메루(いじめる)'에서 파생된 말이며. 이지메(いじめ)란 집단이 어떤 특정한 대상을 정해 놓고 괴롭히는 일을 말한다.

그래서 대개 이지메 대상은 약하고 힘 없는 자들이었고 괴롭히는데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그것은 어린학생들이 반 전체가 한 아이를 놓고 집단적으로 괴롭히는 일이다. 예를들어 숙제해 온 노트에 빨간 색으로 칠을 하거나, 도시락에 죽은 벌레를 집어 넣거나, 뒤에 앉은 아이가 앞에 앉은 이지메 대상아이를 바늘 등으로 찌르거나, 필통이나 가방을 던져버리거나, 가방 속의 책을 몰래 찢어버리는 등의 행위들이 이지메에 포함되는 행동들이다.

이렇게 학교에서 시작된 이지메는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약자를 대상으로 한 이지메에서 소위 '척'하는 아이와 사람, 그리고 '모방하고 싶은 대상'으로 까지 확대되었고, 근간에는 사회주류에 대한 비주류의 비토가 강해지자, 희생양을 찾기위해 주류구성원 내부에서도 특정집단을 이지메하는 양상으로까지 발전되었다.

이지메의 유형은 대개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관객과 방관자의 4자 관계, 이른 바 '이지메의 4중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유형, 둘째는 동료집단 내부에서 일어나는 유형으로 보스와 집행자 및 피해자의 이른 바 '이지메의 3중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유형, 셋째는 특정한 집단이 집단 외의 사람을 폭행하거나 괴롭히는 유형, 넷째는 일종의 사회적 편견이나 차별에 기인한 것으로 이질성을 배제하고자 하는 심리에서 발생하는 유형 등이다.

이렇게 이지메는 그 안에 흐르는 증오구조가 복잡하고 다원적이다.

요즘 의사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다.
의사사회는 환자들로부터 내병을 고쳐주는 "고마운 선생님"에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업자" 로, 세무당국으로부터는 아직도 "털면 나오는 집단"으로, 행정당국으로부터는 "공무원수준으로 대우의 격하가 필요한 집단"으로, 개혁세력으로부터는 "청산이 필요한 기득권 세력" 으로, 언론으로부터는 국면을 전환하기에 안성맞춤인 "화끈한 불쇼를 제공하는 집단"으로 낙인이 찍혀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의사사회는 유형 3과 4에 해당하는 집단 이지메를 당하고 있는 셈이다.

더우기 이런 의사를 향한 이지메의 결정판은 지난주 모 방송사에서 '환자는 마루타'라는 르뽀기사였다.

그날 카메라 앵글은 현행 법률구조에서 빠져 나올 수없는 한 의사의 불법상황을 포착하고, 거기에다 병원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한 젊은 의사의 절망을 클로즈 업하면서, 의사사회 전체를 부도덕하고 파렴치하며 거기다가 비굴하기까지 한 집단으로 비치게끔 하는데 성공했다.

더구나 그날 현장을 고발한 기자는 행위 당사자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 배려마져 져버린 채, 불과 일주일전 자사 에서 "입으로는 개혁과 언론정의를 떠들면서 뒤로는 룸싸롱에서 향응과 뇌물을 받았던" 선배들의 검은 얼룩을 뒤로하고, 한 의사의 "마루따 실험"을 희생양으로 황색 저널리즘의 깃발을 드높이 흔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대개의 이지메 피해자들이 그렇듯이 이 수난을 하소연하거나 도움을 요청 할 방법이 없다,

더구나 이지메를 당한 아이가 집에 울면서 돌아오는데 마중나온 엄마가 자식의 상처를 닦아주기보다는 학교에서 싸웠다고 다짜고짜 '따귀'를 갈긴 것이나 다름없는 의사협회 회장의 발빠른 망언과, 더우기 해당 기자의 이메일주소나 전화번호 공개와 같은 의협의 유치한 대응 앞에서는 그저 망연 자실할 뿐이었다.

물론 그 상황은 잘못이다. 백번을 변명해도 그것이 불법인 이상 무조건 잘못이다.

그러나 대신 앞으로 새로운 의료기기가 들어 올 때마다 한번도 그 기계를 만져보지 못한 의사들이 사용 설명서만 읽고 환자를 진짜 마루타로 삼아 시술을 하게 되어도 어쩔수가 없는 일이다.

아울러 같은 관점에서 지난 관행처럼 제조사로부터 기구 사용법을 교육받은 업자가 의사에게 기계의 사용법을 가르쳐주는 행위도 엄연히 무면허 의료행위가 된다.

그 상황에서 어느 경우가 "진짜 마루타냐?"는 질문은 소용이 없다. 더우기 일부의 사례로 의사와 환자간의 라뽀가 무너지고 환자가 의사를 불신하고 의사가 환자를 증오하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논의 밖이다.

그들 역시 신 모 기자 사건으로 모든 기자가 도둑놈이라고 손가락질 한다면 과연 그들은 받아 들 일 수있겠는가?

그것은 현재 우리 의사들이 처해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 맞다, 의사는 죽을 죄를 지은 범죄 사기꾼 도둑집단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매를 다 감당해야한다 하더라도, 지금 왜 외과의사가 수술칼을 놓고 "건강식품 판매업자"로 등록을 해야하는지, 산부인과 의사가 무엇 때문에 "비만 클리닉"을 시작해야하는지, 왜 의사가 청진기를 들고 건강식을 팔아야 하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소명은 들어주어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그들은 이제 의사가 향기치료,비만, 카이로, 심지어 무슨 봉침과 테이핑에 건강식품까지 판매하지 않으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는 절박한 현실에 대해서는 애써 눈을 감아 버린다.

그들의 관심사는 판검사처럼 권력도, 언론처럼 여론의 힘도, 재벌처럼 금력도 없는 의사들을 주류사회에서 희생시켜 도태시킴으로서 이지메를 마무리하는 일에만 뿐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존경하는 의사협회장의 말씀대로 한마리의 미꾸라지로 치부하고 도마뱀처럼 꼬리를 잘라버리고 납작 엎드려서 연명하는 것으로 만족을 해야할까?

아니면 의사협회의 방안대로 의사들의 mbc 출연거부로 응징(?) 을 해서 방송사들이 그것이 두려워서 이제는 더이상 의사들을 괴롭히지 못하게 할까?

그 정답은 어디에 있을까?

정말 존경하는 우리 지도부는 그것이 정답이라고 믿고있는 것일까? 감히 필자가 주제넘게 해답을 말할 수는 없지만, 아마 그 정답은 그렇게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의외로 우리들의 가까이에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인정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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