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가는 의료정책

안용항
발행날짜: 2006-09-01 06:53:30
  • 안용항(의료와 사회포럼 정책위원)

사회의 모습을 아주 단순하게 바라보면 2가지 방향으로 언급할 수 있다. 하나는 개인을 중요시하는 방향이고 하나는 공동체(국가)를 중요시하는 방향이다. 극단적 개인주의를 중요시하는 사회와 개인보다는 국가를 극단적으로 중요시하는 사회 사이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회가 존재한다.

개인을 극단적으로 중요시하는 사회는 서구의 과거 경찰국가(야경국가) 형태를 예로 들 수 있는데 가난의 ‘모든 책임’은 개인에게 있다고 하여 수십만 명이 굶어죽는 사태가 벌어진 경우도 있었다. 개인보다는 국가를 극단적으로 중요시하는 사회는 레닌-스탈린으로 이어지는 구 소련과 캄보디아의 폴포트 정권, 북한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수백만 내지 천만명 이상이 죽는 사태가 발생한, 마르크스주의를 이론적 바탕으로 출발한, 공산사회라는 이상사회를 꿈꾸는 사회이다. 현재는 북한을 제외하고는 양 극단적 형태는 거의 사라지고 있는 듯하다.

의료체계도 개인과 국가라는 기준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의료가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이라는 시각은 야경국가에서 나타날 수 있을 것이고 의료가 전적으로 국가의 책임이라는 시각은 공산국가에서 이미 나타난 바 있다. 우리나라의 민노당의 무상의료 주장이나 극단적 사회주의 의료체계를 주장하는 시민단체에서 주장하는 건강권 문제(우리나라 헌법의 건강권을 극단적으로 해석하여 국가가 국민들의 건강을 전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 등이 구 소련의 의료체계에서 볼 수 있는 모습과 유사하다.

현대 선진국가에서는 건강을 극단적 개인 책임으로 돌리는 나라도 없는 듯하다. 개인을 중요시하는 미국도 우리나라의 의료보호와 같은 장치를 두어서 그들을 보호하는 정책을 시행한다. 개인의 건강문제를 국가에서 돌보고 있는 영연방계통 국가들도 국가가 개인의 건강을 ‘전적으로’ 돌본다는 시각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는듯하다. 이들 나라들은 구 소련과는 달리 정부의 '전적인 통제'를 받지않는 개인병원을 인정하고 환자가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질병치료 선택권을 일정정도 허용하고 있다. 의료인이 개인병원을 설립하든 국가의료체계 속에서 활동하든지 간에 의료인의 선택권도 보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의료정책 방향이 어떠한지를 잘 알려주는 정책이 발표되었다. 8월 24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원장 김창엽·이하 심평원)은 의료급여 환자가 복용하던 약제가 모두 소진되기 전에 동일 성분의 의약품을 다시 처방해 약제중복이 발생된 경우 의료기관의 진료비에서 삭감 처리할 것이라고 한다. 또 의료급여환자가 여러 곳의 의료기관을 순회하면서 중복처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 처방·조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사전점검시스템을 마련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이 정책의 골자는 모든 의료급여 환자들의 고통을 국가가 통제하겠다는 이야기이다. ‘의료쇼핑’을 막기 위한 정책이라고는 하지만 그 결과는 점점 강화된 국가의 환자통제 방향으로 나아간다.

환자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의사들을 이용한다. 즉, 의사들은 ‘자신이 스스로 원하지 않는 국가 의료 경찰’의 역할을 해야 하고 경찰역할을 거부할 경우 ‘삭감’이라는 경제적 손해를 강요당하고 국가의 윤리적(?) 비난을 감내해야 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병의원을 자발적으로 찾아가는 것은 환자이므로 병의원을 찾음으로서 생기는 문제의 책임은 환자가 져야한다. 이것은 선택한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는 윤리의 기본이다. 국가는 의료쇼핑의 책임있는 환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의료쇼핑의 책임을 의사에게 묻는 것이 이번 정책의 모습이다. 의사들은 국가의 강압에 원하지 않는 일을 함으로서 환자와의 갈등을 피할 길이 없다. 때로는 자신의 양심적 판단과는 다르지만 국가의 통제에 어쩔수 없이 호응함으로 '삭감'이라는 경제적 손해를 면하려는 판단을 하게 되는 경우도 발생할 것이다.

‘의료쇼핑’을 생각해보자. 의료쇼핑은 환자가 불필요한 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것을 말한다. 한 병의원을 불필요하게 자주 가는 경우와 여러 병의원을 불필요하게 방문하는 경우가 쇼핑에 해당될 것이다.

한 병원을 다시 찾는 경우는 1)먹고 있는 약으로 질병치료가 잘 안된다고 생각될 경우, 2)약을 잃어버린 경우, 3)먹고 있는 약을 더 많이 확보하기위한 경우 등이다. 1번과 2번은 타당한 경우이고 3번은 타당하기도하고 타당하지 않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3번의 경우 갑작스런 여행계획이 생긴 경우 타당한 경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심평원이 통제대상으로 삼으려는 경우는 타당하지 않는 경우라야 할 것이다. 1-3번의 타당한 경우와 타당하지 않는 경우는 외형적으로는 구분이 불가능하다. 환자가 타당하지 않는 경우라도 2번의 핑계를 댄다면 타당한 경우로 변한다. 즉, 환자가 비록 약제가 모두 소진되기 전에 동일 성분의 의약품을 다시 요구하다라도 의사가 타당성 여부를 구분하기는 불가능하다. 즉, 국가는 의사들에게 불가능한 것을 강요하는 비윤리적 정책을 만든 것이다.

여러 병의원들을 불필요하게 방문하는 경우는 각각의 의사들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사전점검시스템’이라는 것을 만들려고 한다는 것이다. 한 환자의 모든 자료를 국가가 정리하고 통제해야만 사전 점검이 가능하다. 환자의 건강상태, 생활상태, 정신 상태(정신과 문제), 성 생활(산부인과, 비뇨기과 문제) 등 까지 고려해야 하는 시스템이어야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시스템 속의 인간은 자유를 상실하고 컴퓨터속의 데이터로 존재한다. 국가는 인간을 데이터로 조정하게 되는 그러한 시스템인 것이다. 소수의 의료쇼핑을 통제하기위해 시작된 시스템이지만 결국 모든 인간(국민)을 통제하는 시스템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의료는 남에게 보이고 싶지않는 모습들을 의사에게 노출시켜야 적절한 의료행위가 이루어진다. 그래서 의사는 환자의 개인 정보(개인 비밀)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노출시켜서는 안된다.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개인의 정보를 함부로 볼 수 있는 권한이 있는가?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개인보다는 국가를 최 우선시하는 사람일 것이다. 국가를 위해서는 개인의 사생활은 전부 통제하여도 좋다는 사회주의식 아름다운 이상론을 추종하는 사람들 일 것이다. 이러한 이상론이 절대적 독재를 만들어 버린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이런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면 우리나라의 의료정책은 ‘건강을 국가가 모두 책임’진다는 이상론(너무나 이상적이라서 결국 다다를 수 없는 거짓세계를 말함)으로 진행하여 개인은 없고 국가전체만 남는 극단적 사회체계의 방향으로 진행할 런지도 모른다.

의료정책으로, 국가는 의사에게 비윤리적 강요를 해서는 안된다. 공인된 지식에 따른 판단을 억압하고 불가능한 것을 하라고 강요하는 잘못을 버려야한다. 의료쇼핑을 핑계로 전 국민을 통제하게 되는 잘못된 정책을 버려야 한다. 의료쇼핑문제는 다른 방향으로 풀어야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체 의료정책의 방향이 극단으로 나아가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 이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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