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내부폭력 만연 '부끄러운 자화상'<2-完 >

장종원
발행날짜: 2004-05-13 12:46:18
  • 폭력용납 공감대 버려야···의협 신고사이트 개설추진

언론을 통해 심심찮게 보도되는 의료현장에서의 폭력 사건은 그리 관심을 끌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곳에서 생명을 해치는 폭력이 난무하다는 것은 지극히 비정상적이다. 게다가 일부 환자나 외부인에 의한 폭력만이 아닌 의료인간의 폭력도 빈번하다는 고백은 더욱 충격적이다. 의료계를 전반을 흐르는 폭력이 가지는 함의와 대안을 2회로 나눠 짚어본다.

-------------<<글싣는 순서>>-----------
|제1부|매 맞는 의사, 병원은 '폭력과의 전쟁중'
|제2부|의료계, '내부 폭력의 악순환' 끊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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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지방의 한 대학병원에서 성형외과 3년차 레지던트가 1년차인 후배를 야구방망이로 머리를 내리친 사건이 일어났다. 결국 맞은 피해자는 머리뼈 골절과 뇌출혈로 응급 뇌수술을 받아야 했고 가해자인 레지던트는 구속됐다.

또 모대학병원에서는 교수가 전공의를 상습적으로 폭행해 물의를 일으켰다. 교수는 아침 회의시간에 장부정리 및 발표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전공의를 발로 걷어차는 등 폭행을 가했으며 심지어는 병동 복도에서 환자와 간호사들이 보는 가운데 전공의의 하복부를 가격하기도 했다.

의사와 간호사간의 폭력사건도 있었다. 지방의 K대병원의 모전공의가 간호사와의 시비로 인해 외과 중환자실에서 간호사를 폭행하고 이에 격분한 노조지부장이 전공의를 다시 폭행해 사건은 전공의협의회와 노조와 대결 양상으로까지 확대되기도 했다.

의대 교수에서 간호사까지 이어지는 ‘폭력 사슬’
이러한 의료계 내부 폭력은 꽤 일상적이고 암묵적인 형태로 자리잡고 있다.

최근 월요의료포럼이 주관한 ‘범사회적 폭력추방을 위한 워크숍’에서는 의료계가 내부폭력을 추방하기 위한 운동을 벌이기로 걸의했다. 이들은 관행적으로 묵과돼 온 의료계의 치부를 세상밖으로 끄집어 낸 것이다.

월요의료포럼에서 조사에 따르면 전체의 10.3%(개원의 5.1%, 전공의 14.2%)가 폭행을, 43.7%(개원의 29%, 전공의 55%)가 폭언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폭행이나 폭언을 가한 사람에 대한 질문에 개원의, 전공의 각각 73.5%, 92.9%가 상급 전공의나 교수 등 연장자였다고 응답해 의료계 내부 폭력의 심각함을 증언했다.

또한 폭력의 ‘내림’ 현상이 간호사 등 병원근무자까지 전이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위원장 윤영규)이 최근 발표한 `병원 내 폭언.폭행 및 성희롱에 관한 설문조사'에서 병원 여성 근로자의 39.8%가 폭언이나 폭행 경험이 있으며 그 중 환자의 신체에 빗댄 의사의 성적농담(31.9%)이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성희롱을 하는 대상에 교수(37.8%), 인턴.레지던트(19.8%), 부서 내 상사(10.6%), 직원 또는 동료(13.5%) 등이 주로 지목돼 내부 폭력의 심각성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경상대학교병원 오지원 교수는 “환자나 보호자의 폭행과 같은 경우는 공동 대응을 하는 등 그나마 체계가 갖추어져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의료계 내부 폭력은 수면위로 떠오르는 것 조차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고 말했다.

“폭력을 당해도 그냥 참는다”
이같은 병원내 폭력의 내림현상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한 결과다. 진료의 주체인 의사들은 배움에 있어 엄격한 선후배 관계,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 치료에 대한 중압감 등응 받고 있다.

또한 병원산업의 고된 업무, 인력부족 현상 등과 같은 구조적인 문제도 연관돼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폭력상황에 공식적으로 대응할 방법은 마땅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보건의료노조의 조사에서는 폭언·폭행 및 성희롱 시 대다수인 55.1%가 그냥 참는다고 응답했으며 노동조합에 알린다는 경우는 0.9%에 불과했다.

월요의료포럼 조사에서도 폭행에 대한 대응행동별로는 즉시항의가 59.2%였고, 자리를 피함이 18.2%, 맞대응이 4.7% 등 이었다. 그러나 소속기관에 폭력문제를 해결하는 공식 기구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2.6%만이 있다고 대답했고, 78.3%는 없다고 응답했다.

실제로 교수가 수술실에서 전공의르 폭행해 수술까지 받게 했던 모대학병원의 사건은 이후 징계위원회와 같은 공식기구가 없는 상황에서 조용히 넘어가려는 병원측과 전공의간이 갈등이 심각한 상황까지 이르렀다.

보다 못한 교수협의회에서 성명서를 내는 등 정면대응을 해 가해 교수의 사임으로까지 이어졌지만 이 사건은 공식기구가 없는 상황에서 언제 갈등이 ‘화약고’로 변할지 모르다는 교훈을 남겼다.

아주의대 임기영 교수는 “폭력을 행사한 사람을 처벌할 수 있고 폭력을 당한 사람이 호소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오지원 교수는 “병원 내 폭력을 해결할 수 있는 공식기구가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며 “문제가 발생하면 각 과 과장이나 병원장이 처리하는 식에서 벗어나 공정하게 다룰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징계위원회가 있긴 해도 위원장을 병원장이 임명하는 시스템 하에서는 제대로된 공정한 문제해결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잘 짜여진 시스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폭력, 여성의학으로 이행하는 과정의 과도기적 현상
한편 이러한 의료계 폭력에 대해 아주의대 사회의학교실 임기영 교수는 현대 의료의 남성주의적 패러다임에 주목해 설명한다.

임 교수는 “현대의학은 소위 남성중심적 의학이라 불리며 이는 질병과 죽음을 적으로 삼고 의사는 투사가 되어야 싸워야 하는 의학이다”며 “이에 남성의학은 권위주의적, 군대식, 명성 중심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존 남성중심적 의학에서 폭력은 당연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현재는 의료의 패러다임이 돌보는 의학, 치유의 의학인 여성중심적 의학으로 이행하는 과정으로 폭력은 그 과정상의 남아있는 과도기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특히 남성중심적 의학하에서의 강력한 권위라는 통제수단이 사라짐에 따라 합리적인 커뮤니케이션이나 리더십을 습득 받지 못한 의료계는 통제의 수단으로 폭력에 자연적으로 의존한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이에 “의과대학생과 전공의들의 교육체계에 인성교육, 지식교육, 리더십, 커뮤니케이션 교육 등이 적극적으로 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폭력, 양비론으로 접근해서는 안돼”
임 교수는 아직도 폭력을 ‘수련과정의 당연한 산물’ 쯤으로 여기는 경향이 없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폭력의 문제를 양비론이나 정황론에 의거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오 교수는 “전공의들을 수련하는 과정에서 제재를 가할 필요성이 발생해도 정당한 방법이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수련과정을 평가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선진국 등에서는 1년마다 수련을 재계약하는 등 수련과정을 심사할 수 있는 제도가 갖춰져 있는데 우리는 미흡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의료계의 적극적인 추방운동을 시작했고 여러 긍정적인 조짐이 보이고 있다.

전공의노조가 출범해 전공의들의 권익 향상에 나서게 된 것도 좋은 징조가 있다. 이들이 자신들의 최소한의 권리를 주장하는 과정에서 폭력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악이기 때문이다.

의료계의 폭력에 대해 침묵하던 여러 단체들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특히 최근 의료폭력추방은 첫 번째 과제로 선정한 월요포럼이 주목받고 있다.

의협은 최근 폭력 추방운동 관련 조직 설치 및 비폭력 윤리 코드 제정, 의료현장 폭력에 관한 신고사이트 운영 등을 추진키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의료현장 폭력추방운동 위원장 아주의대 이성낙 교수는 “의료인 사이에 폭력은 용납할 수 있다는 폭 넓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이 사실이다”며 “그러나 과실의 책임을 엄하게 추궁하는 것과 폭력을 가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의료계가 환자나 가족,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폭력을 삼가라고 말하기 앞서 우리 자신이 폭력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의료계의 부끄러운 면이 드러날 수도 있지만 이 모습이 진정한 의사상으로 사회에 인식되리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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