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의사의 자살과 무과실

오승준
발행날짜: 2012-04-02 06:16:56
  • 오승준 변호사(법무법인 대세)

#COLUMN#수많은 의료소송을 진행하고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안타까운 사건은 산부인과 관련 소송이 아닌가 싶다. 아내를 잃은 남편, 울음소리 한 번 내보지 못한 채 사망한 아이의 부모는 가슴에 큰 구멍이 뚫린 것 같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들의 망연자실한 표정을 상대하면서 병원 입장을 대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마치 악덕 변호사가 된 기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출산 전에는 건강했던 부인이 출산 중 과다한 출혈로 사망하거나, 건강하게 태어난 듯했던 아이가 급작스럽게 상태가 악화되었다면 누구라도 한 번 쯤은 병원 측의 잘못을 의심해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의료지식이나,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들의 말에 따르면 담당 의사가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확신이 든다고 한다.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는 생각은 유족들을 더욱 힘들게 할 것이다.

이러한 유족들의 마음을 헤아리기라도 했던 것일까.

정부에서는 의료분쟁조정법을 제정함에 있어 분만시 의료사고가 발생하였다면 의료진의 과실이 없더라도 피해 보상을 해주는 법적 장치를 마련하였다. 이제 내년 4월부터는 분만 시 의료사고로 인하여 상처받은 모든 유족들을 금전적로나마 위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환영할 만한 정책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훌륭한 취지를 퇴색시키는 부분이 있다. 무릇 정책을 입안할 때에는 그에 따르는 '예산'을 염두에 두어야 함에도 정부는 보상금 재원 마련을 산부인과 의사들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점이다.

보상에 관한 격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결국 의사들이 무과실사고 보상금 재원의 30%를 부담해야 한다고 결정한 것이다.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돈 많은 의사들이 가족을 잃은 유족들에게 30%의 보상금을 주는 것도 아까워 하는지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심각한 저출산 경향으로 병원 재정은 악화되고, 포괄수가제의 시행 등 각종 악재가 겹치면서 산부인과에 지원하는 전공의 숫자는 줄어들고 있다. 개업의들은 분만을 회피하고 있다.

산부인과는 과목의 특성상 생명과 직결된 시술을 해야 할 때가 많고, 그만큼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높기에 항상 억대 소송에 시달린다. 영아에게 장애가 남았을 때에는 소가가 10억에 육박한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소신을 지키며 분만 업무에 전념했을 뿐인데, 항상 수억대의 채무자가 될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재원 30%의 전가 정책은 단순히 돈에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산부인과 의사들이 수많은 어려움을 감수하면서도 분만실을 지키려했던 마지막 의지까지 꺾어버리는 결정이 될 수도 있다.

의사들이 억대의 소송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지키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시술에 대한 소신과 자부심이다. 비록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점은 인정받길 원한다.

하지만 정부의 결정은 의사들이 지키려 했던 소신과 자부심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있다. 의사들이 헌법상 보장받고 있는 재산권과 인격권,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고 있다.

지난 3월 초에는 의료소송의 제기와 유족들의 난동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산부인과 여의사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있었다. 이 여의사를 보호해줄 사회적 보호장치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분만실을 지키려는 의사들의 노고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향후 몇 년 내로 아이를 분만할 수 있는 병원은 씨가 마를지도 모른다. 고의로 의료사고를 범하는 의사는 없다. 의사는 잠재적 범죄자도 아니고, 정부가 쉽게 열 수 있는 지갑도 아니다. 직역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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