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의 대정부 투쟁에 대한 소고

김재연
발행날짜: 2012-12-03 06:00:39
  • 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법제이사

의협은 대정부 투쟁 목표(요구안)로 ▲수가결정구조 개선 ▲의정협의체 구성 ▲성분 명 처방 추진 중단 ▲총액계약제 추진 중단 ▲포괄수가제 개선 ▲전공의 법정 근무시간 제도화 ▲병원신임평가 기관 신설(이관) 등 7개 항을 제시했다.

의협은 복지부 협상에서 이와 같은 요구안이 관철되지 않으면 개원의 전면 휴폐업 등 투쟁 강도를 높여나간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총액계약제, 성분명 처방을 안한다고 보건복지부가 발표한다 하더라도 이명박 정부는 2월에 끝나면 그만이고, 다음 정부가 선거 공약으로 추진하면 복지부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추진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금 더 시급한 일은 대선 공약에 의료계의 요구를 담을 수 있는 논리 개발과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건정심 구조 개선은 18대 국회 때 건정심 위원 구성의 불공정성, 수가계약 구조 개혁을 위해 손숙미, 이낙연 의원이 건강보험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지만 복지부 등의 소극적인 자세와 시민단체 등의 반대로 논의조차 못했던 것이다.

노환규 회장 이전부터 의료계의 노력은 언제나 계속 되었지만 복지부 반대보다 시민단체 반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건정심의 인적 구성을 바꾸는 문제는 건강보험법 개정이 전제가 되어야 하고, 법률 개정은 각계의 수많은 의견 수렴을 거쳐 국민의 요구에 맞는 제도가 될 때 입법부는 법률을 개정하게 된다. 그 방법은 행정 입법이 될 수도 있고 의원 입법이 될 수 있다.

건정심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국민의 시각으로 개정 필요가 증가될 때만이 개정 되는 것으로, 국민의 보건의료 권리가 보호받는 제도가 우선이지, 행정부의 발의가 의사를 위하는 구조를 선호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합리적인 주장을 하되 입법 절차와 과정이 존중되는 제도권에서 문제를 풀어야 할 것이다.

정부도 건정심 구조 개편은 국회에서 결정할 사항이고 성분명 처방과 총액계약제는 추진 방침을 공식화한 적이 없다. 또한 성분명 처방과 총액계약제 추진 방침은 약사회와 심평원의 이면 계약 형태로 진행되었다가 이미 폐기된 사안이라고 일방적으로 해서도 안 된다.

의정협의체 구성은 의협의 대정부 투쟁 해결에 가장 시급한 사항이라고 본다.

노환규 회장의 행보는 보건복지부 장관이라는 정부 기관의 대표에게 기본적인 절차상의 하자를 보여 상호 신뢰를 깨지게 만들었고, 문제의 발단이 된 면이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얼마 전 "의협에서 협상한다고 하는데, 공문이나 전화 등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다"면서 "대정부 요구안도 언론을 통해 알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건정심 구조 개편은 국회에서 결정할 사항이고 성분명 처방과 총액계약제는 추진 방침을 공식화한 적이 없다"면서 "협상 대상이 아닌 것만 요구하고 있어 난감하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투쟁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되고 투쟁은 협상을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하며 의료인과 같은 전문가 집단에게는 최후의 협상 카드여야 한다.

의정간의 대화 단절로 협상 한 번 해보지 못하고, 협의체와 같은 대화 창구를 스스로 단절해 놓고 주장만 강요하는 것은 협상의 기본인 신뢰의 상실만 가져올 뿐이다.

신뢰가 깨진 상태에서 만들어진 갈등은 불신의 벽이 커져 갈등 비용에 대한 해소 비용이 더욱 커질 뿐이다. 어떤 주장이라도 협상의 장이 있어야 이를 듣고 상호간에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성분명 처방 추진 중단은 의사들의 진료권에 대한 침해다. 심평원과 약사회의 이면 계약이 있었다는 점만으로도 의사들은 복지부를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입장이다. 복지부는 이를 추진한 적도 없다고 하지만 공공연히 시도하려는 노력들이 감지되고 있어 의혹만 커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복지부는 공식적인 문서로 하지 않겠다고 구체적인 약속을 발표하면 된다.

총액계약제와 관련, 정부의 연구 용역 등이 계속 이루어지고, 심평원은 이 제도만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로 주장하지만 이는 의료인간의 무한 경쟁체제로 몰아서 국가가 의료를 손쉽게 통제 하려는 의도로 보여질 뿐이다.

총액계약제 추진은 의료인이 반대한다면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을 양산하는 비용이 오히려 더 커져 국민에게 전혀 이롭지 않다.

당사자가 반대하는 제도가 국민을 이롭게 하긴 어렵다. 총액계약제를 더 이상 추진하지 않고 추진할 때에는 의료계와 충분한 논의를 전제로 하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대응 방식도 바꾸어져야 한다.

포괄수가제 개선안은 이미 과목별 직능별로 구체적인 문제점을 수없이 논의하고 있으며 개선안 마련을 위해 보건복지부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미 시작된 제도라면 시행 하면서 생기는 부작용을 개선할 다양한 문제를 토의하고 보건복지부와 의사협회의 담당자들이 협의체에서 머리를 맞댄다면 보다 낳은 제도로 개선되어 좋은 제도로 만들어야 할 것이지 이 또한 투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되고 협의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전공의 법정 근무시간 제도화의 주요 쟁점은 △전공의 신분에 대한 정의 △수련시간과 근로시간 규정 △전공의 수련근무 계약서 작성여부 △연장근로시간 산정방법 △당직근로수당 적정지급 여부 등이다.

이는 보건복지부와 교육과학기술부, 의협 대표단, 전공의 대표단이 연석회의에서 구체적인 문제점을 개선한 제도화를 해야 한다. 이는 열악한 근무 환경으로 그 피해가 환자에게 가기 때문에 시급히 해결 하겠다는 보건복지부의 의지를 실천하면 된다.

그러나 전공의의 과도한 업무시간을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역풍을 맞아 의대생 정원을 확대해 전공의를 늘리자는 주장을 합리화하는 전략에 이용당할 소지가 많다. 그렇다고 하여도 전임의 제도를 확대한다고 해도 여전히 역부족일 것이다.

병원신임평가 기관 신설(이관)은 의료계를 옥죄는 제도를 만들겠다는 발상으로, 그것도 의협이 나서 하겠다는 점은 이해할 수 없다.

이미 의료법에 요양기관 인증평가위원회, 의료기관인증위원회, 전문병원인증위원회 등 유사한 평가위원회가 즐비하다. 그것도 부족해서 이제는 신임평가기관을 만들어 누가 무엇을 신임 평가하겠다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의협의 투쟁 방식으로 회원의 피해만 양산하게 한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

그 동안의 의협 협상 태도 중 다음의 사항은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의협회장이 복지부장관과 면담을 신청할 때에는 기관과 기관 사이에 공식적인 절차와 예의가 중요하다.

상대를 무시하고 먼저 언론 플레이하는 행위는 서로의 신뢰를 막는 장애가 된다. 협상의 시작은 신뢰에 바탕을 두고 각자의 입장 차이를 줄이도록 설득의 과정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건정심의 구조 개선은 복지부의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닌 법률 개정의 문제인 것이다.

의협의 건정심 탈퇴로 가장 직격탄을 맞은 영상의학과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동안 의협 집행부가 건정심을 나온 뒤 다음날 의료행위전문평가위원회 가입자 단체 측에서 지난해 수가 인하폭보다 더 인하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입으면서 건정심에서 MRI, CT 수가가 인하되고 말았다.

이후 영상의학과 의사들은 지금도 그 때 인하된 수가로 적용 되고 있다. 그 결과 영상의학과 전문의 3000명 중 개원의원 290명은 영상 수가 인하로 인하여 150억원이나 수입이 감소했다.

그 결과 개원의들은 월 평균 300만~400만원의 수입 감소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후 개원 의원 수가 5% 감소하였다.

포괄수가제와 관련 외과와 안과가 협상하던 도중 의협의 협상 금지령으로 수가 협상을 중단해 그 결과 안과 백내장 수가가 인하되었다.

산부인과는 절망적이다. 그들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정도로 생존이 절박한 것이 현실이다. 그들의 생존을 위한 노력을 노환규 회장 당선 이후 언제 한 번 적극적으로 지원해준 적이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의료계 파업은 필수유지업무의 법률 규정이 준수되어야 한다.

파업을 할 때에도 필수업무는 최소한 인원을 유지해 업무가 중단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한 제도이다. 필수유지업무는 2006년 노사정이 합의한 노사관계법·제도 선진화 방안에 의해 2008년부터 필수공익사업장에 적용되었던 직권중재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그 보완책으로 지정되었다.

필수유지업무의 유지 수준과 대상 직무, 인원 등 구체적 운용 방법은 노사가 자율적으로 정하되 노사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노동위원회가 결정한다.

노동조합이 필수유지업무 유지의무를 지키지 않을 때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이와 함께 현행 노동법 상에서는 합법 파업 중인 사업장에서 대체근로를 시킬 수 없지만 앞으로 필수공익사업장에서 쟁의행위가 발생했을 때는 파업 참가 인원의 50% 범위에서 대체근로가 허용된다.

노동부는 2007년 7월 10일 필수공익사업장 업무 중 파업이 최소한으로 제한되는 필수유지업무 범위를 지정하는 내용의 노동조합과 노동관계조정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보건의료조조가 제기한 필수 유지업무의 쟁의행위 금지 법률을 헌법 소원에서 헌재는 지난 2011년 12월 29일 필수공익사업 중 필수유지업무에 대해 쟁의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42조의 2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합헌 결정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르면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어느 정도는 일반 국민이 일정한 고통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이로 인해 국민의 생명이나 신체의 안전 등을 위협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어 "필수유지업무는 정지·폐지되는 경우 공중의 생명·건강, 신체의 안전을 현저히 위태롭게 하는 업무"라며 "다른 영역의 근로자보다 제약이 크더라도 차별의 합리성이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의료계의 필수 유지 업무는 해석에 따라 논란이 되겠지만 응급실 분만실 중환자실이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임채민 장관이나 의협 회원을 위한다는 노환규 화장을 개인으로 보는 국민은 없다. 공인으로 서로 존경받아야 할 한국 사회에서 영향력이 큰 분들이다.

그 동안의 과거에 대해 서로 사과하고, 통 큰 대타협을 이루어 한국 의료의 불안 요소가 해소되길 기대하여 본다.

이제 국민들은 의정 갈등이 아닌 안전하고 편안한 진료 환경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점에 대하여 이견이 없다면 무조건 만나서 현안을 타결해주리라고 믿고 싶다.

임 장관은 오죽 하였으면 의사가 환자를 버리고 파업을 생각 했을까 라는 역지사지의 심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의협 회장은 전의총 대표가 아니라 전국 8만 의사의 어버이가 되어야 한다.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할 의사들의 피맺힌 절규를 만나서 속 시원히 말하고 최우선으로 의정협의체 상설화를 만들고, 여기에서 모든 문제를 풀도록 노력하겠다고 한다면 한국 의료의 희망이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파업 전술의 역량 강화를 의협이 고집하는 한 복지부 입장에서는 선거가 끝날 때까지 급할 것이 전혀 없고, 이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새로운 대통령의 당선자가 인수위를 구성하여 주요 의료정책이 결정되는 1월 중순까지 가야 그 윤곽을 알 수 있다.

과거의 무수한 정부에서 그래 왔듯이 이익단체의 주장은 대부분 외면당하고 국민의 시각에서 더욱 합리적인 정책이 수립되기 쉽다. 인수위와 정책 조율 과정에서 현 정부 내 담당자들의 의견이 중요 하리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투쟁이 아닌 협상과 서로를 이해시키는 협의체 구성만이라도 가동되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강조 하고 싶다.

행정 관료들에게 우리의 주장이 구체적으로 국민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지 우선 이해시키고 합리적으로 설득하여도 부족한 점이 의료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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