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원 깎아주고 만성질환관리 생색 내다가 쓴잔

발행날짜: 2013-07-08 06:47:03
  • 기획의사 인센티브 없고, 환자도 못마땅…정부 주도가 패착

만성질환관리제(만관제) 시행 후 1년여가 지났지만 논란은 좀처럼 수그러 들지 않고 있다. 의사협회가 만관제 활성화 방안을 들고 나오면서 의료계가 다시 한번 찬반 양론으로 요동치고 있다.

의협은 정부 주도의 만관제는 사실상 실패한 정책이라며 의원급이 중심이 된 새로운 제도 설계를 주장하고 나섰지만 일부 의사들은 어떤 만관제의 도입도 반대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선택의원제가 만관제로 변경된 과정과 도입 후 1년의 성적표, 시행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 등을 짚었다.

전담의사제도→선택의원제→만성질환관리제

만성질환자 관리의 필요성이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은 지난 2010년부터다.

보건복지부가 1차의료 활성화 등 의료기관의 기능 재정립을 목표로 의원급에 만성질환과 생활습관질환의 중점 질환을 관리토록 하는 전담의사제도를 들고 나오면서 급물살을 탔다.

복지부는 '전담'이라는 용어가 주치의제도를 뜻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2011년부터 용어를 '선택의원제'로 고쳐 강행 의지를 피력한다.

당초 계획은 환자와 여기에 참여하는 의원 모두에 인센티브 등을 제공, 만성질환자의 지속적인 관리와 의원급 활성화 두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계획이었지만 개원가의 반응은 냉담했다.

의협과 시도의사회, 각과 개원의사회 등은 지역간·진료과목간 불평등 야기, 환자의 선택과 등록이 주치의제의 초기 단계라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정리했다.

여론 악화를 무마하기 위해 복지부는 환자가 건보공단에 선택의원을 지정하는 방식이 아닌, 의사가 환자에게 자율적으로 의료기관 지속 이용 의사를 묻는 방식으로 제도를 수정, 건정심을 통과한다.

문제는 선택의원제에 참여한 의사에 대한 별도 교육 등의 내용이 모두 제외되면서 의료기관에 대한 인센티브도 사라졌다는 점.

의료계의 반대에 부딪친 선택의원제는 고혈압과 당뇨 환자의 본인부담률을 현행 30%에서 20%로 낮추는 할인 제도로 전락하게 된다. 사실상 환자 관리가 유명무실화 된 '반쪽짜리' 제도가 된 셈이다.

당시 의협은 선택의원제의 핵심 기제와 독소조항들이 사라져 제도의 실효성까지 의문이 들기 때문에 더 이상 반대할 이유가 없다며 기존 반대 입장에서 선회한 바 있다.

의원이 적극적으로 제도에 참여할 유인 기전이 없고, 환자들도 10%의 진료비 할인에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보이면서 만관제는 애초부터 만성질환 '관리'와는 거리가 먼 제도였다는 점에서 실패는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만성질환관리제, 1년의 성적표

2012년 4월부터 시행된 만관제의 1년 성적표는 신통치 않다.

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4월까지 전체 1만 4천여 의원급 의료기관 중 고혈압·당뇨 질환 관련 30건 이상 청구한 곳을 기준으로 집계한 참여율은 약 65% 정도로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만성질환과 밀접한 과를 중심으로 참여 기관의 편중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과거 만관제 동참 의사를 밝힌 내과의 참여율은 80%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60% 이상의 참여율을 기록한 가정의학과와 일반과, 일반외과 등을 제외하면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진료과의 참여율은 대체로 저조한 편이다.

가장 큰 문제는 환자 방문이나 등록당 인센티브가 없어 의료기관이 적극적으로 만관제를 홍보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모 개원의사회 임원은 "환자들이 만관제를 알고, 먼저 요청할 때에만 등록해줄 뿐 제도 홍보는 하지 않고 있다"면서 "65%의 참여율도 의원이 적극적으로 나선 결과라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그는 "방문당 인센티브만 있어도 적극적으로 관리할 유인책이 되지만 사실상 지금은 환자의 본인부담금 할인 제도로 전락한 게 사실"이라면서 "환자들도 진찰료 부담이 1회 방문 당 900원 가량 줄어드는 제도에 시큰둥하기는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만관제의 성공 핵심은 의원의 참여를 어떻게 이끌어 낼 수 있느냐 하는 점인데 정부가 무리하게 추진한 감이 없지않아 있다"면서 "최근 정부가 의료계 주도의 만관제 안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은 정부 주도의 만관제 실패를 자인한 셈"이라고 환기시켰다.

설득 과정 없이 무리하게 추진한 결과 의-정의 긴밀한 협조 대신 반목과 불신만 자리하게 됐다는 것.

환자들 역시 불만이긴 마찬가지다.

환자단체연합회는 "환자들이 원하는 것은 진료비 할인이라기 보다 정기적으로 받을 수 있는 만성질환 관리"라면서 "국민들도 제도를 모르는 사람이 많아 홍보 수단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1년간 제도에 참여한 개원의들은 제도를 어떻게 평가할까.

이원표 개원내과의사회 회장은 "환자들의 방문 횟수가 조금 증가한 것 외에는 치료 성과를 내기에는 제도적인 한계가 있다"면서 "진정한 만성질환 관리가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제도 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못 박았다.

그는 "의원급이 만성질환자에게 투약 일정을 문자로 보내거나 아예 보건소가 시행하는 교육을 도맡아서 해야 실질적인 관리가 이뤄진다"면서 "다만 관리에 따른 교육 수당이나 방문당 인센티브 등 적절한 보상 체계를 갖춰야 의사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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