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통외과의원 조창식 원장
"양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 진료에 지쳐 질을 높이기로 결심했습니다."
환자와 얼마나 오랜 시간 상담을 하며 교감을 했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보단 하루에 얼마나 많은 환자를 봤느냐가 원장을 평가하는 척도가 된다. 적어도 한국의 의료 현실에서는.
저수가의 진료 환경에서 스무명 남짓한 환자를 보며 적정 수입을 얻는 것이 가능할까?
환자 수로 승부해야 하는 현실에서 3번 재개원한 원장이 새삼 주목을 끌고 있다.
지금까지의 성적표는 일단 '합격점'. 하루 평균 20명의 환자를 보면서도 일정 수준의 수입을 유지하고 있다는 닥터조 제통외과의원 조창식 원장을 만났다.
"질로 승부보기 위해 3번 이사했죠"
14년 전 조창식 원장은 안동에서 소위 '잘나가는' 원장 중 한명이었다. 아침 7시 30분부터 밀어닥치는 환자들을 보느라 점심을 거르는 일도 많았다.
농촌지역에 개원한 만큼 주 타겟은 노인 환자 층. 많을 때는 시간당 50명을 진료한 적도 있다.
이런 생활이 수년간 지속됐다. 확실히 첫 개원치고는 나름 성공한 축에 속했다. 주위에서 성공했다고 치켜세워주는 이들도 꽤 있었다.
하지만 진료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들기 시작한 것은 5년이 지난 시점부터.
환자들은 넘쳐났지만 "과연 교과서에서 배운대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냐"는 질문에는 대답이 망설여 졌다.
환자에 치이다 보니 삶의 질 역시 높을리가 없었다.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진료를 보다가 집에 오면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이것이 과연 좋은 삶이냐는 근본적인 회의감이 들 무렵 조 원장은 재개원을 결심했다. 진료 수익이 떨어지더라도 환자에게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농촌 지역을 벗어나기로 하고, 대구로 터전을 옮겼다. 노인 환자가 많은 농촌에서는 박리다매의 진료밖에는 할 수 있는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적은 환자를 보도록 진료 패턴과 청구 패턴을 다 바꿔보자는 실험이 시작된 2005년. 결과는 참담했다.
이전 개원 후 매출은 1/3 토막이 났다. 고작 하루 8명의 환자를 본 날도 있었다. 수입 감소를 감수하고 재개원한 것이지만 생각보다 타격이 컸다.
하지만 아무리 수입이 적더라도 박리다매의 진료는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확고하게 다짐했다.
개원 컨셉을 밀고 나가기까지 두번의 재개원이 이어졌다. 최종 정착지인 대구 진천역에 오고 나서야 어느 정도 기반이 잡혔다.
요즘은 하루 평균 20명의 환자를 본다. 시간당 50명의 환자를 봤던 14년 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 수입은 예전보다 많지는 않아도 결코 '부족'하지는 않은 정도다.
"개원가에서 성공하려면 죽도록 공부해야"
저수가 체계에서 환자를 적게 보면서 일정 수입을 올리려면 비급여 항목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조 원장은 어떻게 비급여 항목을 늘리면서도 환자들의 반발을 누그러 뜨렸을까.
"65세 이상 노인 환자들에게 본인부담금 할인이 횡횡하고 있습니다. 정당한 진료 대가를 달라고 요구하다가는 도둑놈 소리를 듣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에 위축되면 결국 양으로 승부를 보는 박리다매 진료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조 원장은 질로 승부를 보는 컨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환자들에게 우선 납득할 만한 설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정말 올 사람만 오는 의원을 만들기 위해 조 원장은 상담 시간과 진료 과정의 설명에 공을 들였다.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주고 신뢰를 쌓는다면 충성도 높은 환자들이 다시 찾을거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적어도 대학 교수급의 박학다식한 지식과 최신 지견을 갖춰야 의료 서비스의 질도 높아진다는 판단이 들었다.
조 원장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죽도록' 공부했다. 교과서에서 배운 진료에서 그치지 않고 진료실에서건 집에서건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공부했다.
최신 지견이 나온 해외 논문을 읽고 적용해 보는 과정을 수년간 거쳤다. 하루 3시간만 잘 정도로 공부에 미친 조 원장은 '근신경학적인 관점에서의 통증치료'라는 책까지 집필했다.
굳이 수술하지 말아야 할 환자들에게는 "수술이 필요없다"고 하고, 감기 주사를 요구하는 환자에게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소신진료를 이어가자 충성도 높은 환자들이 점차 늘어갔다.
죽도록 공부한 효과가 가격 경쟁력으로도 이어졌다.
조 원장은 "삭감을 우려해 근육재생치료 등을 환자들에게 100% 본인부담으로 청구하는 병의원이 많다"면서 "하지만 의학적 근거만 갖추면 삭감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삭감률 '제로'에 도전할 만큼 의학적 근거로 무장해 삭감률을 현저하게 낮췄다. 100% 본인부담 대신 보험청구와 병행하기 때문에 환자들의 부담도 절반으로 떨어진다. 자연스레 환자들이 조 원장을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조 원장은 "우리나라에서는 기술료 지불을 아까워 하는 사람이 많다"면서 "하지만 비용지불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정성을 들인다면 환자들도 바뀐다"고 강조했다.
그는 "질로 승부를 보는 병의원이 되기 위해선 우선 환자들이 납득할 만한 실력을 갖추는 게 첫째"라면서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죽을 각오로 도전한다면 좋은 결과가 뒤따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환자와 얼마나 오랜 시간 상담을 하며 교감을 했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보단 하루에 얼마나 많은 환자를 봤느냐가 원장을 평가하는 척도가 된다. 적어도 한국의 의료 현실에서는.
저수가의 진료 환경에서 스무명 남짓한 환자를 보며 적정 수입을 얻는 것이 가능할까?
환자 수로 승부해야 하는 현실에서 3번 재개원한 원장이 새삼 주목을 끌고 있다.
지금까지의 성적표는 일단 '합격점'. 하루 평균 20명의 환자를 보면서도 일정 수준의 수입을 유지하고 있다는 닥터조 제통외과의원 조창식 원장을 만났다.
"질로 승부보기 위해 3번 이사했죠"
14년 전 조창식 원장은 안동에서 소위 '잘나가는' 원장 중 한명이었다. 아침 7시 30분부터 밀어닥치는 환자들을 보느라 점심을 거르는 일도 많았다.
농촌지역에 개원한 만큼 주 타겟은 노인 환자 층. 많을 때는 시간당 50명을 진료한 적도 있다.
이런 생활이 수년간 지속됐다. 확실히 첫 개원치고는 나름 성공한 축에 속했다. 주위에서 성공했다고 치켜세워주는 이들도 꽤 있었다.
하지만 진료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들기 시작한 것은 5년이 지난 시점부터.
환자들은 넘쳐났지만 "과연 교과서에서 배운대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냐"는 질문에는 대답이 망설여 졌다.
환자에 치이다 보니 삶의 질 역시 높을리가 없었다.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진료를 보다가 집에 오면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이것이 과연 좋은 삶이냐는 근본적인 회의감이 들 무렵 조 원장은 재개원을 결심했다. 진료 수익이 떨어지더라도 환자에게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농촌 지역을 벗어나기로 하고, 대구로 터전을 옮겼다. 노인 환자가 많은 농촌에서는 박리다매의 진료밖에는 할 수 있는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적은 환자를 보도록 진료 패턴과 청구 패턴을 다 바꿔보자는 실험이 시작된 2005년. 결과는 참담했다.
이전 개원 후 매출은 1/3 토막이 났다. 고작 하루 8명의 환자를 본 날도 있었다. 수입 감소를 감수하고 재개원한 것이지만 생각보다 타격이 컸다.
하지만 아무리 수입이 적더라도 박리다매의 진료는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확고하게 다짐했다.
개원 컨셉을 밀고 나가기까지 두번의 재개원이 이어졌다. 최종 정착지인 대구 진천역에 오고 나서야 어느 정도 기반이 잡혔다.
요즘은 하루 평균 20명의 환자를 본다. 시간당 50명의 환자를 봤던 14년 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 수입은 예전보다 많지는 않아도 결코 '부족'하지는 않은 정도다.
"개원가에서 성공하려면 죽도록 공부해야"
저수가 체계에서 환자를 적게 보면서 일정 수입을 올리려면 비급여 항목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조 원장은 어떻게 비급여 항목을 늘리면서도 환자들의 반발을 누그러 뜨렸을까.
"65세 이상 노인 환자들에게 본인부담금 할인이 횡횡하고 있습니다. 정당한 진료 대가를 달라고 요구하다가는 도둑놈 소리를 듣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에 위축되면 결국 양으로 승부를 보는 박리다매 진료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조 원장은 질로 승부를 보는 컨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환자들에게 우선 납득할 만한 설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정말 올 사람만 오는 의원을 만들기 위해 조 원장은 상담 시간과 진료 과정의 설명에 공을 들였다.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주고 신뢰를 쌓는다면 충성도 높은 환자들이 다시 찾을거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적어도 대학 교수급의 박학다식한 지식과 최신 지견을 갖춰야 의료 서비스의 질도 높아진다는 판단이 들었다.
조 원장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죽도록' 공부했다. 교과서에서 배운 진료에서 그치지 않고 진료실에서건 집에서건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공부했다.
최신 지견이 나온 해외 논문을 읽고 적용해 보는 과정을 수년간 거쳤다. 하루 3시간만 잘 정도로 공부에 미친 조 원장은 '근신경학적인 관점에서의 통증치료'라는 책까지 집필했다.
굳이 수술하지 말아야 할 환자들에게는 "수술이 필요없다"고 하고, 감기 주사를 요구하는 환자에게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소신진료를 이어가자 충성도 높은 환자들이 점차 늘어갔다.
죽도록 공부한 효과가 가격 경쟁력으로도 이어졌다.
조 원장은 "삭감을 우려해 근육재생치료 등을 환자들에게 100% 본인부담으로 청구하는 병의원이 많다"면서 "하지만 의학적 근거만 갖추면 삭감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삭감률 '제로'에 도전할 만큼 의학적 근거로 무장해 삭감률을 현저하게 낮췄다. 100% 본인부담 대신 보험청구와 병행하기 때문에 환자들의 부담도 절반으로 떨어진다. 자연스레 환자들이 조 원장을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조 원장은 "우리나라에서는 기술료 지불을 아까워 하는 사람이 많다"면서 "하지만 비용지불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정성을 들인다면 환자들도 바뀐다"고 강조했다.
그는 "질로 승부를 보는 병의원이 되기 위해선 우선 환자들이 납득할 만한 실력을 갖추는 게 첫째"라면서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죽을 각오로 도전한다면 좋은 결과가 뒤따를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