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의대 생리학교실 민병일 교수
국내 복수면허자 의대교수 1호, 대한생리학회장, 대한동서의학회 초대회장, 대한스트레스학회장, 세계정신신체의학 학술대회 조직위원장,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정회원, 대한복수면허의사협회 명예회장.
이 모든 직함들은 경희의대 생리학교실 민병일 교수가 역임했거나 맡고 있는 이력들이다.
의사로서 바쁘게 살아온 민 교수가 최근에는 제 2의 인생설계를 위해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오늘 8월 교수직 퇴임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경희의대생들과 한의대생, 의료원 직원들을 대상으로 고별강연을 마치고 요즘에는 그동안 교수로서의 생활을 정리하는 책을 만드는데 정신없어요. 퇴직 후에 일은 퇴직 후에 생각하렵니다."
한의사면서 동시에 의사로, 거기에 의대 교수라는 직함을 가슴에 달고 국내 의학발전을 위해 힘써왔던 민 교수. 메디칼타임즈는 그의 굴곡 깊었던 45년 의사생활 동안 느꼈던 소회를 들어봤다.
국내 복수면허자 의대교수 1호, 쉽지 않았던 '외길인생'
민 교수는 국내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국내 최초 복수면허자 의대교수다. 더구나 최근 의사-한의사 간 영역을 둘러싼 다툼을 생각하면 더욱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민 교수는 경희한의대를 졸업한 뒤 침의 마취 및 통증완화를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싶어 다시 경희의대를 진학했다고 설명했다.
"사실 한의대를 졸업 한 후 의대를 진학한 이유는 침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의대를 진학했는데 졸업 후 국내에서 보다는 일본에서 더욱 심층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는 소식에 일본으로 유학을 가게 됐죠."
그는 다시 일본 큐슈대학원 의학연구과에 진학 한 뒤 의학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다시 경희의대와 한의대 교수로 재직하는 동시에 대한스트레스학회와 대한동서의학회를 창립하고, 대한생리학회장을 역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의사로서 2011 세계정신신체의학 학술대회 조직위원장을 맡아 행사를 진두지휘한 것이 제 인생에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어요. 솔직히 한의사이면서 동시에 의사로서도 기초의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 주류라고 말 할 순 없어요. 솔직히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골라서 택한 거죠."
이런 민 교수에게 요즘 가장 안타까운 일은 의사-한의사 간의 영역을 둘러싼 다툼이다.
"제 독특한 이력 때문에 의사협회나 한의사협회에서 항상 자신들의 의견을 들어달라고 연락이 오는데 바쁘기도 했지만 전 양쪽 모두 실망스러워요. 의사-한의사 자신들에게는 엄청난 사안들이지만 환자들에게는 밥그릇 싸움으로 비쳐질 수 있어요. 지성인답게 다툼은 버리고 서로 간 긴밀하게 협의해야 해요."
제 2의 인생, 봉사하는 마음으로
"실패하는 자 용서해도, 도전하지 않는 자 용서하지 않는다."
바로 민 교수의 좌우명이다. 그는 후배의사들에게 '돈벌이'가 아닌 '연구자'로서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히포크라테스 선서에도 나와 있듯이 환자의 건강을 가장 우선으로 배려하는 이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좋은 의사가 되려면 의사윤리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해요. 이를 망각하고 돈벌이에만 치중해서는 안돼요. 의사도 그렇지만 한의사들도 마찬가지다. 보약만 팔려고 해서는 안 되고, 진정한 의사의 사명인 국민 건강을 위해 노력해야 해요."
의사로서 임상의만이 아닌 연구자로서 삶도 매력적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경희의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고별강연을 하면서 머릿속에 45년 의사생활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어요. 일반 의사들처럼 개원해 환자들을 직접 상대하지 않았지만 연구자로서의 삶도 신경생리학 등을 연구하며 해외 유명 학술지에 논문이 게재되는 등 충분히 보람된 의사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해요."
은퇴까지 1개월. 지금 민 교수의 머릿속은 자신의 정년퇴임 기념 책 집필로 가득 차 있어야 하지만 그 한 구석에는 바빠서 못했던 기획이 가득하다. 무엇보다 그는 은퇴 후에도 24년 지도교수로 활동해온 봉사 동아리 활동을 계속하는 한편, 미처 마무리 못한 연구를 비롯한 바쁜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경희대에는 의료봉사단체로 원더스(WONDERS)라는 동아리가 있어요. 이는 경희대 의대(Western), 한의대(Oriental), 간호대(Nursing), 치대(Dental) 사람들을 일컫는 것으로 전국에 동아리 OB회원만 500여명 가까이 됩답니다. 지도교수로 24년 지내왔는데 은퇴 후에도 의료봉사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칠 생각이에요."
이 모든 직함들은 경희의대 생리학교실 민병일 교수가 역임했거나 맡고 있는 이력들이다.
의사로서 바쁘게 살아온 민 교수가 최근에는 제 2의 인생설계를 위해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오늘 8월 교수직 퇴임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경희의대생들과 한의대생, 의료원 직원들을 대상으로 고별강연을 마치고 요즘에는 그동안 교수로서의 생활을 정리하는 책을 만드는데 정신없어요. 퇴직 후에 일은 퇴직 후에 생각하렵니다."
한의사면서 동시에 의사로, 거기에 의대 교수라는 직함을 가슴에 달고 국내 의학발전을 위해 힘써왔던 민 교수. 메디칼타임즈는 그의 굴곡 깊었던 45년 의사생활 동안 느꼈던 소회를 들어봤다.
국내 복수면허자 의대교수 1호, 쉽지 않았던 '외길인생'
민 교수는 국내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국내 최초 복수면허자 의대교수다. 더구나 최근 의사-한의사 간 영역을 둘러싼 다툼을 생각하면 더욱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민 교수는 경희한의대를 졸업한 뒤 침의 마취 및 통증완화를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싶어 다시 경희의대를 진학했다고 설명했다.
"사실 한의대를 졸업 한 후 의대를 진학한 이유는 침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의대를 진학했는데 졸업 후 국내에서 보다는 일본에서 더욱 심층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는 소식에 일본으로 유학을 가게 됐죠."
그는 다시 일본 큐슈대학원 의학연구과에 진학 한 뒤 의학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다시 경희의대와 한의대 교수로 재직하는 동시에 대한스트레스학회와 대한동서의학회를 창립하고, 대한생리학회장을 역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의사로서 2011 세계정신신체의학 학술대회 조직위원장을 맡아 행사를 진두지휘한 것이 제 인생에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어요. 솔직히 한의사이면서 동시에 의사로서도 기초의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 주류라고 말 할 순 없어요. 솔직히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골라서 택한 거죠."
이런 민 교수에게 요즘 가장 안타까운 일은 의사-한의사 간의 영역을 둘러싼 다툼이다.
"제 독특한 이력 때문에 의사협회나 한의사협회에서 항상 자신들의 의견을 들어달라고 연락이 오는데 바쁘기도 했지만 전 양쪽 모두 실망스러워요. 의사-한의사 자신들에게는 엄청난 사안들이지만 환자들에게는 밥그릇 싸움으로 비쳐질 수 있어요. 지성인답게 다툼은 버리고 서로 간 긴밀하게 협의해야 해요."
제 2의 인생, 봉사하는 마음으로
"실패하는 자 용서해도, 도전하지 않는 자 용서하지 않는다."
바로 민 교수의 좌우명이다. 그는 후배의사들에게 '돈벌이'가 아닌 '연구자'로서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히포크라테스 선서에도 나와 있듯이 환자의 건강을 가장 우선으로 배려하는 이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좋은 의사가 되려면 의사윤리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해요. 이를 망각하고 돈벌이에만 치중해서는 안돼요. 의사도 그렇지만 한의사들도 마찬가지다. 보약만 팔려고 해서는 안 되고, 진정한 의사의 사명인 국민 건강을 위해 노력해야 해요."
의사로서 임상의만이 아닌 연구자로서 삶도 매력적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경희의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고별강연을 하면서 머릿속에 45년 의사생활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어요. 일반 의사들처럼 개원해 환자들을 직접 상대하지 않았지만 연구자로서의 삶도 신경생리학 등을 연구하며 해외 유명 학술지에 논문이 게재되는 등 충분히 보람된 의사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해요."
은퇴까지 1개월. 지금 민 교수의 머릿속은 자신의 정년퇴임 기념 책 집필로 가득 차 있어야 하지만 그 한 구석에는 바빠서 못했던 기획이 가득하다. 무엇보다 그는 은퇴 후에도 24년 지도교수로 활동해온 봉사 동아리 활동을 계속하는 한편, 미처 마무리 못한 연구를 비롯한 바쁜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경희대에는 의료봉사단체로 원더스(WONDERS)라는 동아리가 있어요. 이는 경희대 의대(Western), 한의대(Oriental), 간호대(Nursing), 치대(Dental) 사람들을 일컫는 것으로 전국에 동아리 OB회원만 500여명 가까이 됩답니다. 지도교수로 24년 지내왔는데 은퇴 후에도 의료봉사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칠 생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