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를 필요로 하는 분야가 점점 더 늘고 있습니다. 의사들이 지금처럼 임상에만 목을 매서는 발전할 수가 없어요. 연세의대가 교육 시스템을 과감히 혁신하고 나선 것은 바로 이 이유 때문입니다."

연세대 의과대학의 수장으로 취임한 이병석 신임 학장은 교육 시스템 개편의 이유를 이같이 요약했다. 후배들이 보다 많은 분야로 뻗어갈 수 있도록 다양한 길을 열어주겠다는 목표다.

이 학장은 29일 메디칼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바야흐로 모든 분야에서 융합이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며 "의사들도 임상에만 치중해서는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대다수 의대들이 의사 국가고시 합격율에 매몰돼 있는 것도 큰 문제"라며 "대학 본연의 역할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볼 시점이 왔다"고 강조했다.

연세의대가 국내 의대 중 최초로 학점제를 없애는 파격적인 시도를 감행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미 국내에서 손꼽히는 수재들을 줄세워 평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연세의대는 지난해부터 학생들의 성적을 PASS 혹은 Non-pass만 구분해 채점하고 있다. 의사가 되는데 필요한 지식을 제대로 배웠는지만 평가를 내리겠다는 의도다.

이병석 학장은 "의사가 될 수 있는 최소한의 지식을 갖췄는지가 중요하지, 얼마나 더 외웠느냐를 평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오히려 의사로서 어떠한 활동을 펼쳐나갈 것인지가 중요한 지표"라고 설명했다.

최근 의대생들의 선택 실습을 확대한 것도 같은 이유다. 의사 면허를 취득하고 당연히 전문의 과정을 밟는 한가지 트랙에서 벗어나 의학도로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길을 열어보라는 배려다.

이로 인해 연세의대는 의학전문기자로 활동하는 언론계는 물론, 글로벌 제약회사와 해외 연구기관 등에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선택 실습과정을 크게 늘렸다.

이병석 학장은 "의학이 필요한 분야라면 어느 곳이든 선택 실습 과정을 신설해 의학도로서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는 초석을 제공하려 한다"며 "더 배울 시간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실습기간도 탄력적으로 늘려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육 전담 교수제 또한 같은 맥락에서 추진되는 방안이다. 교수들 또한 진료와 연구에만 매몰되지 말고 교육자로서 학생들과 호흡하며 길잡이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연세의대는 우선 12명의 교수들이 참여하는 러닝 커미티를 구성했다. 4개 분야에 각 3명의 교수가 40명의 학생들을 맡아 매일 학습 모니터링은 물론 상담을 하고 있다.

조만간 이를 발전시켜 교육 전담 교수제를 만들고 진료와 연구, 교육 등 3개 교수 트랙을 구성하겠다는 것이 이 학장의 복안.

이 학장은 "교육 전담 교수제는 이미 30년전부터 계속해서 화두로 제기됐던 사안"이라며 "하지만 급격하게 병상을 증축하던 우리나라 현실과의 괴리로 논의가 진행되지 못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교육 분야는 진료, 연구와 달리 인센티브와 평가가 어렵다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연세의대는 학생 교육을 위한 교육학 수업을 이수하고 평가를 진행해 학생 교육을 할 수 있는 교수를 자체 선발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병석 학장은 "교육 전담 교수의 진입장벽을 높이고 이에 대한 확실한 보상을 하는 것이 지금 생각하고 있는 방안"이라며 "현재 이에 대한 검토작업이 진행중인 만큼 내년 3월 경에는 교수 트랙제가 완성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또한 그는 "학생들은 보다 많은 꿈을 꾸고 교수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뒷받침 하는 것이 바로 대학의 역할"이라며 "국시합격률에 연연하지 않고 학생들이 의학도로서 보다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그동안 굳어진 모든 관행들을 개선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