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수련병원 '이중 당직표' 단독 입수…전공의 "자괴감에 더 힘들어"
|기획| 서류상에만 존재하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책'정부가 수련환경 개선책 일환으로 전국 수련병원의 수련환경 파악에 나선 가운데 수도권에 위치한 A수련병원에 이중 당직표가 돌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충격을 주고 있다.
복지부가 전공의 주 80시간 근무 등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안을 마련, 이행 상황을 조사해 발표하고 위반한 수련병원에 대해 패널티를 주겠다고 발표했지만 일선 전공의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서류상으로는 지침에 따라 잘 운영이 되고 있는 것처럼 작성돼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메디칼타임즈>는 수련병원의 실태를 긴급 점검해봤다. [편집자주]
상> 현실과 따로 노는 전공의 당직표
하> 전공의 월급봉투 줄이는 편법 당직수당
최근 익명의 제보자는 "복지부가 실시하는 수련환경 실태 조사는 허구"라면서 '메디칼 타임즈'에 이중당직표의 실체를 공개했다.
의국에서 만난 그가 펼친 당직파일에는 대외적으로 제출하는 가짜 당직표와 함께 그 뒤에 진짜 당직표가 숨어있었다.
병원협회 등 외부에 공식적으로 제출한 안과의 가짜 당직표에는 수련규정에 맞게 전공의 당직이 배정돼 있었다.
하지만 가짜 당직표 뒤에 이름도 필요없이 '성'만 표기해 둔 쪽지가 나왔다. 전공의들끼리만 보는 '진짜 당직표'였다.
여기에는 전공의 1년차 이모 씨와 2년차 김모 씨가 번갈아 가며 당직을 서고 있었다.
앞서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안에서 제시했던 주당 수련시간 80시간 초과 금지, 연속 수련시간 36시간 금지, 당직일수 최대 3일, 수련휴식시간 최소 10시간, 휴일 주당 최소 1일(24시간) 규정은 무의미했다.
신경외과도 상황은 비슷했다.
가짜 당직표에는 1년차부터 4년차가 돌아가면서 당직을 서는 것으로 돼 있었지만, 실상은 달랐다.
1년차 박모 전공의가 토요일을 제외하고 모두 당직근무를 했다. 1년차 당직을 서면 2년차와 3년차는 돌아가며 소위 말하는 '백당직(퇴근하지 않고 당직실에서 대기상태로 서는 근무)'을 서는 식이다.
특히 신경외과는 각 연차 당 전공의가 한명에 불과해 한명만 빠져도 타격이 크다.
"만약 단 한명 뿐인 1년차가 힘들다고 도망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1초만에 답이 돌아왔다. "잡아와야죠. 하하. 웃기죠? 하지만 그게 현실이랍니다. 많이들 도망가요. 하지만 어르고 달래서 데려오죠. 어떻게 하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답이 없다"
실제로 신경과에는 1년차가 없다. 얼마 전 도망가서 결국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탓에 3년차 전공의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당직을 서고 있었다.
하지만 가짜 당직표에는 전공의 시험 준비로 병원에 나오지도 않는 4년차부터 콜 한번 한적 없는 교수 이름이 올라와있었다. 실상과는 달리 당직표는 주 80시간 근무 시스템이 잘 정착된 완벽한 병원이었다.
피부과는 대외적으로 제출할 때만 쓰는 가짜 당직표만 존재한다. 진짜 당직표는 없었다.
'그나마 잘 당직표대로 잘 지켜지는 것인가'라고 생각하던 찰나 기막힌 답이 돌아왔다.
"피부과는 당직표가 필요 없어요. 어차피 전공의 1년차인 한OO가 365일, 24시간 당직이니까요."
A수련병원 당직표에 드러난 수련실태는 충격적이었다. 복지부와 병원협회, 대전협이 수련환경을 개선하자며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수련환경 개선안이 무색했다.
"과거와 달라진 것은 없어요. 오히려 대외 제출용 당직표를 만드느라 진땀을 빼죠. 이미 병원에 없는 4년차도 넣어야 하고 교수 이름도 채워가며 겨우 겨우 만드는 거죠. 그 결과 현실과는 무관한 서류상으로 완벽한 당직표가 만들어집니다."
익명의 제보자는 이 같이 말하며 "쪽잠을 잘 시간을 쪼개서 말도 안되는 당직표를 짜고 있는 자신을 볼 때마다 자괴감을 느낀다"면서 "스스로 뭐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안…달라진 건 없다"
그의 당직표 스케줄에는 오늘 오프(off)로 표기돼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도 당직을 서야한다.
그를 더 지치게 하는 것은 당직표에는 나타나지 않는 낮 근무.
"복지부에선 당직표만 보고 준 80시간이 잘 지켜지고 있다고 생각하겠죠? 사실 그 전날 당직근무와 무관하게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낮 근무를 서고 있는데 말이죠."
그에 따르면 당직은 옵션일 뿐 전날 당직을 섰더라도 다음날 낮 근무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당직표만 봐서는 주 80시간이 채 안됐지만 현실에선 당직에 낮 근무까지 포함해 주 130시간 이상씩 일했다. 그에게 '수련시간 주 80시간 제한'은 허공의 메아리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대전협 송명제 회장은 "상당수 전공의들에게 수련환경 개선안은 의미없는 외침"이라면서 "아직도 대부분의 전공의는 365일 병원을 떠나지 않으며 병원에서 살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이어 "현재의 의료수준이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전공의들이 (집에 못가고)병원에서 살기 때문"이라면서 "더 이상의 젊은 의사의 희생은 없어야한다"고 말했다.
송 회장은 현실적인 해법으로 병원이 전공의 인력 감축에 따른 추가 인력을 채용할 수 있는 금전적인 비용을 지원해주는 방안을 제시했다.
실제로 앞서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관련 의정협의에서 정부가 전공의 주 80시간 수련시간 축소에 따른 의사인력 채용을 위해 정부 차원의 금전적인 지원을 약속한 바 있다.
송 회장은 "의정협의에서 정부가 밝혔듯이 오는 12월까지 전공의 수련시간 감축에 따른 지원 방안을 내놔야할 것"이라면서 "정부도 말로만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안을 말할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가능하도록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임을기 과장(의료자원정책과)은 앞서 정부가 지원 방안을 약속한 것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정부뿐만 아니라 병원도 함께 고통을 감뇌해야한다고 했다.
임을기 과장은 "오는 12월까지 보상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각 병원별로 수련환경 개선 전후 어떻게 달라졌는지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면서 "데이터가 모이는 데로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도 일부 책임이 있지만 병원은 손해 안보겠다는 식은 곤란하다"면서 "전공의 또한 저년차만 당직을 세울 게 아니라 3~4년차도 맡는 등 서로 노력해야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