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의료기기를 슈퍼에서 팔게 하시죠"

김명성
발행날짜: 2015-01-14 08:10:55
  • 칼럼성남 김안과의원 김명성 원장

요즘 의사들이 병원에서 사용하는 현대의료기기를 한의사들도 쓰게 해 달라고 아우성이다. 한 때는 차별화하겠다고 양의사로 부르던 한의사들이 이제는 같은 의사라고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해야겠단다. (의사들은 동의보감을 전혀 배우지 않고 환자치료에도 사용하지 않으므로 공통점이 아무것도 없고 단 하나 뒷 글자가 '의사'라는 것만 같다. 그러면 '장의사'도 뒤에 두 글자가 '의사'로 같은데, 참 난감한 해석이다.)

또 그 근거로 2013년 12월 한의사의 안과 의료기기 사용과 관련된 헌재판결을 내세운다. 안과의사는 쏙 빼고 한의사와 복지부의 자문만 받아 내린 판결이다. 표면적으로는 헌재의 법리해석이지만 그 자문내용에 한의사 의견만 들어있으니 한의사들의 주장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특히 20여년 경력의 안과전문의로서 처음 듣는 '녹풍'이라는 한방의 질병이 '녹내장'과 같다고 해서 관련 자료를 찾아봤다.

동의보감에서 녹풍은 '처음에는 머리가 핑핑 돌다가 이마의 양 모서리가 서로 맞당기며 눈동자에서 콧속까지 다 아프고 혹 눈앞에 벌거면서 흰 꽃 같은 것이 나타나는 것이다. 간이 열을 받으면 먼저 왼쪽 눈에 병이 생기고 폐가 열을 받으면 먼저 오른쪽 눈에 병이 생기며 간과 폐가 동시에 병들면 양쪽 눈을 동시에 앓는다'고 설명했다.

상기 내용에 눈을 씻고 찾아봐도 녹내장이나 안압에 대한 내용이 없다. 어느 안과의사도 녹풍의 증상에 해당하는 질환을 모르며, 전 세계 어느 나라 안과 책에도 없는 이야기다.

한방에서 녹풍은 눈의 색깔변화로 알 수 있고 원인이 간과 폐가 열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동의보감에서도 눈에는 색깔로 증상이 나타나고 원인은 간과 폐라고 하였으니 꼭 검사를 해야 한다면 간과 폐에 대해 검사를 해야 이치에 맞다. '녹풍'과 '녹내장'의 공통점이라고는 첫 글자가 '녹'자라는 것밖에 없다. 간에 이상이 있어 생기는 질환이면 간 검사를 해야지 안압측정기가 왜 필요한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자동차 계기판에 브레이크나 엔진의 이상신호가 들어오면 엔진이나 브레이크를 검사하고 고쳐야한다. 녹풍에 안압검사를 하는 것은 자동차의 고장신호가 들어온 부분은 내버려 두고 계기판을 검사하는 꼴이다.

무슨 근거라고 내세우는 것이 '의사'라는 두 글자가 같다거나 '녹'자가 같은 질병이기에 같은 것이라고 하니 과학적, 논리적은 다른 나라 이야기고 끝말잇기 같은 애들 놀이만 그 근거가 될 뿐이다.

관료들과 정치인들이 이걸 규제철폐의 근거라고 하니 할 말이 없다. 현대사회는 거의 모든 직종이 국민의 생활과 건강에 관련되어있으므로 한의사들에게만 그 사용을 허락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단언컨대 한의사나 일반인이나 의료기기사용으로 인한 폐해의 정도는 똑같다는 것이 모든 의사들의 생각이다. 경제가 어려운 이 시기에 모든 직종의 수입이 늘도록 차라리 의료기기 판매와 사용을 전면개방하고 슈퍼에서도 의료기기를 판매하도록 하라.

간디의 '끝내 나라가 망하는 일곱 가지 경고' 중 그 첫째가 '원칙 없는 정부는 망한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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