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결정족수 고질병에 혁신안 줄줄이 폐기…"과거와 다른게 뭐냐"
"최초의 직선 대의원들이 모인 총회다."
"회원들의 민심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소문난 잔치였지만 먹을 것이 없었다. 제67차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가 개최한 정기대의원총회를 두고 하는 말이다.
첫 직선 대의원들이 모인 총회 자리. 기대감을 고조시켰지만 정작 회원 투표제 등 민감한 정관개정안은 손도 대지 못하고 폐기 처분했다. 고질병인 의결정족수 문제가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26일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는 더케이호텔에서 제67차 정기대의원총회를 개최하고 ▲정관 및 규정 개정의 건 ▲2014년도 결산 심의 ▲부의안건 심의 ▲의장, 부의장, 부회장, 감사 선거 등을 진행했다.
이날 총회가 관심을 끈 이유는 첫 직선 대의원들이 참석한다는 상징성 때문. 연임에 성공한 추무진 집행부마저 회원 투표제 등 과거 대의원회가 부결시킨 '혁신 안건'을 다시 들고나온 만큼 이들 안건의 통과 여부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새롭게 뽑힌 직선 대의원들의 민심이 고스란히 제67차 정기총회에 나타난다는 점에서 집행부가 제시한 혁신안건의 통과 여부가 내달 시작될 39대 추무진 호의 순항 여부를 결정짓는 키포인트기 때문이다.
앞서 추무진 회장은 "중앙대의원 선출을 직선제로 하는 것이 의료계 변화의 첫 걸음이라고 생각한다"며 "회원의 뜻이 회무에 직접 반영되는 회원 투표제 역시 의협 정관에 명시하도록 정관 개정안을 제안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집행부는 총회 부의안건으로 ▲회원 투표제 ▲KMA Policy 도입 ▲의협 임원의 대의원 겸직 금지 ▲의사윤리강령 개정 등의 안건을 제안했다.
부산 대의원들도 올해 초 대통합혁신특별위원회가 제안했다가 임시총회에서 부결된 사항을 다시 제안하며 힘을 보탰다.
부산 대의원회는 회원투표 근거 조항 신설과 의협 대의원회 의장 불신임제 신설, 대의원회 운영위원회 권한 축소, 각 시도의사회장의 대의원 겸직 제한 및 협회의 이사로서 전체 이사회를 구성 안건을 제안했다.
또다시 터진 고질병, '의결정족수'
반면 25일 열린 법령 및 정관 심의분과위원회(법정관심의위)는 투표의 남발 위험과 투표 안건 대상의 불명확성 등을 근거로 회원투표제의 도입을 우려했다. 개정안은 찬성 18명, 반대 23명의 표결을 통해 곧바로 폐기됐다.
부산 대의원들이 제안한 의장 불신임제 신설 등의 안건도 제한된 시간과 신구조문 대비표가 없다는 이유로 논의조차 못한 채 다음 회기를 기약하게 됐다.
KMA Policy와 비례대의원 책정 기준 명확화, 서면결의 실시 명확화, 국적 관련 선거관리 규정 개정의 건, 협회 임원의 대의원 겸직 금지 개정안이 어렵게 법정관심의위를 통과했지만 복병은 다른 곳에서 나타났다.
막상 본회의가 시작되자 의결정족수에 필요한 대의원의 머리 수가 부족했던 것.
재적 대의원 243명 중 2/3 이상인 162명이 참석해야만 정관개정이 가능하지만 정작 자리를 지키고 있는 대의원의 수는 153명에 불과했다.
심의분과위원회 심의 결과 보고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대의원들의 대열 이탈은 가속화 됐다. 심의 결과 보고 직후인 오후 6시 15분경의 대의원 수는 138명에 그쳤다.
임수흠 신임 의장은 "성원이 안되면 정관개정안 논의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정관개정은 보고를 받는 선에서 끝내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입후보를 거쳐 직선으로 선출된 대의원인 만큼 기존의 대의원과 달리 책임감과 회무에 대한 열성을 보일 것이란 기대를 보기 좋게 깨뜨린 셈. 기존 대의원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행태를 보인 것이다.
KMA Policy가 논의조차 못하고 폐기될 운명에 처하자 보다못한 대의원이 정관 개정이 필요없는 'KMA Policy 위원회'를 신설하자고 제안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의결정족수 미달로 KMA Policy를 버릴 바에야 차라리 일종의 편법으로라도 좋은 취지를 살리자는 고육지책이었다.
이날 대의원들은 중앙윤리위원회 규정 개정과 규제 기요틴과 관련한 결의문을 채택하는 정도에서 '빈손'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모 대의원은 "직선으로 뽑았다고는 하지만 50%만 새로운 얼굴이고 나머지는 기존의 대의원들 그대로다"며 "신참 대의원들은 정관 개정의 프로세스를 잘 모르고, 기존 대의원들은 과거의 프로세스에 집착하고 있는 마당에 혁신을 기대했다면 큰 오산이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