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독감 예방접종 2천명, 1만6천원의 힘

손의식
발행날짜: 2015-10-21 05:15:43
  • 인구보건복지협회 인천지회 산하 가족보건의원을 가다

한 기관에서 하루 독감 예방접종자 수 2000명. 가능할까 싶은 숫자다. 심지어 질병관리본부는 하루 한 기관에서 2000명의 접종이 이뤄진다는 메디칼타임즈 제보를 믿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메디칼타임즈가 방문한 그곳에선 실제로 그만큼 접종이 이뤄지고 있었다

독감 예방접종 시즌을 맞아 예방접종을 받기 위해 동네의원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늘고 있다. 그러나 독감 예방접종 시즌에 가장 바쁜 곳은 개원가보다 보건소와 인구보건복지협회 산하 복지의원이다. 특히 인구보건복지협회 산하 복지의원의 경우 주말 하루 평균 접종자 수가 20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메디칼타임즈는 인구보건복지협회 산하 복지의원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독감 예방접종을 받고 접종은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 알아보기 위해 주말 인천시 남동구 간석동에 위치한 인구보건복지협회 인천지회 산하 가족보건의원을 직접 찾았다.

▲주말 오전 간석동의 1차선 도로는 불법 주차된 차들로 가득차 있었다. 주차장이 된 1차선 도로에서 운행 중인 차량은 마주오는 차량을 피해 거북이 주행을 하고 있었다. 주말 오전부터 도로가 이토록 번잡한 이유는 무엇일까.

▲다름아닌 인구보건복지협회 인천지회 산하 가족보건의원에서 실시 중인 독감예방접종 때문이었다.

▲가족보건의원 정문을 들어서자 건물 앞에 두 개의 천막이 있었고 각 천막마다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독감예방접종 예진표를 작성하는 이들이었다.

▲독감예방접종만 받으려면 지하로 내려가라는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가족보건의원 관계자는 독감예방접종을 받기 위해 지하로 내려가려면 건물 입구로 들어가지 말고 건물 옆 지하계단으로 가야한다며 줄부터 서라고 안내했다.

▲지하로 내려가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이들을 본 순간 기자는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백명에 달하는 이들이 독감예방접종을 위해 줄을 서고 있었다. 마치 어린이날 놀이동산에서나 봄직한 인파였다. 가족보건의원 관계자는 기자에게 "주말엔 2000여명 정도가 독감예방접종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두명이 간신히 설만큼 좁았다. 계단 끝에는 예진표를 확인하고 체온을 측정하는 직원이 있었다. 이 직원이 예방접종을 경험하기 위해 기자와 동행한 지인의 체온을 측정하자 34.5℃가 나왔다. 지인은 기자에게 "34.5℃가 정상인가? 저체온증 아닌가"라고 물었다. 기자가 직원에게 확인하려 했으나 수없이 많은 접종인파에 밀려 건물 안으로 들어올 수 밖에 없었다.

▲하루 수천명의 접종자를 예진하는 의사는 한명뿐이었다. 의사 옆에는 간호사가 앉아 예진을 돕고 있었다. 기자의 지인은 예진 의사로부터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했다.

▲예진을 마치면 수납 차례. 대화는 거의 없었고 돈을 내거나 카드를 내밀면 말 없이 기계적으로 수납하는 방식이었다. 접종비는 1만 6000원이었다. 개원가에서 실시 중인 독감예방접종의 거의 절반 가격에 불과했다. 그제서야 하루 2000명의 인파가 몰리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수납을 마치면 비로소 접종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접종 대기자 역시 만만치 않게 많았다. 저렴한 접종가를 이유로 대부분 가족 단위로 가족보건의원을 찾고 있었다.

▲드디어 접종 순간. 테이블 위에는 수많은 백신들이 쌓여 있었다. 접종에 걸리는 시간은 10초 정도. 앉자마자 팔을 걷고 소독솜으로 문지른 후 주사. 별다른 대화는 없었다.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를 연상시키는 접종 방식이었다.

▲접종 테이블 옆에는 백신을 보관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스박스가 놓여 있었다. 아이스박스는 먼지와 얼룩으로 가득했으며 옆에는 쓰레통으로 보이는 빈통이 있었다. 지저분한 아이스박스 위에는 '10/17, 大 2000, 小 900'이라는 쪽지가 붙어 있었다. 그날 접종물량인 것 같았다.

▲접종 후 이상반응을 관찰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가족보건의원은 워낙 접종자가 많기 때문에 접종 후 이상반응 관찰에 대한 설명을 일일이 하기 보다는 접종 후 관리사항에 대한 조그만 안내문을 (배포하는 것이 아니라)테이블 위에 비치하고 있었다. 안내문을 꼼꼼히 살펴보는 이들은 드물었다. 안내문은 대부분 쓰레기통으로 향했으며, 바닥에 버려진 것들도 상당수였다.

▲모든 순서를 마치고 계단으로 올라오니 의원 대기실엔 많은 이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이들 중 일부는 4가 독감백신을 접종하려는 이들이었다. 의원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4가 백신은 3만원으로, 별도로 접수해야 한다"고 안내했다. 대기실에는 독감예방접종 외 다른 예방접종 가격 안내문도 눈에 들어왔다. 대상포진 예방접종은 15만 5000원, 폐렴구균 예방접종(PCV13)은 10만원, 수막구균 예방접종은 12만 5000원이었다. 개원가에서 진행하는 예방접종보다 상당히 저렴한 접종가였다.

▲접수부터 접종까지 꽤 많은 시간이 경과됐음에도 밖에는 여전히 접종을 받으러 온 이들의 줄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하루 2천명 접종, 접종원칙 준수는 무리수…효과 장담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가족보건의원의 접종 시스템에 적지 않은 우려를 표했다.

창원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 마상혁 과장.
창원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 마상혁 과장(전 대한소아감염학회 이사, 경남도의사회 메르스대책위원장)은 "백신은 온도에 민감하기 때문에 제대로 보관하는 것이 중요하다. 적절한 온도에 있다가 바로 접종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주사를 제대로 맞았고 이상반응을 제대로 확인했는지 등에 대한 부분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마 과장은 "가족보건의원에서와 같이 백신을 접종했을 때 과연 효과가 있을 지 의문"이라며 "원칙을 지키지 않은 예방접종은 효과를 보장할 수 없다. 표준화된 방법으로 접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족보건의원에서와 같은 접종이 이뤄지는 것은 국가기관이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며 "말도 안 되는 접종방식이다. 가격에 밀려서 원칙을 깬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에게 혜택을 주려면 싸기만 해선 안 된다. 싸더라도 정확하고 원칙을 지켜야 한다"며 "해마다 반복되고 있는 문제를 방치하는 것은 잘못됐다. 민간의료기관에서 이런 식으로 접종하는 것을 정부가 알았다면 가만히 있을 것인지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개원가 역시 저가 독감예방접종의 폐해를 지적했다.

대한의원협회 윤용선 회장.
대한의원협회 윤용선 회장은 "비급여는 가격 할인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개원가 입장에선 의료시장 질서의 파괴가 우려된다"며 "의료시장의 파괴도 문제지만 도떼기 시장처럼 접종했을 때 제대로 된 접종수칙이 이뤄질리가 만무하다는 점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윤용선 회장은 "효과적인 예방접종을 위해 백신 보관은 정말 중요하기 때문에 나름 규정도 까다롭다"며 "그런 걸 지키지 않았을 때 피해는 환자에게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단 개원가의 피해를 떠나 환자를 포함한 전체 국민에게 도움이 될 지 의문"이라며 "싸게 맞는다는 이점은 있겠지만 건강이 담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문제다. 제도적으로나 법적으로 제재를 가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고 강조했다.

질병관리본부 "독감예방접종 사업 관리 주체는 보건소"

질병관리본부는 한 기관에서 하루 2000명이 독감예방접종을 받는다는 사실을 쉽게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질병관리본부 예방접종관리과 관계자는 메디칼타임즈와의 통화에서 "독감 예방접종을 시작할 때 몇 곳의 의료기관을 가서 봤는데 그렇게 많이 몰리진 않았다"며 "하루에 2000명을 접종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어떻게 2000명을 접종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백신을 상온에서 오래 보관하지 않는 이상 효과는 안심해도 된다고 밝혔다.

예방접종관리과 관계자는 "상온에서 오래 지나지 않은 이상 백신의 성분은 변하지 않는다"며 "접종을 위해 꺼내 놓는 것은 백신의 효과를 떨어뜨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독감예방접종의 법적 관리주체는 보건소로 질병관리본부가 민간사업까지 개입할 순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는 "기관에서 조율해야 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접종자를 몇명으로 제한하라는 것은 없다"며 "법적으로 이 사업의 주체나 관리감독은 보건소다. 질병관리본부가 민간에서 하는 일까지 개입할 순 없다"고 말했다.

그는 "NIP는 질병관리본부에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 외 예방접종은 어떻게 하라고 관리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며 "안전을 관리하는 입장에서 접종자를 나눠서 하게끔 하지 못한 건 아쉽지만 왜 이렇게 하지 않았느냐고 (질병관리본부를)책망할 순 없다"고 강조했다.

이상반응에 대한 관찰 역시 크게 문제되지 않는 입장을 보였다.

이 관계자는 "예진을 통해 접종자의 몸 상태가 괜찮으면 접종한다. 용량을 잘못 접종한다거나 백신이 상온에서 24시간 있다던지, 프로그램 상 오류가 있다던가 하면 이상반응이 높다"며 "하지만 접종건수가 많다는 것은 관리가 잘 될까라는 의문이 있을 뿐이다. 사전 예진이 정확하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방접종이 사람의 목숨을 잃게 하는 일은 아니지 않나"라며 "왠만한 이상반응은 48시간 이내 괜찮아진다"고 덧붙였다.

2010~2014년 전체 예방접종 부작용 중 독감 예방접종 부작용 가장 많아

한편, 지난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김현숙 의원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8월 11일까지 예방접종 후 부작용을 호소하는 건이 1698건 발생했으며 부작용으로 인해 사망에 이른 사람도 25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특히 김 의원이 제시한 '최근 5년간 백신별 예방접종 후 이상반응 신고 현황'에 따르면 신종 인플루엔자 백신으로 인한 이상 반응자가 전체의 29.4%인 499건으로 가장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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