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의사의 좌충우돌 생존기…박성우의 '인턴노트'[7]
공포의 동맥혈 체혈
종합병원 인턴이 하는 일은 과마다 무척 다양하다. 수술장 인턴은 어시스턴트라고 하여 보통 '스크럽(scrub) 선다'고 일컫는 수술 보조 역할을 한다. 마취과 인턴은 환자 마취를 보조하고 유지한다.
응급실 인턴은 말 그대로 환자 초진부터 처치까지 일반의가 하는 모든 일을 한다. 하지만 모든 인턴이 공통적으로 수행하고 능숙해야 하는 일이 있다. '병동일'이라고 부르는 기본적인 인턴잡이 그것이다. 특히 채혈이나 소독 드레싱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첫 달 근무가 내과 인턴이다 보니 가장 기본적인 병동일은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되었다. 더욱이 내과 병동 중에서도 호흡기내과 인턴이면 'ABGA'라고 부르는 '동맥혈 채혈'을 많이 하게 되는데 이것은 꽤 부담스러운 인턴잡 중 하나다.
정맥혈 채혈은 피부 바로 밑에 보이는 정맥을 통해 피를 뽑기 때문에 따끔하기만 하다. 특별한 환자들이 아니면 채혈 역시 쉬운 편이다.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사, 임상병리사 모두 정맥혈 채혈이 가능하다. 다년간 수많은 이들을 채혈한 임상병리사들이 초짜 인턴보다 훨씬 능숙하기도 하다.
하지만 동맥혈 채혈은(적어도 내가 수련한 본원에서는) 의사만 하게 되어 있다. 피부보다 깊은 곳에 있는 동맥을 천자(穿刺)하는 것이고 정맥과 달리 응고가 되어 막히면 조직 허혈 및 괴사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이 있어 무조건 의사가 하도록 되어 있다.
동맥혈 채혈은 동맥 내 산소포화도나 산–염기 상태를 보는 검사인데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호흡하여 들이마시는 산소만큼 체내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정보들이 진단이나 치료 결정에 도움이 된다. 동맥혈 채혈에 쓰이는 프리셋(preset)이라 불리는 주사기는 1밀리리터 용량의 가는 주사기로 굵은 바늘보다 오히려 더 아프다고 환자들이 불평했다.
환자마다 표현하는 게 달랐는데 욱신욱신 뼈가 저린 느낌 혹은 저릿저릿 전기가 흐르는 것 같다고 했다. 엄살이 심한 환자는 못으로 팔목을 쑤시는 것 같다고도 했다. 대개 이런 술기들은 학생 때 서로에게 시행하며 실습하는데 그때 경험을 떠올려 보면 헌혈할 때 쓰이는 두꺼운 바늘보다도 더 아팠다.
술기 자체도 피부 밑 혈관이 드러나는 곳을 찌르는 것이 아니라 동맥의 박동하는 위치를 손가락 끝으로 확인하고 주사 바늘을 찔러넣어야 한다. 더군다나 손목을 지나가는 동맥의 굵기 자체가 1~2밀리미터가 채 안 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채혈에 실패한다.
이러한 이유로 환자에게는 제일 아픈 채혈 검사이고 인턴에게는 제일 부담스러운 검사다. 호흡기내과 병동에서는 교수님 회진 전에 동맥혈 채혈 검사 결과가 나와야 해서 환자들은 아침 5시 30분부터 동맥혈 채혈을 해야 한다.
그래서 자고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깨워서 검사를 해야 할 때는 죄송스럽다. 넉살 좋은 할아버지는 이 검사를 새벽부터 하면 잠이 확 달아난다고 웃으며 단박에 성공해서 아침 잠 좀 더 자게 해달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기도 했다.
첫 일주일은 서너 번은 해야 성공적으로 채혈될 정도로 진땀을 뺐다. 그래도 매일 10~20명 정도의 환자를 시행하다 보니 어느 정도 익숙해져 몇몇날은 한 번 만에 채혈을 마칠 때도 있었다. 이런 날은 환자에게나 초짜 인턴에게나 일진이 좋은 날이다.
하루를 시작하는 새벽 채혈이 끝난 후에 주치의들이 추가 채혈 오더를 낼 때가 있다. 그때마다 병실에 들어서면 모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걱정어린 표정으로 '내가 또 피를 뽑혀야 하나'라는 눈길을 보낸다.
호흡기내과 병동 인턴에게는 동맥혈 채혈 검사가 기본인 경우가 많아 흡혈귀 같다는 별명도 익숙하다. 사소하고 우습지만 지날수록 제법 손에 익숙해지면 한 번에 채혈되는 때가 늘어나고 그것이 적잖이 뿌듯하다. 환자들이 아프지 않다고 하면서 선생님 솜씨가 좋다고 하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하루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인계를 해주던 작년도 인턴 선생님, 지금은 내과 전공의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선생님, 시간이 지나면 ABGA도 100퍼센트 성공률인가요?"라고 물어보았다. 대답은 "나중에는 던지면 꽂힌다는 수준까지 도달한다"였다. 아직은 공포의 ABGA이지만 이번 달이 끝날 때까지는 동맥혈 채혈을 많이 하는 인턴인 만큼 '던지면 꽂히는'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음 편히 할 수 있을 정도가 되고 싶다.
<8편에서 계속>
※본문에 나오는 '서젼(surgeon, 외과의)'을 비롯한 기타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저서 '인턴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종합병원 인턴이 하는 일은 과마다 무척 다양하다. 수술장 인턴은 어시스턴트라고 하여 보통 '스크럽(scrub) 선다'고 일컫는 수술 보조 역할을 한다. 마취과 인턴은 환자 마취를 보조하고 유지한다.
응급실 인턴은 말 그대로 환자 초진부터 처치까지 일반의가 하는 모든 일을 한다. 하지만 모든 인턴이 공통적으로 수행하고 능숙해야 하는 일이 있다. '병동일'이라고 부르는 기본적인 인턴잡이 그것이다. 특히 채혈이나 소독 드레싱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첫 달 근무가 내과 인턴이다 보니 가장 기본적인 병동일은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되었다. 더욱이 내과 병동 중에서도 호흡기내과 인턴이면 'ABGA'라고 부르는 '동맥혈 채혈'을 많이 하게 되는데 이것은 꽤 부담스러운 인턴잡 중 하나다.
정맥혈 채혈은 피부 바로 밑에 보이는 정맥을 통해 피를 뽑기 때문에 따끔하기만 하다. 특별한 환자들이 아니면 채혈 역시 쉬운 편이다.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사, 임상병리사 모두 정맥혈 채혈이 가능하다. 다년간 수많은 이들을 채혈한 임상병리사들이 초짜 인턴보다 훨씬 능숙하기도 하다.
하지만 동맥혈 채혈은(적어도 내가 수련한 본원에서는) 의사만 하게 되어 있다. 피부보다 깊은 곳에 있는 동맥을 천자(穿刺)하는 것이고 정맥과 달리 응고가 되어 막히면 조직 허혈 및 괴사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이 있어 무조건 의사가 하도록 되어 있다.
동맥혈 채혈은 동맥 내 산소포화도나 산–염기 상태를 보는 검사인데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호흡하여 들이마시는 산소만큼 체내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정보들이 진단이나 치료 결정에 도움이 된다. 동맥혈 채혈에 쓰이는 프리셋(preset)이라 불리는 주사기는 1밀리리터 용량의 가는 주사기로 굵은 바늘보다 오히려 더 아프다고 환자들이 불평했다.
환자마다 표현하는 게 달랐는데 욱신욱신 뼈가 저린 느낌 혹은 저릿저릿 전기가 흐르는 것 같다고 했다. 엄살이 심한 환자는 못으로 팔목을 쑤시는 것 같다고도 했다. 대개 이런 술기들은 학생 때 서로에게 시행하며 실습하는데 그때 경험을 떠올려 보면 헌혈할 때 쓰이는 두꺼운 바늘보다도 더 아팠다.
술기 자체도 피부 밑 혈관이 드러나는 곳을 찌르는 것이 아니라 동맥의 박동하는 위치를 손가락 끝으로 확인하고 주사 바늘을 찔러넣어야 한다. 더군다나 손목을 지나가는 동맥의 굵기 자체가 1~2밀리미터가 채 안 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채혈에 실패한다.
이러한 이유로 환자에게는 제일 아픈 채혈 검사이고 인턴에게는 제일 부담스러운 검사다. 호흡기내과 병동에서는 교수님 회진 전에 동맥혈 채혈 검사 결과가 나와야 해서 환자들은 아침 5시 30분부터 동맥혈 채혈을 해야 한다.
그래서 자고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깨워서 검사를 해야 할 때는 죄송스럽다. 넉살 좋은 할아버지는 이 검사를 새벽부터 하면 잠이 확 달아난다고 웃으며 단박에 성공해서 아침 잠 좀 더 자게 해달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기도 했다.
첫 일주일은 서너 번은 해야 성공적으로 채혈될 정도로 진땀을 뺐다. 그래도 매일 10~20명 정도의 환자를 시행하다 보니 어느 정도 익숙해져 몇몇날은 한 번 만에 채혈을 마칠 때도 있었다. 이런 날은 환자에게나 초짜 인턴에게나 일진이 좋은 날이다.
하루를 시작하는 새벽 채혈이 끝난 후에 주치의들이 추가 채혈 오더를 낼 때가 있다. 그때마다 병실에 들어서면 모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걱정어린 표정으로 '내가 또 피를 뽑혀야 하나'라는 눈길을 보낸다.
호흡기내과 병동 인턴에게는 동맥혈 채혈 검사가 기본인 경우가 많아 흡혈귀 같다는 별명도 익숙하다. 사소하고 우습지만 지날수록 제법 손에 익숙해지면 한 번에 채혈되는 때가 늘어나고 그것이 적잖이 뿌듯하다. 환자들이 아프지 않다고 하면서 선생님 솜씨가 좋다고 하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하루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인계를 해주던 작년도 인턴 선생님, 지금은 내과 전공의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선생님, 시간이 지나면 ABGA도 100퍼센트 성공률인가요?"라고 물어보았다. 대답은 "나중에는 던지면 꽂힌다는 수준까지 도달한다"였다. 아직은 공포의 ABGA이지만 이번 달이 끝날 때까지는 동맥혈 채혈을 많이 하는 인턴인 만큼 '던지면 꽂히는'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음 편히 할 수 있을 정도가 되고 싶다.
<8편에서 계속>
※본문에 나오는 '서젼(surgeon, 외과의)'을 비롯한 기타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저서 '인턴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