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의사의 좌충우돌 생존기…박성우의 '인턴노트'[14]
첫 달이 끝나다
월급이 들어왔다. 사회에 나와 일해서 받는 첫 월급이다. 동시에 첫 달 인턴근무도 끝났다.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과 토요일은 인턴들 사이에서 분주한 날이다. 지방으로 파견 가는 인턴들은 전날 미리 짐을 싸서 지방으로 내려간다. 동시에 토요일 오전에는 지방으로 파견 가 있던 인턴들이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한동안 인턴 라운지에서 매일 보던 얼굴 중 몇몇은 이번 달에도 볼 수 있고 몇몇은 저 멀리 홍천, 강릉, 울산, 정읍, 보령 등지로 내려갔다. 나와 같은 방을 쓰는 룸메이트 2명은 모두 지방 파견이라 4월은 나 혼자 방을 써야 했다.
토요일 오전이 되니 다들 첫 인계에 분주했다. 자기가 맡던 과의 인계를 내어주고 다음 달 돌게 된 과의 인계를 받아가는 과정에 또다시 새로운 얼굴들을 만났다. 나는 내과에서 내과로 옮겨가는 일정이라 특별히 인계를 받을 사항이 없었다. 10분 만에 모든 인계가 끝나 편하게 호흡기내과에서의 마지막 토요일 오전을 맞이했다.
내가 맡았던 환자들도 모두 퇴원했다. 얼마 전까지 환자복을 입고 있던 환자들이 평상복을 입고 가족들과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생소했다.
"할머니 이제 퇴원하시네요. 집 가셔서 맛있는 거 많이 드시고 이제는 병원에 오시면 안 돼요." 너스레를 떨면 할머니는 수줍게 웃으며 "그동안 나 때문에 욕봤소"라고 말씀하신다.
보호자의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라는 말을 듣고는 집으로 향하는 모습을 배웅한다. 의사들도 일 끝나고 퇴근하면 기분이 좋은데 며칠씩 입원해 있다 퇴원하는 환자들은 얼마나 기분 좋을까.
토요일 오전 일과는 제법 조용한 편이다. 주중에 매일 있는 의국 컨퍼런스도 없고 교수님 회진도 한 시간 늦은 8시에 시작한다. 모든 요일 중에서 제일 느긋한 날이다. 마지막 회진을 돌고서 한 달 동안 여러모로 지도해주셨던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인턴 선생님 오늘이 마지막이지? 잘했고 한 달 동안 고생 많았어. 일하는 기술만 늘면 자신이 스스로 잘하는지 못하는지 몰라. 자꾸 배우려고 하고 물어보고 적극적으로 해야 돼. 다음 달도 자주 물어봐. 인턴이라고 시키는 일만 하려고 하지 말고. A야 A. 잘했어."
평상시에는 말씀이 많은 편이 아니셨는데 마지막에 잘했다는 의미로 A턴 이라고 해주셨다.
인턴 성적은 크게 A, B, C로 나뉘는데 A를 받은 인턴은 'A턴'이라 부르고 성적이 좋지 못해 C를 받은 인턴은 'C턴'이라고 한다. 꾸지람도 칭찬도 크게 안 하시는 교수님이신데 A라고 말씀해주신 것을 보면 큰 칭찬이었다.
교수님은 환자를 직접 만나기 전 늘 공부하고 확실히 알고 진료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학생 때처럼 공부할 때는 많지 않겠지만 필요할 때마다, 그리고 기억이 가물가물할 때는 늘 찾아보고 물어야 한다 했다.
대형 종합병원처럼 경험이 풍부한 교수님이 많은 곳에서는 뒤에서 봐주고 시키는 대로 하기 때문에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 의사 스스로 지식이 없으면 환자 앞에서 자신 없어 보일 수밖에 없다. 정든 호흡기 내과를 마치고 떠나려니 서운하기도 했지만 교수님 덕분에 뿌듯했다.
주치의를 하면서 내 이름 앞의 환자도 보았다. 모두 즐겁게 일하면서 뵐 수 있었고 마지막엔 교수님에게 인정을 받았으니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하고 간다는 느낌이다. 하루에 10~40건 씩 시행하는 공포의 동맥혈 채혈, 혹여 한두 번 채혈이 안 된다 해도 어떻게든 내 선에서 끝낼 수 있다는 자심감도 생겼다. 환자를 돌본다는 의미를 조금이나마 경험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15편에서 계속>
※본문에 나오는 '서젼(surgeon, 외과의)'을 비롯한 기타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저서 '인턴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월급이 들어왔다. 사회에 나와 일해서 받는 첫 월급이다. 동시에 첫 달 인턴근무도 끝났다.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과 토요일은 인턴들 사이에서 분주한 날이다. 지방으로 파견 가는 인턴들은 전날 미리 짐을 싸서 지방으로 내려간다. 동시에 토요일 오전에는 지방으로 파견 가 있던 인턴들이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한동안 인턴 라운지에서 매일 보던 얼굴 중 몇몇은 이번 달에도 볼 수 있고 몇몇은 저 멀리 홍천, 강릉, 울산, 정읍, 보령 등지로 내려갔다. 나와 같은 방을 쓰는 룸메이트 2명은 모두 지방 파견이라 4월은 나 혼자 방을 써야 했다.
토요일 오전이 되니 다들 첫 인계에 분주했다. 자기가 맡던 과의 인계를 내어주고 다음 달 돌게 된 과의 인계를 받아가는 과정에 또다시 새로운 얼굴들을 만났다. 나는 내과에서 내과로 옮겨가는 일정이라 특별히 인계를 받을 사항이 없었다. 10분 만에 모든 인계가 끝나 편하게 호흡기내과에서의 마지막 토요일 오전을 맞이했다.
내가 맡았던 환자들도 모두 퇴원했다. 얼마 전까지 환자복을 입고 있던 환자들이 평상복을 입고 가족들과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생소했다.
"할머니 이제 퇴원하시네요. 집 가셔서 맛있는 거 많이 드시고 이제는 병원에 오시면 안 돼요." 너스레를 떨면 할머니는 수줍게 웃으며 "그동안 나 때문에 욕봤소"라고 말씀하신다.
보호자의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라는 말을 듣고는 집으로 향하는 모습을 배웅한다. 의사들도 일 끝나고 퇴근하면 기분이 좋은데 며칠씩 입원해 있다 퇴원하는 환자들은 얼마나 기분 좋을까.
토요일 오전 일과는 제법 조용한 편이다. 주중에 매일 있는 의국 컨퍼런스도 없고 교수님 회진도 한 시간 늦은 8시에 시작한다. 모든 요일 중에서 제일 느긋한 날이다. 마지막 회진을 돌고서 한 달 동안 여러모로 지도해주셨던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인턴 선생님 오늘이 마지막이지? 잘했고 한 달 동안 고생 많았어. 일하는 기술만 늘면 자신이 스스로 잘하는지 못하는지 몰라. 자꾸 배우려고 하고 물어보고 적극적으로 해야 돼. 다음 달도 자주 물어봐. 인턴이라고 시키는 일만 하려고 하지 말고. A야 A. 잘했어."
평상시에는 말씀이 많은 편이 아니셨는데 마지막에 잘했다는 의미로 A턴 이라고 해주셨다.
인턴 성적은 크게 A, B, C로 나뉘는데 A를 받은 인턴은 'A턴'이라 부르고 성적이 좋지 못해 C를 받은 인턴은 'C턴'이라고 한다. 꾸지람도 칭찬도 크게 안 하시는 교수님이신데 A라고 말씀해주신 것을 보면 큰 칭찬이었다.
교수님은 환자를 직접 만나기 전 늘 공부하고 확실히 알고 진료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학생 때처럼 공부할 때는 많지 않겠지만 필요할 때마다, 그리고 기억이 가물가물할 때는 늘 찾아보고 물어야 한다 했다.
대형 종합병원처럼 경험이 풍부한 교수님이 많은 곳에서는 뒤에서 봐주고 시키는 대로 하기 때문에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 의사 스스로 지식이 없으면 환자 앞에서 자신 없어 보일 수밖에 없다. 정든 호흡기 내과를 마치고 떠나려니 서운하기도 했지만 교수님 덕분에 뿌듯했다.
주치의를 하면서 내 이름 앞의 환자도 보았다. 모두 즐겁게 일하면서 뵐 수 있었고 마지막엔 교수님에게 인정을 받았으니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하고 간다는 느낌이다. 하루에 10~40건 씩 시행하는 공포의 동맥혈 채혈, 혹여 한두 번 채혈이 안 된다 해도 어떻게든 내 선에서 끝낼 수 있다는 자심감도 생겼다. 환자를 돌본다는 의미를 조금이나마 경험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15편에서 계속>
※본문에 나오는 '서젼(surgeon, 외과의)'을 비롯한 기타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저서 '인턴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