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의사의 좌충우돌 생존기…박성우의 '인턴노트'[25]
의느님들의 걱정
2011년 한국 사회는 젊은이들에게 대학교를 못 가도, 졸업을 해도 문제였다. 남과 비교하고 비교당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세상이라 청춘들은 눈칫밥을 먹고 방황했다.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했지만 그런 생각은 실천되지 못했다.
의사가 되고 나니 친구들이 으레 '의느님'이라고 놀리면서 고민 없겠다고, 이제 남부럽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새내기 의사들도 눈치를 보고 남과 비교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어떤 과가 잘 나가고 어떤 과는 전망이 안 좋다는 비교가 그러했다. 인턴을 마치고 무슨 전공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그러했다. 힘든 생활에 지치다 보면 바로 눈앞의 일에 대하여 '왜 같은 인턴인데 나만 힘든가' 하는 생각으로 내 일정을 저주하고 다른 인턴을 부러워하게 된다.
병원에서 하는 일은 늘 일정하고 공평무사하지 못하다. 같은 10시간을 일해도 그 사이에 일이 얼마나 몰리는지는 매일 다르다. 환자들은 아플 때 병원을 찾지만 의사들은 괜히 내가 일할 때만 환자들이 몰려서 나 혼자만 힘들다고 생각한다.
인턴들의 푸념은 입에서 떨어질 날이 없다. '의사'와 '의사가 아닌 다른 사람'을 비교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같은 의사들끼리 비교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모두 환자를 위하고 생명을 살리는 고귀한 의업일 텐데 귀천이 나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잘못하는 것이다.
한 달 동안 같은 과에서 일하는 인턴을 '짝턴'이라고 부른다. '짝꿍+인턴'을 줄인 말인데 짝꿍이라는 말만큼이나 어감이 예쁘다. 짝턴끼리 일하다 보면 그 과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 서로 도와가며 일을 해야 한다.
'빵꾸내지 않는다' 혹은 '서로 백(back) 봐준다'라 일컫는 상황에서 칼같이 업무 구분을 하지 않고 기꺼이 도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만 몸은 힘들고 일하기 싫다 보면 기껍지 않을 때도 많다. 바쁘고 힘들 때 누가 한 명이라도 옆에서 도와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알기에 짝턴 사이에는 전우애가 싹튼다. '짝턴을 잘 만나야지 그 달 일정이 편하다'는 명언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나는 이렇게 고생하는데 저 인턴은 편한 일정 걸려서 널널하니 믿을 수가 없네.' '바빠 죽겠는데 조금만 도와주지. 자기 일 아니라고 나에게 넘기면 어떡하니.' '그 많은 인턴 중에서 왜 나만 꼭 집혀서 이렇게 불려가야 하는 거야.'
내가 할 일과 남이 할 일을 구분하고 비교하게 되면 힘들다. 사실 이것은 인턴들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인턴 오리엔테이션 때 교육수련부 교수님은 자기가 맡은 일보다 30퍼센트 더 많이 한다는 마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생명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남과 비교하는 투정들은 남루하게 비춰질 때가 많다.
"왜 남도 아니고 이런 일이 우리한테 일어나는 거요."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을 앞두고 말 그대로 땅이 꺼져라 울던 아주머니 앞에서 '남이 아닌 나에게'라는 일 투정은 쓸데없이 느껴졌다.
여전히 보령 응급실에는 사체 검안을 위한 과정들이 우리를 기다렸고 응급실 당직을 서는 5명의 짝턴에게는 한 명도 빠짐없이 생명의 교차 지점에 서야 했다. 그 교차 지점에는 망자의 가족과 친구들이 찾아왔다. 이런 일들이 그들에게, 그리고 망자에게 일어나야 했음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서른이 채 안 된 건장한 직업 군인이 갑작스레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했고 싸늘한 주검이 되어 응급실에 왔다. 가족들도 동료들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경황없는 슬픔만 주고받았다.
힘겹게 시청에서 일자리를 구한 남편은 체육 검진 도중 급작스런 심장마비로 그 자리에서 소생하지 못한 채 병원으로 실려 왔다. 미리 연락을 받고 응급실에 대기하던 부인은 청천벽력같은 남편의 죽음을 믿을 수 없었다.
단체로 친구들과 카약 체험을 하던 학생들은 파도가 심해 물에 빠지면서 구조되어 병원에 왔다. 홀로 구조되지 못해 실종되었던 한 아이는 10일이 넘도록 발견되지 못했는데 이후 바닷물에 심하게 부패되어 부모님을 맞이했다.
뱃사람 남편은 고기잡이 배의 끊어진 로프에 얼굴을 강타당하면서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둔 채 다시금 기나긴 뱃길을 되돌아왔다. 혹시나 남편이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5시간 넘게 배가 돌아오기를 기다린 부인은 응급실에서 오열했다.
병동에서 심한 욕창으로 소독하는 내내 마음이 쓰였던 환자의 안부를 물었더니 이미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동기로부터 접했다. 사체 검안의 상황에서도 의사들은 감정적일 수 없었다. 외부 소견으로 알아낼 수 있는 의학 정보들을 최대한 알아낸 후, 필요한 경우 그 자리에서 사망 선고를 해야 했다. 가족들에게도 사실을 전해야 한다.
아직 망자의 몸이 따뜻하다면서 사망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들의 뺨을 수차례 때리던 어머니, 피투성이인 얼굴의 남편을 보더니 그대로 실신하던 아주머니도 보았다. 두개골이 부러지고 목뼈가 부러져서 검안 도중 들리던 뼈가 일그러지는 소리와 손에 전해지는 느낌까지. 그러한 상황에서도 의사는 중립적이고 평정을 유지해야 한다.
세상의 이치가 궁금했다. 마주쳤던 상황들은 단순히 개인이 조심한다고 피할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었다. 세상의 생생한 감각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의사들이 하는 진로에 대한 걱정은 다른 청춘들과는 다르다.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몰라서 허덕이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이미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조류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물길에 알맞게 뒤섞여야 하는 허덕임과 같다.
※본문에 나오는 '서젼(surgeon, 외과의)'을 비롯한 기타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저서 '인턴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2011년 한국 사회는 젊은이들에게 대학교를 못 가도, 졸업을 해도 문제였다. 남과 비교하고 비교당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세상이라 청춘들은 눈칫밥을 먹고 방황했다.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했지만 그런 생각은 실천되지 못했다.
의사가 되고 나니 친구들이 으레 '의느님'이라고 놀리면서 고민 없겠다고, 이제 남부럽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새내기 의사들도 눈치를 보고 남과 비교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어떤 과가 잘 나가고 어떤 과는 전망이 안 좋다는 비교가 그러했다. 인턴을 마치고 무슨 전공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그러했다. 힘든 생활에 지치다 보면 바로 눈앞의 일에 대하여 '왜 같은 인턴인데 나만 힘든가' 하는 생각으로 내 일정을 저주하고 다른 인턴을 부러워하게 된다.
병원에서 하는 일은 늘 일정하고 공평무사하지 못하다. 같은 10시간을 일해도 그 사이에 일이 얼마나 몰리는지는 매일 다르다. 환자들은 아플 때 병원을 찾지만 의사들은 괜히 내가 일할 때만 환자들이 몰려서 나 혼자만 힘들다고 생각한다.
인턴들의 푸념은 입에서 떨어질 날이 없다. '의사'와 '의사가 아닌 다른 사람'을 비교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같은 의사들끼리 비교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모두 환자를 위하고 생명을 살리는 고귀한 의업일 텐데 귀천이 나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잘못하는 것이다.
한 달 동안 같은 과에서 일하는 인턴을 '짝턴'이라고 부른다. '짝꿍+인턴'을 줄인 말인데 짝꿍이라는 말만큼이나 어감이 예쁘다. 짝턴끼리 일하다 보면 그 과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 서로 도와가며 일을 해야 한다.
'빵꾸내지 않는다' 혹은 '서로 백(back) 봐준다'라 일컫는 상황에서 칼같이 업무 구분을 하지 않고 기꺼이 도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만 몸은 힘들고 일하기 싫다 보면 기껍지 않을 때도 많다. 바쁘고 힘들 때 누가 한 명이라도 옆에서 도와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알기에 짝턴 사이에는 전우애가 싹튼다. '짝턴을 잘 만나야지 그 달 일정이 편하다'는 명언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나는 이렇게 고생하는데 저 인턴은 편한 일정 걸려서 널널하니 믿을 수가 없네.' '바빠 죽겠는데 조금만 도와주지. 자기 일 아니라고 나에게 넘기면 어떡하니.' '그 많은 인턴 중에서 왜 나만 꼭 집혀서 이렇게 불려가야 하는 거야.'
내가 할 일과 남이 할 일을 구분하고 비교하게 되면 힘들다. 사실 이것은 인턴들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인턴 오리엔테이션 때 교육수련부 교수님은 자기가 맡은 일보다 30퍼센트 더 많이 한다는 마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생명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남과 비교하는 투정들은 남루하게 비춰질 때가 많다.
"왜 남도 아니고 이런 일이 우리한테 일어나는 거요."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을 앞두고 말 그대로 땅이 꺼져라 울던 아주머니 앞에서 '남이 아닌 나에게'라는 일 투정은 쓸데없이 느껴졌다.
여전히 보령 응급실에는 사체 검안을 위한 과정들이 우리를 기다렸고 응급실 당직을 서는 5명의 짝턴에게는 한 명도 빠짐없이 생명의 교차 지점에 서야 했다. 그 교차 지점에는 망자의 가족과 친구들이 찾아왔다. 이런 일들이 그들에게, 그리고 망자에게 일어나야 했음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서른이 채 안 된 건장한 직업 군인이 갑작스레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했고 싸늘한 주검이 되어 응급실에 왔다. 가족들도 동료들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경황없는 슬픔만 주고받았다.
힘겹게 시청에서 일자리를 구한 남편은 체육 검진 도중 급작스런 심장마비로 그 자리에서 소생하지 못한 채 병원으로 실려 왔다. 미리 연락을 받고 응급실에 대기하던 부인은 청천벽력같은 남편의 죽음을 믿을 수 없었다.
단체로 친구들과 카약 체험을 하던 학생들은 파도가 심해 물에 빠지면서 구조되어 병원에 왔다. 홀로 구조되지 못해 실종되었던 한 아이는 10일이 넘도록 발견되지 못했는데 이후 바닷물에 심하게 부패되어 부모님을 맞이했다.
뱃사람 남편은 고기잡이 배의 끊어진 로프에 얼굴을 강타당하면서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둔 채 다시금 기나긴 뱃길을 되돌아왔다. 혹시나 남편이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5시간 넘게 배가 돌아오기를 기다린 부인은 응급실에서 오열했다.
병동에서 심한 욕창으로 소독하는 내내 마음이 쓰였던 환자의 안부를 물었더니 이미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동기로부터 접했다. 사체 검안의 상황에서도 의사들은 감정적일 수 없었다. 외부 소견으로 알아낼 수 있는 의학 정보들을 최대한 알아낸 후, 필요한 경우 그 자리에서 사망 선고를 해야 했다. 가족들에게도 사실을 전해야 한다.
아직 망자의 몸이 따뜻하다면서 사망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들의 뺨을 수차례 때리던 어머니, 피투성이인 얼굴의 남편을 보더니 그대로 실신하던 아주머니도 보았다. 두개골이 부러지고 목뼈가 부러져서 검안 도중 들리던 뼈가 일그러지는 소리와 손에 전해지는 느낌까지. 그러한 상황에서도 의사는 중립적이고 평정을 유지해야 한다.
세상의 이치가 궁금했다. 마주쳤던 상황들은 단순히 개인이 조심한다고 피할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었다. 세상의 생생한 감각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의사들이 하는 진로에 대한 걱정은 다른 청춘들과는 다르다.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몰라서 허덕이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이미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조류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물길에 알맞게 뒤섞여야 하는 허덕임과 같다.
※본문에 나오는 '서젼(surgeon, 외과의)'을 비롯한 기타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저서 '인턴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