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경쟁하다 역습당한 보험사

박양명
발행날짜: 2016-07-05 05:00:59
  • 창간기획국민·병의원 도덕적 해이 탓…"상품 설계 정교화 해야"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지금 바로 가입하세요!"

한 실손의료보험회가 만들어낸 광고 카피로 유행을 넘어 일상생활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말이다. 진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가입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목소리가 높다.

시장 선점을 위해 경쟁적으로 실손의료보험 시장에 뛰어들고 '혹하는' 상품을 내놓으면서 광고를 하던 보험사들이 역습을 당하고 있다.

10명 중 6명이 가입했을 만큼 시장은 포화상태인데 보험금 지급은 늘고 있다. 보험료를 올리고 지급 기준을 강화하면 고객 이탈로 이어지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실손의료보험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보험사는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를 합쳐 약 40여곳이다. 보험 시장 규모만 174조원에 달하고, 이 중 실손보험 시장 규모는 약 50조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지속 가능성'이라는 어젠다를 꺼내들며 국민과 병의원이 도덕적 해이를 문제 삼고 있다. 그리고 꾸준히 보험정보원 설립, 공공기관(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 심사권 이관 등을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실손의료보험사는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기업이라는 것이다. 이들이 말하는 지속 가능성이라 함은 기업의 지속 가능성이라는 것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지난 2월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지난해 보험회사 경영실적 잠정치를 통해서도 추측할 수 있다. 지난해 보험회사 당기순이익은 6조3000억원으로 전년도보다 13.3%(8000억원) 늘었다. 생명보험사 당기순이익은 3조6000억원, 손해보험사 당기순이익은 2조7000억원으로 각각 전년보다 12%(4000억원), 15.1%(4000억원) 증가했다.

지난 4월 발표된 '국민건강보험과 민간의료보험의 합리적 발전방안(연구책임 신현웅)'에 따르면 정부의 4대 중증질환 및 상급병실료, 선택진료 등 보장성 강화 정책은 민간 보험사에 1조5000억원의 반사이익을 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현웅 연구기획조정실장은 "보험사들은 급여보다 비급여 증가세가 빨라 손해가 난다고 하지만 회계나 손해율 처리가 불투명한데다 공개하고 있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보험사들의 남탓 "진료비 심사권 심평원으로 이관"

심사권 이관 문제가 본격 화두로 떠오른 것은 2012년.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실손보험 종합대책에 '보험정보원' 설립이 들어가면서부터다. 보험사들의 보험금 지급 심사를 위탁하는 기관(보험정보원)을 만들고 심사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활용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보험금 지급정보, 질병정보가 한곳으로 집중된다는 소리다.

얼핏 보면 정부의 계획 같지만 이는 이미 2005년 발표된 한 대형 보험사의 장기 계획에도 들어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금융위원회가 2012년 발표한 종합대책 중 실손의료보험금 심사체계 흐름도(안)
이에 의료계는 "거대 기업으로 민간보험 사업자 간 진료내역과 국가에서 직접 통제, 관리하는 사회보험 영역인 국민건강보험 진료내역까지 관여해 결국 국민의 개인 진료정보를 이용한 민간 대기업의 수익 증대로 이용될 것"이라며 강하게 반대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보험업계에서도 중소보험사를 중심으로 '빅브라더 탄생'이라는 우려를 보이며 보험정보원 설립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는 것이다.

이는 보험침투율 증가 추세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GDP 대비 민간보험료 납부 비율을 말하는 보험침투율은 2013년 기준 11.9%로 OECD 국가 중 5위로 OECD 평균은 물론 14위를 기록한 미국보다도 높다. 이 수치가 높을수록 시장 포화도가 높다는 말이다.

대한의사협회 서인석 보험이사는 "중복가입률과 보험침투율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험정보원이 생기면 대형 보험사는 기존 가입자에게 나갈 보험금 심사 등의 편의성을 확보할 수 있다"며 "자료 축적으로 가입자에게 보험금 지급 거절, 보험가입 갱신 거절 요인이 높아질 것"이라고 추측했다.

또 "중소보험사는 현실적으로 심사체계 구축에 비용을 부담하기도 힘들고 이미 언더라이팅을 완화한 현실에서 제3의 보험정보원을 만드는 데 막대한 이득을 기대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고객 지키기와 뺏어오기 싸움이 치열한 상황에서 보험정보원 설립은 선량한 보험금 지급이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보험사들은 심사권 이관 문제를 또다시 꺼냈다. 이번에는 보험금 청구가 불편하다는 국민을 앞세워 청구지급 서비스 간소화를 이슈화 시켰다. 비급여 진료비가 도덕적 해이를 부른다며 표준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함께했다.

이에 대해서도 의료계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서 이사는 "비급여 표준화 문제는 금융당국이 직접적으로 개입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단호히 말하며 "심사권 이관 문제도 말이 안 된다. 진단서, 상병코드가 기재된 처방전, 세부 영수증만 내면 지금까지 심사를 해온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보험상품 정교하게 만들고, 자체 진료비 통제 시스템 마련해야"

전문가들은 손해율이 증가했고, 지속 가능성 문제를 꺼내기 전에 국민과 병의원이 도덕적 해이에 빠지지 않도록 상품을 정교하게 만들면 된다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서 이사는 "실손의료보험의 급여기준은 단순하다"며 "환자 상태에 따라 수술 방법이 정해질 만큼 의료 행위는 다양한 상황에서 단순한 급여기준은 의료행태를 왜곡하고 실손보험 가입자 권리를 침해하며 결국 피해는 환자가 보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전문가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 보험약관과 보험상품의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현웅 실장은 보고서를 통해 실손보험사 자체적으로 비급여 관리 시스템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신현웅 실장은 보고서를 통해 "환자 법정 본인 부담은 건강보험 재정 내에서 해결이 필요한 영역이다. 민간 보험사는 비급여 정보를 갖고 있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정부의 엄격한 통제 아래 일회성으로 관리되고 있는 비급여 정보를 목록화 및 전산화해 비급여 정보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외래에 대한 본인 부담 확대나 연령 계층별로 본인 부담률을 차등해서 실손의료보험 가입으로 인한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보험 가입에만 혈안이 돼 있는 시장 분위기에도 쓴소리를 했다.

신 실장은 "실손보험사들은 현재 보험가입에 집중하고 있으며 사후 관리는 소홀한 측면이 있다"며 "불투명한 회계 처리 때문에 손해가 나면 보험료를 올려 충당하자는 식의 보험사 도덕적 해이가 더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실손의료보험 수익은 가입률 증가가 아닌 가입자 건강관리를 통한 효율적 재정 활용을 통해 증대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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