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진환자 15분 진료 도입 5개월째…환자·의료진 만족도 높아
#1.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중환자실에서 나쁜 사람들이 나를 잡았어요. 눈앞에 저 문만 열고 나가면 살 수 있을 것 같은데…자꾸만 나를 붙잡았어요."
"아, 그건 중환자 중 섬망증상을 보이는 경우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안전장치를 해두는 것 때문에요. 몸을 고정해뒀던 것을 누군가 잡았던 것으로 느끼는 거죠. 마치 꿈처럼요."
#2. 중환자실에서의 기억이 없어요. 퇴원해보니 상당히 오랜시간이 흘렀는데 그때의 기억이 없으니 불안하고 우울해요.
"아, 그럴 수 있어요. 하지만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 대부분은 그렇답니다. 치료 중에는 환자의 안정을 위해 수면제를 주기도 하고, 상태가 위중하기 때문에 기억을 못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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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선 시간적 제한은 없다. 일단 15분으로 제한하긴 했지만 최근까지 대부분의 초진 진료는 30분을 소요했다. 사실상 환자가 궁금한 모든 것을 해소한다. 심지어 환자를 병간호하며 힘들었던 보호자들의 하소연도 이곳에선 가능하다.
5개월 째 중환자 클리닉을 운영 중인 분당서울대병원 이연주 교수(호흡기내과)는 환자의 식사부터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치료 이후의 일상생활은 어떤지 등 의학적인 질문 이외 소소한 일상까지 질문한다.
이 과정에서 환자의 보호자가 그동안 병간호의 고충을 토로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 환자는 물론 보호자의 심리적 위안의 순간이다.
3분 진료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것이 중환자 클리닉에선 가능하다. 환자들의 반응은 당연히 긍정적.
의료진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는 만큼 환자의 약 복용, 생활습관 개선 등 치료과정에서 환자의 협조가 눈에 띄게 좋아지는 경우도 있다.
이연주 교수는 "환자 반응은 폭발적이지만 의학적으로 치료효과에 대한 데이터는 없다. 그런 점에서 중환자 클리닉은 말 그대로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미국, 영국에서도 중환자실을 퇴원한 환자만을 위한 별도 클리닉 운영하는 게 시도가 있다"면서 "한국은 유병률 조차 파악이 안 되고 있다. 이번 클리닉이 그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기존의 호흡기내과 외래(주1회)이외 추가적인 외래가 생겼으니 업무는 많아졌다. 그럼에도 이 교수가 중환자 클리닉을 기획한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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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3분진료는 의사 입장에서도 굉장히 소모적인 일"이라면서 "쏟아지는 진료에 집중도는 떨어지고 분노지수는 높아지기 마련"이라고 했다.
이는 앞서 임재준 교수(호흡기내과)와 함께 3분 진료의 폐해를 주제로 논문을 진행하며 직접 확인한 바 있다.
그는 "임 교수를 도와 연구를 실시한 결과 3분진료는 의사의 집중력을 저하시키고 분노지수를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논문을 썼던 경험이 이런 시도를 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임 교수 또한 지난해부터 서울대병원에서 초진환자를 대상으로 15분 진료를 도입, 운영 중이다.
이 교수는 "이는 모든 환자에게 실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외과계 등 일부 진료과에 대해 확대하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본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각 병원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정책적인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확대할 여지가 커질 것"이라면서 정부의 각별한 관심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