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보다 방향" 제약계 마일스톤 바라봐야

발행날짜: 2016-10-13 05:00:57
최근 지인과 만난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주식 이야기가 나왔다. 제약주에 투자했던 지인은 만나자마자 혀를 찼다. 완전히 속았다는 분개가 섞여 있었다.

너도 나도 "제약 주식을 사서 돈 좀 벌었다"는 얘기가 들렸던 것이 불과 2~3년 전. 요즘 심심찮게 "이제 바이오나 제약주의 시대는 끝났다"는 말까지 들린다. 제약계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눈빛도 사뭇 달라졌다.

최근 한미약품이 기술수출 철회라는 직격탄을 맞았을 때 "드디어 올 게 왔다"고 생각한 사람은 기자 본인뿐만이 아닐 것이다. 기술수출을 잭팟에 비유하며 장미빛 희망만을 이야기하는 풍토가 내심 불안했기 때문이다.

신약 개발의 성공률은 채 10%에 못미친다. 최근 미국바이오협회가 발표한 자료도 이를 뒷받침한다. 모든 의약품 후보 물질의 임상 1상에서부터 품목 승인까지의 성공률은 9.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 조원에서 수 십 조원의 투자를 해봐야 열 개 중 고작 한 개만 성공하는 어찌보면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 산업. 신약 개발 성공을 잭팟에 비유하는 이유도 그런 까닭이다.

누구나 열심히 하지만 똑같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도 제약산업의 큰 맹점이다.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모두 우등생이 되지 못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제약계의 생리다.

한미약품 사태를 보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이었다. 마일스톤 방식으로 진행되는 계약은 '모든 임상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을 때'라는 단서 조항이 붙는다. 쉽게 말해 신약 개발에 성공을 해야만 계약서에 명시된 돈을 모두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제약계도 언론도 신약 개발 성공률을 직접 거론하며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대신 '기술 수출 몇 조'와 같은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내기 바빴다. 마일스톤 계약을 마치 따논 당상처럼 여기기도 했다. 투자자들도 덩달아 '뜨거운 머리'로만 제약계를 바라봤지 급작스런 '사망 부작용' 소식에는 차갑게 반응했다.

한미약품 사태가 제약계를 냉철히 바라보는 계기를 제공했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걸까.

모든 약에는 부작용이 뒤따른다. 신약도 마찬가지, 올리타정만 예외일 수 없다. 신약의 시장 출시 이후 중대한 부작용이 밝혀지기도 한다. 신약 개발의 성공률에 눈을 감았던 사람들이 이제야 임상 과정에서의 사망을 포함한 부작용 발생이 필연적이라는 데 눈을 뜨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부정적 전망이 넘쳐나고 있지만 오히려 한번은 겪어야 할 성장통이라는 말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광풍이 몰아친 제약계에선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정표를 의미하는 마일스톤(milestone), 이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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