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종 대표 "환자 목소리에 전문가 함께하면 정책 바꿀 수 있다"
"도움의 손길 때문에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용기가 생겨났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바란다."
약 3년 전, 9살 난 큰 딸을 먼저 보낸 아빠 서동균 씨의 말이다. 2014년, 서 씨의 딸 서지유 양은 팔 골절 수술 후 마취에서 결국 깨어나지 않았다.
서 씨는 2일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창립 7주년 기념식에서 첫 번째 축사자로 나섰다.
기념식 등 행사가 있으면 국회의원, 정부 관계자가 가장 먼저 연단에 올라 '축하'의 말을 건네는 관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서 씨는 "일개 시민이 어려운 상황에 닥치면 전문가, 시민단체, 이웃의 도움이 절실하다"며 "거창한 시민운동은 바라지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먼저 해줘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서 씨처럼 도움이 절실한 마음 하나하나가 모여 탄생한 단체가 바로 한국환자단체연합회다.
2010년 2월 '환자권리를 위한 환우회연합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출범식을 가졌고 그해 10월 한국환자단체연합회로 이름을 바꿨다.
출범식 당시 100명 수준이던 참석자 수가 7년새 200여명으로 늘었다. 보건복지부 강도태 보건의료정책관이 정진엽 장관의 축사를 대독했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영상으로 축하 메시지를 보내왔다. 3주년부터 해마다 기념식을 가졌지만 처음이다. 환자안전법 제정에 역할을 했던 더불어민주당 오제세 의원은 직접 기념식에 참석했다.
7년 사이 환자운동이라는 개념이 뿌리내려졌고, 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안기종 대표는 "환자는 비전문가이다 보니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고 모여 단체를 만들었다. 그게 시작이다"고 말했다.
이어 "환자들이 비전문가이고 현실감각이 떨어질 수는 있지만 환자 목소리가 있고 전문가가 함께하면 제도, 정책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덧붙였다.
환자의 위상이 특히 부각된 계기는 '환자안전법' 제정.
정맥주사로 들어가야 할 항암제인 빈크리스틴이 환자의 척수로 들어가면서 사망까지 이른 종현군의 사건이 시발점이었다. 이 의료사고가 발생한 지 6년 2개월 만에 환자안전을 위한 환자만을 위한 법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종현이법'이라고도 불린다.
안기종 대표는 "종현이법 제정 과정은 환자단체연합의 역사와 같이 했다고 봐도 된다"며 "환자들이 자신의 억울함을 쏟아내고 공감하고 들어주며 전문가가 해결책을 제시하는 환자샤우팅카페를 통해 종현이 엄마가 호소하며 문제가 확산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문가들의 조언을 통해 만들어졌지만 주체가 환자단체였고, 환자 당사자였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환자단체연합은 투약오류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환자가 투약, 주사 전 자신의 생년월일과 이름을 의료진에게 먼저 말하는 '투약오류 예방운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의료분쟁조정중재 자동개시법 제정도 환자단체연합의 역할이 컸다. 딸의 죽음의 원인을 알고 싶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문을 두드렸지만 병원 측 거부로 조정조차도 할 수 없었던 예강이 엄마의 사연이 알려진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김봉옥 부회장은 축사를 통해 "모든 사람은 의료인이 될 수 없지만 모든 의료인은 언제든지 환자가 될 수 있다"며 "결국 서로 신뢰하고 소통해서 서로가 가지는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고 예방해야 한다.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는 데 적극 동참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산하 위원회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는 것도 환자의 위상이 눈에 띄게 달라진 부분이다.
안 대표에 따르면 현재 약 50개의 법정위원회 중 10개 정도에 환자단체연합이 참여하고 있고 10개의 정책협의체에도 들어가고 있다. 지난해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소비자 대표로 들어갔다.
그는 "예전이는 법이나 정책을 만들 때 정부도, 국회도 환자는 뒷전이었다"며 "환자안전법 논의를 시작하며 환자 의견이 많이 반영됐고, 의료현안에 대한 환자들의 입장은 꼭 묻는 분위기가 됐다"고 전했다.
환자단체가 제안하는 7대 보건의료정책은?
환자단체연합은 2일 기념식에서 조기 대선 가능성이 있는 시국에 맞춰 7대 보건의료정책을 제안했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의료전달체계에서 일차의료 의사들의 역할 정립 등 거시적인 화두를 던졌다.
의료비 부담 연간 100만원 넘지 않도록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저소득층 의료비 안전망 구축, 건강보험 상병수당 제도 도입, 환자투병지원센터 및 환자권리센터 운영, 동네의원 의사는 네비게이터 역할을 하는 일차의료 전문가, 의료정보 통합제공 시스템 구축 등을 제시했다.
환자단체연합은 "동네의원 의사는 질병 치료를 넘어 만성질환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정서적 스트레스와 식습관, 운동, 수면, 건강식품 등 종합적 건강상담까지 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의료기관 및 의료인 선택에 필요한 객관적 정보를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도 했다. 객관적 정보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요양급여 적정성 평가정보,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의 평가정보, 의료분쟁 통계정보, 의료인 성범죄 관련 정보 등이다.
안 대표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도 안되는데 상병수당 이야기를 하냐는 지적도 있었다"며 "7대 보건의료정책을 그냥 만든 게 아니라 환자들 목소리를 담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환자들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고, 전문가들이 의견을 더하면 그게 정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약 3년 전, 9살 난 큰 딸을 먼저 보낸 아빠 서동균 씨의 말이다. 2014년, 서 씨의 딸 서지유 양은 팔 골절 수술 후 마취에서 결국 깨어나지 않았다.
서 씨는 2일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창립 7주년 기념식에서 첫 번째 축사자로 나섰다.
기념식 등 행사가 있으면 국회의원, 정부 관계자가 가장 먼저 연단에 올라 '축하'의 말을 건네는 관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서 씨는 "일개 시민이 어려운 상황에 닥치면 전문가, 시민단체, 이웃의 도움이 절실하다"며 "거창한 시민운동은 바라지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먼저 해줘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서 씨처럼 도움이 절실한 마음 하나하나가 모여 탄생한 단체가 바로 한국환자단체연합회다.
2010년 2월 '환자권리를 위한 환우회연합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출범식을 가졌고 그해 10월 한국환자단체연합회로 이름을 바꿨다.
출범식 당시 100명 수준이던 참석자 수가 7년새 200여명으로 늘었다. 보건복지부 강도태 보건의료정책관이 정진엽 장관의 축사를 대독했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영상으로 축하 메시지를 보내왔다. 3주년부터 해마다 기념식을 가졌지만 처음이다. 환자안전법 제정에 역할을 했던 더불어민주당 오제세 의원은 직접 기념식에 참석했다.
7년 사이 환자운동이라는 개념이 뿌리내려졌고, 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안기종 대표는 "환자는 비전문가이다 보니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고 모여 단체를 만들었다. 그게 시작이다"고 말했다.
이어 "환자들이 비전문가이고 현실감각이 떨어질 수는 있지만 환자 목소리가 있고 전문가가 함께하면 제도, 정책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덧붙였다.
환자의 위상이 특히 부각된 계기는 '환자안전법' 제정.
정맥주사로 들어가야 할 항암제인 빈크리스틴이 환자의 척수로 들어가면서 사망까지 이른 종현군의 사건이 시발점이었다. 이 의료사고가 발생한 지 6년 2개월 만에 환자안전을 위한 환자만을 위한 법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종현이법'이라고도 불린다.
안기종 대표는 "종현이법 제정 과정은 환자단체연합의 역사와 같이 했다고 봐도 된다"며 "환자들이 자신의 억울함을 쏟아내고 공감하고 들어주며 전문가가 해결책을 제시하는 환자샤우팅카페를 통해 종현이 엄마가 호소하며 문제가 확산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문가들의 조언을 통해 만들어졌지만 주체가 환자단체였고, 환자 당사자였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환자단체연합은 투약오류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환자가 투약, 주사 전 자신의 생년월일과 이름을 의료진에게 먼저 말하는 '투약오류 예방운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의료분쟁조정중재 자동개시법 제정도 환자단체연합의 역할이 컸다. 딸의 죽음의 원인을 알고 싶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문을 두드렸지만 병원 측 거부로 조정조차도 할 수 없었던 예강이 엄마의 사연이 알려진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김봉옥 부회장은 축사를 통해 "모든 사람은 의료인이 될 수 없지만 모든 의료인은 언제든지 환자가 될 수 있다"며 "결국 서로 신뢰하고 소통해서 서로가 가지는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고 예방해야 한다.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는 데 적극 동참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산하 위원회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는 것도 환자의 위상이 눈에 띄게 달라진 부분이다.
안 대표에 따르면 현재 약 50개의 법정위원회 중 10개 정도에 환자단체연합이 참여하고 있고 10개의 정책협의체에도 들어가고 있다. 지난해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소비자 대표로 들어갔다.
그는 "예전이는 법이나 정책을 만들 때 정부도, 국회도 환자는 뒷전이었다"며 "환자안전법 논의를 시작하며 환자 의견이 많이 반영됐고, 의료현안에 대한 환자들의 입장은 꼭 묻는 분위기가 됐다"고 전했다.
환자단체가 제안하는 7대 보건의료정책은?
환자단체연합은 2일 기념식에서 조기 대선 가능성이 있는 시국에 맞춰 7대 보건의료정책을 제안했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의료전달체계에서 일차의료 의사들의 역할 정립 등 거시적인 화두를 던졌다.
의료비 부담 연간 100만원 넘지 않도록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저소득층 의료비 안전망 구축, 건강보험 상병수당 제도 도입, 환자투병지원센터 및 환자권리센터 운영, 동네의원 의사는 네비게이터 역할을 하는 일차의료 전문가, 의료정보 통합제공 시스템 구축 등을 제시했다.
환자단체연합은 "동네의원 의사는 질병 치료를 넘어 만성질환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정서적 스트레스와 식습관, 운동, 수면, 건강식품 등 종합적 건강상담까지 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의료기관 및 의료인 선택에 필요한 객관적 정보를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도 했다. 객관적 정보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요양급여 적정성 평가정보,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의 평가정보, 의료분쟁 통계정보, 의료인 성범죄 관련 정보 등이다.
안 대표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도 안되는데 상병수당 이야기를 하냐는 지적도 있었다"며 "7대 보건의료정책을 그냥 만든 게 아니라 환자들 목소리를 담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환자들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고, 전문가들이 의견을 더하면 그게 정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