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을 환자와 함께 했어요…이젠 같이 늙는 거죠"

박양명
발행날짜: 2018-05-16 06:00:58
  • 언제나 믿음직한, 가족 주치의정가정의원 정명관 원장

|언제나 믿음직한, 가족 주치의①|정가정의원 정명관 원장

"원장님,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정명관 원장은 환자들이 자신의 건강을 걱정해주는 격려의 말을 심심찮게 듣는다. 환자 자신보다 오래 살면서 계속 건강관리를 해달라는 부탁을 의사에게 하는 것이다. 환자가 의사의 건강을 걱정해주는 아이러니한 장면이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 어느 시장 골목 한편에 18년째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정가정의원 정명관 원장(53).

정가정의원 정명관 원장
환자가 "집에선 아팠는데 원장님 얼굴을 보니 안 아프네요. 약보다도 원장님 사진을 한 장 가져가야겠다"라는 소소한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생후 1개월 때 온 아이가 이제 고등학생이 다 됐다. 초등학생 때 봤던 환자가 결혼까지 해서 아이와 함께 오는가 하면, 50세에 처음 만났던 환자는 이제 노년이기도 하다.

실제 그는 환자가 갖고 온 건강검진 결과지를 해석해주고, 경증 감기 환자에게 약을 먹을 필요 없다, 주사는 안 맞아도 된다고 딱 잘라 이야기한다.

이처럼 동네의원 의사가 한 가정에 스며들어 '예방' 차원의 건강관리를 할 수 있는 주치의 역할을 하는 게 정 원장의 바람이다.

얼핏 보면 일차의료를 담당하는 동네의원의 흔한 풍경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18년째 한자리를 지키면서 여전히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우리 나라 의료환경에서 환자의 집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 속속들이 알기는 힘든 현실이다. 개원 할 때부터 여기에 뿌리를 내려야지라고 생각하기 힘든 환경이다. 1년은 버틸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으로 시작하는 게 개원이다. 의원부터 시작해서 확장, 이전 광고를 하고 병원급으로까지 성장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정명관 원장이 개인, 나아가 한 가정 구성원의 건강을 관리해주는 '주치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10년이 넘도록 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원의=자영업자'라는 공식 자체가 의사와 환자의 신뢰관계를 멀어지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원을 찾는 대다수 환자가 고혈압,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자, 통증 환자, 감기몸살 환자인데 전문의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개원의 90%가 전문의다. 의원 주변에도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정형외과와 통증클리닉이 6곳, 이비인후과가 4곳 있다. 경쟁을 해야 하는 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현실이다."

그는 일차의료연구회에 참여해 다른 나라의 제도를 공부하고 우리나라에 적합한 주치의제도에 대해 고민했다. 최근에는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와 시민과 의사들의 궁금증을 담아 '주치의제도 바로 알기'라는 책도 냈다.

"가정의학과 의사의 현재 모습을 보고 주치의 역할을 짐작한다거나 바람직한 주치의 모습을 추론할 수 없다. 일차의료에 대한 제도적 골격, 환자 진료패턴 등 일차의료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나라다."

정 원장은 제도가 바뀌기 위해서는 국민 계몽과 일차의료 담당 의사 양성 등 크게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현재 환자는 병의원 선택이 자유롭다. 단골, 주치의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계몽을 통해 주치의에 대한 개념 자체를 만들어야 한다. 또 전체 의사의 30% 이상이 일차의료를 담당할 수 있어야 하고, 전문의는 병원에서 일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일차의료와 병원 단계에서 진료비 책정, 진료내역도 달라지기 때문에 지불 제도 개편까지도 고민해야 한다."

주치의제는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윈윈이라는 게 정 원장의 주장이다. 환자는 동네의원을 진료과목별로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의료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문제가 생겼을 때 일원화된 통로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의사 입장에서는 생존을 위해 경쟁을 고민하지 않고도 꼭 필요한 환자를 중심으로 의료를 제공해줄 수 있다. 의사로서 직업적 자긍심도 더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변화는 하루아침에 일어날 수 없다. 일차의료연구회는 '주치의제도 바로 알기'에서 주치의제가 안정화되려면 최소 12년 이상 걸릴 거라고 봤다.

"제도에 대한 고민을 시작이라도 해야 한다. 제대로 된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하고 환자가 주치의를 가지며, 전문의도 자기 자리를 찾는 데까지만도 최소 10년이 걸린다. 이 출발을 지금도 하지 않고 논쟁만 하면 노인인구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의료환경만 더 열악해질 것이다."

주치의제는 전국민 건강을 위한 '초석'이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정 원장.

"환자와 의사 관계는 신뢰로 이뤄져야 한다. 건강 문제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물건을 팔기 위한 상술이 아니라 환자 건강에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 방편을 고민해서 제시해주는 신뢰관계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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