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환자안전의 날 행사…"의료진, 윤리적 책임의식 필요"
"교수님, 우리 딸이 왜 죽었어요. 어제 저하고 걸어서 들어왔잖아요."
"억울하면 절차 밟으세요."
약 3년 동안 믿었던 의사의 한마디는 아들을 잃은 엄마의 가슴에 상처로 박혔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29일 서울 백범김구기념관에서 환자안전의 날을 맞아 샤우팅카페를 개최했다.
허희정 씨는 대구 A대학병원에서 3년여 동안 꼬박 백혈병으로 투병하다, 의료사고로 지난해 11월 갑자기 사망에 이른 아들 재윤군의 이야기를 샤우팅했다.
허 씨는 "재윤이는 백혈병 중에서도 약물반응이 좋고 완치율이 90%에 이르는 특이 유전자 없는 착한 백혈병이었다"며 "입퇴원을 66번 반복하며 만 3년을 꼬박 항암치료받다가 치료 종결 3개월 앞두고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아이에게 열이 났고 병원을 찾았다"고 운을 뗐다.
최근 열이 자주 나는 것 같다는 허 씨의 말에 재윤군의 주치의는 백혈병 재발인 것 같다고 골수검사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허 씨는 열이 많이 나고 감기 증상이 있으니 검사를 굳이 오늘 해야 하냐고 물었고, 의료진은 상관없다고 답했다.
레지던트 1년차가 주사실에서 골수검사를 했다. 허 씨에 따르면 당시 주사실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침대만 하나 있었다. 전공의는 수면마취를 위해 미다졸람 2ml, 케타민을 함께 주사했다. 보호자인 허 씨는 주사실 밖에서 검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3년간 재윤군 치료를 담당했던 병원의 의료진이었기에 허 씨는 A대학병원 의료진을 100% 신뢰하고 있었다고 했다.
10분 후, 간호사가 다급하게 허 씨의 손을 끌고 주사실로 들어갔다. 힘없이 누워 있는 재윤이를 둘러싼 의료진은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다. 재윤군 담당교수도 달려왔다.
허 씨는 "당시 레지던트의 말에 따르면 마취 2분 후 말을 시켰는데 재윤이가 대답을 해 미다졸람 2ml를 더 주사했고, 이후 골수검사를 시행했다. 7분 후 봤더니 재윤이가 숨을 쉬고 있지 않고 산소포화도가 77%라서 심폐소생술을 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주사실에는 응급 장비가 전혀 없어서 레지던트가 입에서 입으로 인공호흡을 했다"며 "골수검사를 하다가 환자가 움직이면 검사를 못하니까 고강도로 진정시키는 과정이었지만 주사실에는 어떤 응급의료장비가 없었다"고 호소했다.
그렇게 재윤군은 열이 나는 등 감기 기운으로 병원에 온지 19시간 만에 사망했다. 골수검사 결과도 깨끗했다.
허 씨는 "재윤이와 같은 사고를 당하는 아이를 본다면 우리 아이를 잃는 것보다 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 이 자리에 섰다"며 "무서워서 아무것도 안 한다면 훗날 아이에게 너무 부끄러울 것 같았다"고 이야기의 끝을 맺었다.
"의료진·병원, 환자안전사고 소통·공감 자세 필요"
불과 5년 9개월을 세상에 머물다 간 재윤군의 사연은 샤우팅카페 현장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패널로 참석한 울산의대 예방의학교실 이상일 교수와 보건복지부 정은영 의료기관정책과장도 연신 눈물을 훔쳤다.
이상일 교수에 따르면 환자안전사고는 연간 1만2000명에게 일어나고 있고, 전체 사망 중 3~4%는 피할 수 있는 사고라는 국외 연구결과도 있다.
이상일 교수는 "환자안전사고가 생겼을 때 병원에서 재수 없다고 치부할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찾아서 고쳐야 재발을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해 관심을 적극 기울여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재윤군 사건은 병원이 최선의 진료를 했다고 볼 수 없다"며 "예기치 못한 결과가 생겼을 때 의료진이 환자나 보호자에게 무심코 내던진 말이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목숨을 믿고 맡겼던 사람한테 매정한 한마디를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의료진이 의도적으로 환자의 분노를 유발하기 위해 상처의 말들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대립적으로 만드는 무심코 던지는 발언을 자제할 수 있는 윤리적, 도덕적 책임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미국의사협회 윤리강령에는 의료사고 발생 시 의료진 과실 여부에 관계없이 관심을 기울이고 충분한 설명을 해줘야 한다고 돼 있다"라며 "우리나라 의사윤리강령에는 그런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다. 법적 책임이 있는 것과 윤리적, 도의적 책임이 있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한의사협회, 의료인은 윤리라고 하는 기본적인 문제를 전문직으로서 가져야 한다"며 "병원들 역시 환자 안전사고가 생겼을 때 의료진이 환자, 보호자와 접촉하지 말라고 지침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병원이 적극적으로 환자안전 사건을 공감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했다.
국회에는 환자안전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발의한 중대한 환자안전사고 신고 의무화 법안이 발의돼 있는 상황이다. 현재 환자안전법은 의료사고 발생 시 의료기관이 자율적으로 보고하고 있는 시스템이다.
정은영 과장은 "자율보고도 충분히 안 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대한 사고를 의무보고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환자안전사고를 더 은폐하는 결과를 갖고 올 수도 있어 자율보고 활성화부터 신경 쓰고 있다"면서도 "보고 시스템이 선순환 돼 신뢰가 형성되는 분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환자안전사고 발생 시 환자와 보호자의 신고가 보다 더 많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정 과장은 "6000건의 환자안전사고 보고가 들어와 있는데 환자나 보호자가 신고한 건수는 20여건에 불과하다"며 "보고가 활성화되면 환자안전본부가 원인을 분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환자안전법 취지 대로라면 의료진의 과실을 찾는 게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를 찾는 것"이라며 "환자와 보호자도 안전사고를 더 열심히 보고해줘야 한다"고 했다.
더불어 "소아 진정, 산소포화도 측정 의료기기의 문제 등은 관련 학회와 연계해 안전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억울하면 절차 밟으세요."
약 3년 동안 믿었던 의사의 한마디는 아들을 잃은 엄마의 가슴에 상처로 박혔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29일 서울 백범김구기념관에서 환자안전의 날을 맞아 샤우팅카페를 개최했다.
허희정 씨는 대구 A대학병원에서 3년여 동안 꼬박 백혈병으로 투병하다, 의료사고로 지난해 11월 갑자기 사망에 이른 아들 재윤군의 이야기를 샤우팅했다.
허 씨는 "재윤이는 백혈병 중에서도 약물반응이 좋고 완치율이 90%에 이르는 특이 유전자 없는 착한 백혈병이었다"며 "입퇴원을 66번 반복하며 만 3년을 꼬박 항암치료받다가 치료 종결 3개월 앞두고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아이에게 열이 났고 병원을 찾았다"고 운을 뗐다.
최근 열이 자주 나는 것 같다는 허 씨의 말에 재윤군의 주치의는 백혈병 재발인 것 같다고 골수검사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허 씨는 열이 많이 나고 감기 증상이 있으니 검사를 굳이 오늘 해야 하냐고 물었고, 의료진은 상관없다고 답했다.
레지던트 1년차가 주사실에서 골수검사를 했다. 허 씨에 따르면 당시 주사실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침대만 하나 있었다. 전공의는 수면마취를 위해 미다졸람 2ml, 케타민을 함께 주사했다. 보호자인 허 씨는 주사실 밖에서 검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3년간 재윤군 치료를 담당했던 병원의 의료진이었기에 허 씨는 A대학병원 의료진을 100% 신뢰하고 있었다고 했다.
10분 후, 간호사가 다급하게 허 씨의 손을 끌고 주사실로 들어갔다. 힘없이 누워 있는 재윤이를 둘러싼 의료진은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다. 재윤군 담당교수도 달려왔다.
허 씨는 "당시 레지던트의 말에 따르면 마취 2분 후 말을 시켰는데 재윤이가 대답을 해 미다졸람 2ml를 더 주사했고, 이후 골수검사를 시행했다. 7분 후 봤더니 재윤이가 숨을 쉬고 있지 않고 산소포화도가 77%라서 심폐소생술을 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주사실에는 응급 장비가 전혀 없어서 레지던트가 입에서 입으로 인공호흡을 했다"며 "골수검사를 하다가 환자가 움직이면 검사를 못하니까 고강도로 진정시키는 과정이었지만 주사실에는 어떤 응급의료장비가 없었다"고 호소했다.
그렇게 재윤군은 열이 나는 등 감기 기운으로 병원에 온지 19시간 만에 사망했다. 골수검사 결과도 깨끗했다.
허 씨는 "재윤이와 같은 사고를 당하는 아이를 본다면 우리 아이를 잃는 것보다 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 이 자리에 섰다"며 "무서워서 아무것도 안 한다면 훗날 아이에게 너무 부끄러울 것 같았다"고 이야기의 끝을 맺었다.
"의료진·병원, 환자안전사고 소통·공감 자세 필요"
불과 5년 9개월을 세상에 머물다 간 재윤군의 사연은 샤우팅카페 현장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패널로 참석한 울산의대 예방의학교실 이상일 교수와 보건복지부 정은영 의료기관정책과장도 연신 눈물을 훔쳤다.
이상일 교수에 따르면 환자안전사고는 연간 1만2000명에게 일어나고 있고, 전체 사망 중 3~4%는 피할 수 있는 사고라는 국외 연구결과도 있다.
이상일 교수는 "환자안전사고가 생겼을 때 병원에서 재수 없다고 치부할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찾아서 고쳐야 재발을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해 관심을 적극 기울여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재윤군 사건은 병원이 최선의 진료를 했다고 볼 수 없다"며 "예기치 못한 결과가 생겼을 때 의료진이 환자나 보호자에게 무심코 내던진 말이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목숨을 믿고 맡겼던 사람한테 매정한 한마디를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의료진이 의도적으로 환자의 분노를 유발하기 위해 상처의 말들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대립적으로 만드는 무심코 던지는 발언을 자제할 수 있는 윤리적, 도덕적 책임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미국의사협회 윤리강령에는 의료사고 발생 시 의료진 과실 여부에 관계없이 관심을 기울이고 충분한 설명을 해줘야 한다고 돼 있다"라며 "우리나라 의사윤리강령에는 그런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다. 법적 책임이 있는 것과 윤리적, 도의적 책임이 있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한의사협회, 의료인은 윤리라고 하는 기본적인 문제를 전문직으로서 가져야 한다"며 "병원들 역시 환자 안전사고가 생겼을 때 의료진이 환자, 보호자와 접촉하지 말라고 지침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병원이 적극적으로 환자안전 사건을 공감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했다.
국회에는 환자안전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발의한 중대한 환자안전사고 신고 의무화 법안이 발의돼 있는 상황이다. 현재 환자안전법은 의료사고 발생 시 의료기관이 자율적으로 보고하고 있는 시스템이다.
정은영 과장은 "자율보고도 충분히 안 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대한 사고를 의무보고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환자안전사고를 더 은폐하는 결과를 갖고 올 수도 있어 자율보고 활성화부터 신경 쓰고 있다"면서도 "보고 시스템이 선순환 돼 신뢰가 형성되는 분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환자안전사고 발생 시 환자와 보호자의 신고가 보다 더 많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정 과장은 "6000건의 환자안전사고 보고가 들어와 있는데 환자나 보호자가 신고한 건수는 20여건에 불과하다"며 "보고가 활성화되면 환자안전본부가 원인을 분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환자안전법 취지 대로라면 의료진의 과실을 찾는 게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를 찾는 것"이라며 "환자와 보호자도 안전사고를 더 열심히 보고해줘야 한다"고 했다.
더불어 "소아 진정, 산소포화도 측정 의료기기의 문제 등은 관련 학회와 연계해 안전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