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성형외과의 세계…박성우의 '성형외과노트'[29]
병동의 파수꾼
흔히 상상하는 응급 수술의 모습은 이렇다.
헐떡이는 환자는 피를 토하고 있고 의사와 간호사가 급하게 수술실로 환자를 이송한다. 급박하게 수술은 시작되고 집도의가 양 손을 위로 들고 "가운"하고 외친다.
곧 이어 진행되는 수술은 피로 범벅이고 집도의는 땀을 뻘뻘 흘린다. 그때 갑자기 삡삡 울리던 소리가 멈추고 마취과 선생님이 외친다.
"선생님, 환자 생명이 위독합니다!"
성형외과에도 응급 수술이 있다. 간혹 발생하는 그 수술 때문에 마음 편히 자지 못했다.
성형외과의 응급 수술 풍경은 매우 다르다. 환자는 더할 나위 없이 숨을 잘 쉬고 있고 집도의는 차분하게 현미경을 보면서 심각한 얼굴로 무언가를 하고 있다. 재건수술이 지긋지긋했던 본원은 미세수술이 매일 이어졌다.
하루는 유방 재건술, 하루는 하지 재건술, 또 하루는 두경부 재건술. 많게는 일주일에 10건 넘게, 적게는 하루에 1건씩 매일 수술이 이어졌다. 1~2밀리미터 남짓의 혈관과 혈관을 잇는 수술 덕분에, 환자는 없어 진 가슴을 얻고 설舌암 환자는 혀를 얻었지만 성형외과 주치의는 잠을 잃었다.
미세수술은 특성상 수술한 작은 혈관이 막힐 수가 있기 때문에 잘 살펴야 한다. 연예인은 자신이 나온 TV프로그램을 모니터링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한 미세수술의 플랩, 즉 피판을 밤새며 모니터링 했다.
혹여 이어놓은 미세혈관이 막혀버리면 재건에 이용한 플랩 전체가 괴사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징후가 보이면 바로 응급이다.
플랩은 기본적으로 이어놓은 혈관의 피가 원활하게 잘 통해야 한다.
혈액순환이 좋아야 이식하여 재건한 부위가 주변 조직과 잘 치유되어 새로운 가슴이 되고 살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 몸이 동맥과 정맥으로 이루어져 있듯 플랩 역시 미세수술로 동맥과 정맥 모두를 이어주어야 하고, 어느 쪽이 막히든 응급상황이 된다.
학창시절에 하던 장난 중 ‘손에 전기를 오르게 하는’ 장난이 있다. 다들 한 번씩 해봤을 이 장난은 손으로 주행하는 두 주요 동맥을 눌러서 일시적으로 피를 통하지 않게 하는 것이 기본 원리다. 요측 동맥과 척측 동맥을 모두 눌러서 동맥 순환을 막으면 손에 혈액순환이 부족해지면서 하얗게 질리는 것이다.
그렇게 유지하다가 꽉 조르고 있던 것을 풀면 순식간에 손에 혈액순환이 돌면서 짜릿한 느낌이 든다. 그것이 일시적이라면 큰 이상이 없지만 오래 지속되면 피를 공급받지 못하는 손은 조직 병동의 괴사, 즉 죽게 된다. 피는 산소를 운반하기 때문에 피를 통해 산소를 공급받지 못하는 몸의 조직은 죽게 마련이다.
그래서 미세수술 후 혈관이 막히는 상황, 대개는 2~10퍼센트까지 보고하는 이런 상황이 오면 재빠르게 다시 수술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응급 수술을 통해 막힌 혈관의 상태를 살피고 피떡이 져서 뭉쳐있으면 피떡을 없애고, 그래도 시원치 않을 경우에는 다른 혈관을 이어서 혈액순환을 개통해야 한다.
응급 수술을 하더라도 여러 이유로 다시 막혀 미세수술을 이용한 재건술이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응급 수술을 통해 이런 혈액순환 문제가 해결될 수 있기 때문에 그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 성형외과 주치의에게 주어진 엄명이자 숙명이었다.
모니터링의 운명
수술 후 2~3일째에 혈액순환이 막히는 응급 상황이 빈번하다.
응급상황 발생 시 다시 개통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이 존재해서 수술 당일에는 2~3시간마다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
그런 수술을 하면 매일 밤 병동을 배회하면서 환자들의 플랩을 봐야 한다. 말이 2~3시간이지, 가만히 앉아서 때마다 지켜보는 것도 아니고 중간 중간 동의서 받으랴, 응급실 가랴, 이것저것 하다 보면 정신이 없다. 더군다나 고된 노역에 지쳐 깜빡 잠에 들었다가 깨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내가 못 본 사이에 혹시 문제라도 생겼을까 싶어 눈을 비비면서 자고 있는 환자 옆에 가서 조심스레 모니터링을 한다. 다행히 아무 이상 없으면 한시름 놓지만 혹여 푸르딩딩하게 변하거나 하얗게 질린 플랩을 보면 내 얼굴도 하얗게 질린다.
그때부터 응급 수술을 준비하면 그날 밤은 물론이고, 다음 날까지 잠은 포기해야 된다. 그래서 종합병원에서는 성 형외과 1년차가 다른 과 1년차들에 비해 삶의 질이 안 좋기로 유명하다.
어느 종합병원이든 가장 힘든 주치의를 꼽으라고 하면 신경외과와 성형 외과 1년차가 1~2위를 다툰다.
잠을 못자는 주치의는 주치의대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어 다른 쪽으로도 악명이 높다. 주변 사람들에게 "전공이 성형외과예요"라고 하면 "종합병원에는 성형외과가 뭐해요? 별로 힘들지는 않겠네요"라는 말이 돌아온다.
그럴 땐 억울하지만 설명하는 것이 더 힘들어 웃고 만다.
더 최악인 상황도 있다. 응급 수술로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면 다행이다. 간혹 동맥 순환은 좋은데 정맥 순환이 시원치 않는 경우가 있다.
고속도로로 따지면 하행선은 차들이 시원하게 다니는데 상행선이 서행하면서 교통상황이 안 좋은 것과 같다. 이런 경우는 바깥쪽으로 샛길을 내준다.
플랩에 거머리를 물려서 정체된 혈액순환을 풀어주는 원리이다. 점차 보랏빛으로 부풀어 오르는 곳에 살아 있는 거머리를 물리면 거머리가 배를 불리면서 교통상황이 좋아진다.
하지만 이런 경우도 보통 일주일 가까이 면밀하게 관찰하면서 거머리 치료를 해야 되어 새벽에 잠을 못 잔다. 도시에서 자라 거머리를 본 적도 없는데 병원에서 거머리와 친해지니 나중에는 맨 손으로 아무렇지 않게 잡을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모니터링은 상당한 노동이기 때문에 해외에서는 간호사가 하거나 기계로 하는 경우도 있다. 간호사의 경우 3교대 근무이기 때문에 의사보다는 유리하다.
다음 날에도 수술이 이어지는 레지던트 입장에서는 근무시간에 밤과 낮이 따로 없다. 낮 시간에도 수술 중간에 병동에 와서 모니티링을 해야 한다.
다행히 본원 성형외과 병동 간호사들은 적극적으로 모니터링에 참여해주어 혹여 깜빡하는 경우나 응급상황이 왔을 때 연락받고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레지던트 근무시간이 매우 엄격한 미국의 경우 이어놓은 혈관에 도플러 초음파를 심어서 그 신호를 집도의가 직접 스마트폰으로 받아 본다고 한다.
아직 한국에는 의료수가 문제로 그런 기계들을 쓰기 힘든 실정이다. 아마도 당분간은 성형외과 레지던트들이 병동의 파수꾼처럼 플랩을 모니터링하면서 거머리를 물리게 될 것 같다.
※본문에 나오는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동의를 통해 그의 저서 '성형외과 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흔히 상상하는 응급 수술의 모습은 이렇다.
헐떡이는 환자는 피를 토하고 있고 의사와 간호사가 급하게 수술실로 환자를 이송한다. 급박하게 수술은 시작되고 집도의가 양 손을 위로 들고 "가운"하고 외친다.
곧 이어 진행되는 수술은 피로 범벅이고 집도의는 땀을 뻘뻘 흘린다. 그때 갑자기 삡삡 울리던 소리가 멈추고 마취과 선생님이 외친다.
"선생님, 환자 생명이 위독합니다!"
성형외과에도 응급 수술이 있다. 간혹 발생하는 그 수술 때문에 마음 편히 자지 못했다.
성형외과의 응급 수술 풍경은 매우 다르다. 환자는 더할 나위 없이 숨을 잘 쉬고 있고 집도의는 차분하게 현미경을 보면서 심각한 얼굴로 무언가를 하고 있다. 재건수술이 지긋지긋했던 본원은 미세수술이 매일 이어졌다.
하루는 유방 재건술, 하루는 하지 재건술, 또 하루는 두경부 재건술. 많게는 일주일에 10건 넘게, 적게는 하루에 1건씩 매일 수술이 이어졌다. 1~2밀리미터 남짓의 혈관과 혈관을 잇는 수술 덕분에, 환자는 없어 진 가슴을 얻고 설舌암 환자는 혀를 얻었지만 성형외과 주치의는 잠을 잃었다.
미세수술은 특성상 수술한 작은 혈관이 막힐 수가 있기 때문에 잘 살펴야 한다. 연예인은 자신이 나온 TV프로그램을 모니터링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한 미세수술의 플랩, 즉 피판을 밤새며 모니터링 했다.
혹여 이어놓은 미세혈관이 막혀버리면 재건에 이용한 플랩 전체가 괴사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징후가 보이면 바로 응급이다.
플랩은 기본적으로 이어놓은 혈관의 피가 원활하게 잘 통해야 한다.
혈액순환이 좋아야 이식하여 재건한 부위가 주변 조직과 잘 치유되어 새로운 가슴이 되고 살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 몸이 동맥과 정맥으로 이루어져 있듯 플랩 역시 미세수술로 동맥과 정맥 모두를 이어주어야 하고, 어느 쪽이 막히든 응급상황이 된다.
학창시절에 하던 장난 중 ‘손에 전기를 오르게 하는’ 장난이 있다. 다들 한 번씩 해봤을 이 장난은 손으로 주행하는 두 주요 동맥을 눌러서 일시적으로 피를 통하지 않게 하는 것이 기본 원리다. 요측 동맥과 척측 동맥을 모두 눌러서 동맥 순환을 막으면 손에 혈액순환이 부족해지면서 하얗게 질리는 것이다.
그렇게 유지하다가 꽉 조르고 있던 것을 풀면 순식간에 손에 혈액순환이 돌면서 짜릿한 느낌이 든다. 그것이 일시적이라면 큰 이상이 없지만 오래 지속되면 피를 공급받지 못하는 손은 조직 병동의 괴사, 즉 죽게 된다. 피는 산소를 운반하기 때문에 피를 통해 산소를 공급받지 못하는 몸의 조직은 죽게 마련이다.
그래서 미세수술 후 혈관이 막히는 상황, 대개는 2~10퍼센트까지 보고하는 이런 상황이 오면 재빠르게 다시 수술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응급 수술을 통해 막힌 혈관의 상태를 살피고 피떡이 져서 뭉쳐있으면 피떡을 없애고, 그래도 시원치 않을 경우에는 다른 혈관을 이어서 혈액순환을 개통해야 한다.
응급 수술을 하더라도 여러 이유로 다시 막혀 미세수술을 이용한 재건술이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응급 수술을 통해 이런 혈액순환 문제가 해결될 수 있기 때문에 그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 성형외과 주치의에게 주어진 엄명이자 숙명이었다.
모니터링의 운명
수술 후 2~3일째에 혈액순환이 막히는 응급 상황이 빈번하다.
응급상황 발생 시 다시 개통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이 존재해서 수술 당일에는 2~3시간마다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
그런 수술을 하면 매일 밤 병동을 배회하면서 환자들의 플랩을 봐야 한다. 말이 2~3시간이지, 가만히 앉아서 때마다 지켜보는 것도 아니고 중간 중간 동의서 받으랴, 응급실 가랴, 이것저것 하다 보면 정신이 없다. 더군다나 고된 노역에 지쳐 깜빡 잠에 들었다가 깨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내가 못 본 사이에 혹시 문제라도 생겼을까 싶어 눈을 비비면서 자고 있는 환자 옆에 가서 조심스레 모니터링을 한다. 다행히 아무 이상 없으면 한시름 놓지만 혹여 푸르딩딩하게 변하거나 하얗게 질린 플랩을 보면 내 얼굴도 하얗게 질린다.
그때부터 응급 수술을 준비하면 그날 밤은 물론이고, 다음 날까지 잠은 포기해야 된다. 그래서 종합병원에서는 성 형외과 1년차가 다른 과 1년차들에 비해 삶의 질이 안 좋기로 유명하다.
어느 종합병원이든 가장 힘든 주치의를 꼽으라고 하면 신경외과와 성형 외과 1년차가 1~2위를 다툰다.
잠을 못자는 주치의는 주치의대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어 다른 쪽으로도 악명이 높다. 주변 사람들에게 "전공이 성형외과예요"라고 하면 "종합병원에는 성형외과가 뭐해요? 별로 힘들지는 않겠네요"라는 말이 돌아온다.
그럴 땐 억울하지만 설명하는 것이 더 힘들어 웃고 만다.
더 최악인 상황도 있다. 응급 수술로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면 다행이다. 간혹 동맥 순환은 좋은데 정맥 순환이 시원치 않는 경우가 있다.
고속도로로 따지면 하행선은 차들이 시원하게 다니는데 상행선이 서행하면서 교통상황이 안 좋은 것과 같다. 이런 경우는 바깥쪽으로 샛길을 내준다.
플랩에 거머리를 물려서 정체된 혈액순환을 풀어주는 원리이다. 점차 보랏빛으로 부풀어 오르는 곳에 살아 있는 거머리를 물리면 거머리가 배를 불리면서 교통상황이 좋아진다.
하지만 이런 경우도 보통 일주일 가까이 면밀하게 관찰하면서 거머리 치료를 해야 되어 새벽에 잠을 못 잔다. 도시에서 자라 거머리를 본 적도 없는데 병원에서 거머리와 친해지니 나중에는 맨 손으로 아무렇지 않게 잡을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모니터링은 상당한 노동이기 때문에 해외에서는 간호사가 하거나 기계로 하는 경우도 있다. 간호사의 경우 3교대 근무이기 때문에 의사보다는 유리하다.
다음 날에도 수술이 이어지는 레지던트 입장에서는 근무시간에 밤과 낮이 따로 없다. 낮 시간에도 수술 중간에 병동에 와서 모니티링을 해야 한다.
다행히 본원 성형외과 병동 간호사들은 적극적으로 모니터링에 참여해주어 혹여 깜빡하는 경우나 응급상황이 왔을 때 연락받고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레지던트 근무시간이 매우 엄격한 미국의 경우 이어놓은 혈관에 도플러 초음파를 심어서 그 신호를 집도의가 직접 스마트폰으로 받아 본다고 한다.
아직 한국에는 의료수가 문제로 그런 기계들을 쓰기 힘든 실정이다. 아마도 당분간은 성형외과 레지던트들이 병동의 파수꾼처럼 플랩을 모니터링하면서 거머리를 물리게 될 것 같다.
※본문에 나오는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동의를 통해 그의 저서 '성형외과 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